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소성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떤 유전자형의 발현이 환경 요인을 따라 특정 방향으로 변하는 성질을 말하는 것'으로 주로 뇌의 가소성이라는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
기존에는 뇌가 청소년기 때 성장을 다하면 뉴런의 뇌세포가 그대로 안정화되어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청소년기 때 굳어진 뇌는 더 이상 바뀔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는 이와는 정 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즉 학습이나 환경에 따라 뇌세포는계속해서 성장하거나 쇠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성장과정에 있는 아동, 청소년, 성인의 뇌는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거쳐 성인이 된 사람도 뇌신경의 변화나 발달은 계속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10대 청소년의 뇌 특징을 알아보도록 하자.
1. 청소년은 왜 잠이 많은가?
조회시간과 1교시에는 엎드려서 자고 있다가 3-4교시 때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활발히 움직이는 아이들. 고등학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백날 열심히 공부해도 수업시간에 졸고 있으면 아무 소용없다. 그러니 제발 밤에 잠 좀일찍 자라."
조회시간에 내가 마르고 닳도록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바뀔 아이들이 아니다. 아침마다 눈꺼풀이 무거운 아이들과 상담을 해보면 기본이 새벽 1시거나 3-4시에 잠드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렇게 잠을 자고 아침에 7,8시에 깨어서 비몽사몽 학교에 오니 수업시간에 졸음이 안 올래야 안 올 수가 없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일찍 잠들려고 시도는 해봤어요. 근데 쌤! 잠이 너무 안 와요 ㅠㅠ."
아이들의 이런 대답을 들으면서도 순전히 나는 이 모든 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아이들의 잘못된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에서는 아이들이 늦게 자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보통 우리가 잠이 들 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멜라토닌'이라고 하는데 이 호르몬은 깨어있는 낮에 햇빛을 받으면서 많이 생성되어 밤에 잠들 때 분비된다고 한다. 그런데 청소년의 경우에는 이 호르몬이 분비되는 시간이 성인에 비해 2-3시간 정도 늦다. 따라서 청소년이 늦게 잠드는 것은 과학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멜라토닌은 청소년의 몸속에서는 성인에 비해 머무는 시간이 더 길다고 한다. 부모가 그렇게 깨워도 아이들이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충분하지 못한 수면은 아이들이 학습력을 향상하는데 필요한 시냅스 가지치기나 장기 증강을 크게 방해한다. 심지어 공격성 증가, 우울증, 비만, 고혈압 등의 안 좋은 질병도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에게 하루 권장되는 수면시간은 8-9시간 이상이다. 아이들에게 충분한 수면시간이 확보되어야 아이들의 학습력도 향상되고 건강상의 문제나 큰 감정 기복 없이 무탈하게 자라날 수 있다. 늘 빡빡한 일정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과연 몇 시간 될까?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최근 일부 교육감의 0교시 부활 공약(8시 등교)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2. 청소년은 왜 위험한 행동을 잘하는가?
우리 뇌에서 이마엽(전두엽)은 사람 뇌의 앞에 위치한 부분으로 통찰, 판단, 추상적 사고, 계획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마엽은 사람 뇌의 컨트롤 타워 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0%에 달하고 이는 개(7%), 침팬지(17%)와 비교해봐도 그 비중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이 자연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까닭도 바로 다른 동물에 비해 두드러지게 발달한 이마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이마엽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가장 늦게 발달한다는 점이다. 보통 여성은 10대 후반, 남성은 20대 초반이 되어서야 이마엽 발달이 성인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데 특히 10대는 이마엽의 미발달로 통찰력이 떨어진다.
10대는 자기중심적이고 뇌가 판단을 할 때도 이마엽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편도체(감정 부분 담당)에 의존하는경우가 많다. 쉽게 감정이 격화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청소년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청소년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예측하지도 못한다.교칙 위반으로 선도위원회(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되는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런 결과가 초래될지 생각 못했습니다. 그냥 잠깐 하면 들키지 않고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아이들이 뻔히 결과를 예측했으면서도 어른들 앞이라 의례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매번 선도위원회를 할 때마다 이런 말을 반복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것은 단순히 변명거리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단으로 어울려 다니고 활동성이 강한 청소년들은 누군가 앞장서서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르면 주변의 다른 친구들도 겁 없이 똑같은 행동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교칙위반으로 적발되는 학생들도 보통 2-3명 이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마엽은 자기 인식의 근원이자 위험한 행동을 할 때 그에 따른 결과 예측, 위험한 행동을 할 때 생기는 두려움도 모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겁 없는 10대라는 말은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이마엽이 미발달한 10대는 정말로 겁이 없다.
3. 10대는 왜 중독성이 강한가?
청소년기 때에는 청소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때 도파민 분비가 수십 배나 증가하며 최고조에 달한다. 도파민은 일종의 신경전달 물질 중 하나로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쾌락이나 성취감, 도취감과 연관되어 있다. 문제는 청소년기때는 이마엽의 발달이 부족하다 보니 이런 지나친 쾌락추구의 도파민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청소년이 알코올이나 흡연, 약물에 한번 맛을 들일 경우 청소년 뇌에는 이와 관련된 도파민 수용체가 훨씬 많이 분비되어 청소년이 더욱 중독현상에 빠져들게 만든다고 한다. 흡연을 예로 들면 처음에는 한 달 한 개비였던 것이 일주일 한 개비, 하루 한 개비, 나중에는 하루 한 갑 이상을 펴야 하는 데까지 이르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 학교에서 흡연 문제로 적발되어 선도위원회에 회부된 학생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피지 않겠습니다."
"약속할 수 있습니까?"
"네. 이 자리에 계신 부모님과 선생님들 앞에서 다짐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짐한 학생들치고 실제 그 약속을 지키는 학생은 잘 없다. 특히 흡연은 어떻게든 다음번에 또 걸려서 선도위원회에 회부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OOO 학생은 지난번에는 흡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어찌된 건가요?"
"죄송합니다. 자꾸 생각이 나고 생각보다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킬 수 있는 약속만 말해보세요."
"죄송합니다. 흡연을 끊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시는 학교에서 피지 않겠습니다."
그렇다. 한번 흡연에 중독된 아이들은 본인이 노력해도 좀처럼 흡연을 끊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실제 청소년들은 흡연을 끊기까지 일반 성인에 비해 2-3배 이상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흡연을 허용할 수도 없고 학교에서도 이런 학생들을 볼 때면 참 난감한 입장이다.
흡연 이상으로 아이들이 더 쉽게 빠져드는 것은 스마트폰 중독이다. 실제 갈수록 기술이 심화되고 재미난 콘텐츠가 난무하는 스마트폰은 그야말로 사춘기 청소년들이 혼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인 셈이다. 특히 10대의 뇌는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도파민 분비가 폭발적이다고 한다. 이쯤 되면 디지털도 일종의 마약인 셈이다. 한 실험에서는 10대들에게 24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더니 마치 약물의 금단 현상처럼 우울증, 무기력함, 공황상태가 나타났다고 한다.
4. 청소년의 뇌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충동과 중독성 강한 청소년들이라 해서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에서 봤듯이 뇌에는 가소성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이전 청소년 때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흔히들 철들었다고들 말한다. 이는 이마엽이 발달하여 비로소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이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때를 말하는데 주로 청소년들이 20대 나이에 도달하였을 때를 말한다.
이런 면에서 청소년에게는 부모와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아직은 세상을 통찰하고 이성적 판단이 미흡한 청소년에게 부모는 이들이 성숙할 때까지 이마엽 역할을 대신 해주어야 한다. 물론 이때에도 과학적인 근거를 대야만 한다. 흡연 약물이 그저 나쁜 행동이니까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청소년 눈에는 꼰대스러운, 행동을 억제하는 것 밖에 안된다. 호기심 강한 청소년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하고 싶어할 것이고, 결국에는 부모나 학교의 뒤통수를 치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10대는 학습의 시기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심이 많고 과학적인 정보나 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부모와 교사는 이런 점을 십분 활용하여 호기심 강한 그들에게 밖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한번 약물이나 게임에 중독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 보다 많이 공부하고 알려주어야 한다.
사실 나도 고등학생쯤 되면 '거의 어른스러워 졌으니 뭘 말하지 않아도 옳고 그름은 알아서 판단하겠지.'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닉하고 있었고, 잘못된 행동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면 계속 나락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빈번했다. 중요한 것은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 뇌의 가소성을 믿고 이들의 위기가발달 단계상 일시적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위기에 빠진 청소년들은 잘못을 지적하는 우리 (성인)에게 화를 내면서도 속으로는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