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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아이들 표정에 신경을 덜 쓰기로 했다.

부제. 수업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by 한동훈

교사의 업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선생님이라면 아마 너도 나도 수업을 손꼽을 것이다. 원래 정부에서 교사를 뽑는 목적도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일을 맡기기 위함이니까 말이다.


교사가 된 내 입장에서도 학교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 바로 수업이었다. 50분 시간 동안 '저 선생님은 어떤 말을 할까' 아이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초임 때부터 항상 수업 준비에 많은 신경을 썼다.


처음 수업할 때의 내 목적은 멋진 웅변가나 스타강사처럼 보이는 것이 목표였다. 단상 위에 올라가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을 하며 대중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는 그런 멋진 수업을 꿈꾸었다.


그래서 초장기 때의 내 수업은 아이들의 주목과 집중력을 깨우고자 감각을 자극할 만한 것들을 많이 넣었다. 내용이나 텍스트보다는 인터넷에 많이 있는 그림 사진자료, 갖가지 수업과 관련된 동영상들을 수집하여 컴퓨터에 띠우기 바빴다. 그리고 실제 수업을 할 때도 교과서나 학습지와 관련된 내용보다는 역사 인물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나 재미있는 상식들, 갖가지 카더라 이야기를 더 많이 하였다.


음식으로 따지면 음식 본연의 맛에 집중하기보다는 갖가지 양념과 소스를 첨가하여 소스 맛을 통하여 음식을 먹도록 하는 것과 똑같았다.



아이들은 이런 내 수업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솔직히 내가 느꼈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아이들은 확실히 수업의 본질보다는 소스를 좋아했다. 그래서 잠자는 아이도 많이 줄었고 수업에 대한 집중도도 올라갔다. 실제 수업 평가도 괜찮았는데 학기말에 작성하는 교원평가에서도 아이들은 '다른 수업시간보다는 그래도 역사 수업이 재미있다.' '흥미 있는 썰들을 많이 풀어주셔서 역사에 흥미가 생겼다.' 등의 칭찬일색으로 글을 적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그동안 내가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 이런 좋은 결과가 오는구나.' 하며 스스로 뿌듯해했다.



하지만 이런 내 수업이라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스에 집중하다 보면 음식 본연의 맛을 못 느끼는 것처럼 아이들은 실제 교과 지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익히기보다는 카더라나 썰 등의 이야기만 기억하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아이들 스스로 말하고 정리할 시간을 잘 주지 않다 보니 수업했던 내용을 금방 잘 잊어먹는 측면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불러 이야기를 할 때도 "예전에 이런 내용 배웠잖아?" 물어보면 "그랬나요? 그게 언제였죠?" 하는 애들이 많았다.


나는 뭔가 내 수업에서 수업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의 목적이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지식을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여기서 학습이란 것은 새로운 내용을 배우고(學) 이를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익히는 것(習)을 말한다.


그럼 내 수업은 수업의 본질적인 측면, 즉 학습적인 측면에서 괜찮았나? 아니 그렇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교과 지식은 아이들에게서 금방 휘발되었고 곁다리 지식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2,3류 공포나 오락성 영화를 보면 단순한 기분 전환만 있을 뿐 정작 본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영화들은 철학이나 교훈, 생각해 볼거리,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따지고 보면 내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학습적인 측면에서는 아이들에게 남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수업의 학습적인 측면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나는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수업시간 아이들을 집중시킨답시고 흥미나 자극적인 것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좀 더 학습이 일어날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가르친 지식이 휘발되지 않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복습인 것 같았다. 실제 학교에서 아이들은 1-7교시까지 매일 새로운 지식을 접한다. 교사 입장에서는 익숙한 것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생소한 용어나 처음 보는 단어들도 많고 문제 난이도가 올라가서 아이들은 애를 많이 먹는다. 또한 우리 뇌는 쉽게 지치고 변덕스러워서 여러 지식을 한꺼번에 접하다 보면 이것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좀처럼 정리가 안된다.


수업시간 내가 할 역할은 바로 이것인 것 같았다. 바로 아이들이 잊어먹지 않도록 배운 지식을 되짚어주고 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일!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 수업을 할 때 지난 시간 배운 내용들을 퀴즈를 통해 복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보통 전 시간 배운 내용의 핵심 키워드를 초성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제시하고 아이들이 이를 맞추면서 배운 내용을 상기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후로는 교과 지식을 재구성하여 도표로 만들거나 마인드맵 등을 통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 뇌는 단순한 용어나 텍스트보다는 도표나 마인드맵과 같은 시각적인 내용물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이미지 자체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것들은 학습효과가 좋았다.



실제 그 이후로 평균 성적도 올라가고 아이들이 배웠던 것을 더 잘 기억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물론 이런 수업을 하다 보면 이 전 수업 스타일에 비해 흥미도 반감되고 아이들도 쉽게 지치는 경향은 있었다. 특히 진도는 나가야 돼서 내 마음은 바쁜데 아이들은 어두운 얼굴로 '제발 이제 그만요' 표정으로 말하고 있을 때는 나도 힘이 빠지고 지치곤 했었다.


하지만 학습이란 꼭 수업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론 수업 당시에는 힘들고 처음에는 머릿속에 안 들어오더라도,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다시 한번 복습을 통해 내 머릿속에 학습되고 습득될 수 있다면 이 수업 또한 성공적인 수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학교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누구든 1-7교시까지 선생님 설명에 초집중하여 100% 모든 수업을 완벽히 받아들이는 학생은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영우가 아닌 이상 어떤 상황이든 아이들은 다시 공부하고 배운 것을 상기해야만 한다. 나아가 이를 심화시키고 응용하는 공부도 필요하다. 수업시간 교사의 역할은 바로 아이들이 이런 수행과정을 큰 막힘없이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정리해 주는 것 아닐까?


나는 그 이후로 아이들 표정에 마음을 덜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으니 좀 더 수업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좀 더 학습효과가 일어나고 수업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오늘도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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