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위계에 따라서 5단계로 나누어 보았다. 그의 동기화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욕구의 강도와 중요성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가장 기초적이고 낮은 단계인 1단계는 생리적 욕구로 숨쉬고 먹고 자고 배설하는 등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말한다. 그다음 2단계는 안전의 욕구로 위험 고통으로부터의 회피와 안정의 욕구이다. 3단계는 애정의 욕구로 애정, 친화, 소속감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 4단계는 존중의 욕구로 타인들에게 주목과 인정을 받으려 하는 욕구나 자기 존중, 자율성, 성취감과 관련 있는 욕구다. 마지막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자기 발전을 이루고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욕구의 단계가 높을수록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본다. 반면 낮은 단계의 욕구들은 동물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고 여기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하위 단계의 욕구들이 충족되지 않고는 결코 상위단계의 욕구들이 실현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단계인 숨쉬고 먹고 자는 욕구들이 기본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데 5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실현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2단계 욕구가 결핍되어 삶이 불안정하고 고통스럽고 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인데 자존감이나 자율성이 높아질 수는 없는 법이다. 이처럼 하위단계의 욕구들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지만 한편으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 공무원 급여 인상과 관련된 공무원 노조의 투쟁이 한창이다.
<투쟁하고 있는 공무원 노조 : 출처 공생공사>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현재 물가나 최저 임금은 급격하게 상승한 데 비하여 공무원 임금 상승은 굉장히 제한적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최근의 물가상승 수준에 맞춰 7.4% 임금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작년 공무원 임금은 1.4% 정도 오르는데 그쳤다. 공무원 한달 월급이 200만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2만8천원 정도 월급이 오른 것이다. 그렇다고 이전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작년에는 코로나19 고통을 분담한다는 명목으로 0.9% 오르는데 그쳤다. 또 최근 5년간 임금 상승률도 평균 1.9% 상승이었다. 2007년과 비교해 최저 임금이 3.9배 오르고 300인 이상 기업의 임금이 2.1배 오르는 동안 공무원들의 임금은 1.5배 오르는데 그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올해 9급 공무원 1호봉 기본급은 168만원으로 최저임금 191만원(시간당 9160원)에도 역전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공무원 임금 인상률 비교표 : 출처 중부매일>
하지만 이런 공무원 노조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키를 쥐고 있는 정부에서는 최근의 경제위기와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 방침에 따라 '공무원 사회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고 주장하고 있다. 또 코로나 19와 고물가에 따라 민생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공무원도 같이 고통분담을 해야 하는 차원에서 큰 임금 상승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임금 동결 내지는 예전과 같은 1-2%대 임금 상승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각 포털 사이트에서도 공무원 임금 투쟁에 대해서는 비난 댓글들이 많다. 이런 댓글들을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공무원들은 생산적이지 않다.
이제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대체 뭐가 있냐.
공무원들은 편하게 놀고 먹으려고만 한다.
봉급이 싫으면 관두면 된다. 어차피 할 사람 널렸다.
비효율적이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임금을 많이 받을 필요는 없다.
공무원들이 사기업에 비해 국가경제에 보탬이 된 것이 뭐가 있냐 임금을 더 낮춰도 괜찮다.
등의 내용들이다.
공무원들은 정말 그런 존재들에 불과할까? 공무원 임금은 삭감하고 공무원에 대한 대우는 계속 줄여 나가는게 과연 올바른 방향일까?
앞서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에서 하위욕구가 충족되지 않고는 상위욕구가 실현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나는 이러한 논리는 실제 우리 사회의 경제 순환 시스템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공무원이 주로 하는 일은 일반적인 민원을 처리하거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어느 지역에서 큰 수해가 생겨서 민원이 발생했고 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도움도 절실한 상황이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태만하여 이를 방관하고 2-3달 만에 겨우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해보자. 국민들은 이미 많은 피해를 입은 상황일 것이고 아마 온갖 불만을 가지고 공무원과 정부를 성토하게 될 것이다. 또 건설이나 도로, 각종 정비사업에도 공무원들의 역할이 필수적인데 이들이 부정부패하거나 업무 태만일수록 사업속도가 느려지고 추가비용이 많이 들고 비효율적인 일들만 많아져서 사기업들은 차라리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공무원에는 일반 공무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경찰, 교사, 소방관 같은 특정직 공무원들도 있는데 이들 역시 우리 사회 유지와 발전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한국 치안 수준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고 여기에는 한국 경찰도 한몫 하고 있다. 한국의 치안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는 우리가 해외를 잠깐만 다녀와도 알 수 있다. 절도, 소매치기 같은 일들은 다반사로 일어나고 심지어 자국 경찰이 워낙 부패하여 수사를 의뢰해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 전문 경비원들을 따로 고용하는 나라도 있다. 이런 나라에서 기업을 세우거나 사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늘 치안 불안과 안전위협에 시달리며 아마 제대로 된 기업활동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의 경우에는 또 어떠한가? 한국에는 고학력과 높은 임용경쟁률을 바탕으로 지식 수준이 높은 교사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다. 이들은 도시와 시골 등 전국 각지로 발령이 나서 소외된 계층이나 저소득층도 풍부한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일을 하고 있다. 또 지방에서는 교사들이 방학 중에도 방과후수업과 보충수업을 하며 사교육 혜택을 못받는 학생들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난다' 는 말은 옛말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가끔씩은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한다. 이들의 노력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PISA (OECD 학업성취도) 순위가 최상위권이거나 부정부패나 공정성, 비민주적인 일에 전 국민이 '탄핵' 등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국민 의식수준이 높지 않고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부분에도 공교육이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계속해서 우수한 인재가 배출되어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기업들이 생산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이렇게 행정업무, 치안, 안전, 교육 등의 여러 밑바탕이 탄탄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불안해지거나 결핍이 생길 경우 중상류층은 이민을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결핍된 공백을 메우느라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즉 어떻게 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기본 사회 서비스들은 사실 공무원들의 많은 준비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매슬로우의 위계 단계로 봤을 땐 생산 활동의 하위단계일 수 있지만, 상위 단계를 받쳐주고 상위단계 실현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공무원들의 임금 상승 주장은 비현실적인 주장일까?
우리 사회의 공공서비스와 복지 면에서 공무원들도 충분히 생산적이고 중요한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물가가 급격하게 오르고 300인 이상 사기업들의 임금은 많이 오른데 비해 공무원들의 임금 상승은 제한적이었다. 이에 따라 가정을 꾸리고 있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경우 많은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당장 식비가 8000원에서 만원으로 오르고 유류비 학원비 차값 집값 주변을 둘러보면 안 오른 것이 없을 정도다.
'고통분담' 이라는 것도 자신의 기본적인 생활 수준이 유지되고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본인의 기본적인 생활이 유지가 안되는 상황에서 타인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는 되려 없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고통까지 추가하는 행위다.
오히려 이런 행위는 여유가 있는 정치인들이나 고위직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해서 분담해도 그 효과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인력감축과 국가재정감축을 내세우고 있지만 공무원 노조가 터무니 없이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공무원들도 한 국가의 국민이자 누군가의 가족이다. 그저 '물가 상승률' 만큼은 보장해서 예년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수준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인데 이를 꼭 안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묻고 싶다.
물론 공무원 체계의 비효율적이고 폐쇄된 조직문화, 누군가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가만히 앉아서 돈벌고 있는 상황은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일반 사기업이라고 이런 부분이 과연 없겠는가? 또한 변하고 사라져야 할 것은 경직된 조직문화나 비능률적인 업무 시스템인 것이지, 공무원이라는 사람 자체는 아닌 것이다.
임금을 옥죄고, 공무원을 억제하고 통제할수록, 퇴사율이 급증하고 진입장벽도 없어져, 엄격한 기준없이 누구나 다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결과는 결국 질 낮은 행정 서비스와 더욱더 비효율적이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체계, 각종 부정부패 만연을 불러 올 뿐이다.
교육 공무원인 교사의 인기가 떨어진 일본에서는 결국 교원 진입 연령 제한 철폐라는 초강수까지 던졌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수준 미달 교사들이 속출하여 교육의 질이 걱정된다는 기사 내용이다.
<조선말 관아 풍경>
조선시대 향리는 지금의 공무원과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여 국가의 행정 실무를 맡았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이들에게 녹봉을 지급하지 않았다. 무보수로 그것도 관청운영비까지 본인이 부담했던 향리는 대체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했던 것일까?
힌트는 이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백성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들이 자신들의 돈을 어떤식으로 확보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성적인 재정 부족에 시달리던 조선 정부에서도 결국 이들의 부정 부패를 알면서도 눈감아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 백성들에게 전가되었고 조선은 수백년 내내 '탐관오리' 들의 부정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가 되었다. 그 절정이 세도정치 시기였던 것이지 만성적인 부정부패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 전체였고 이는 조선 백성들의 생계 의욕마저 꺾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공무원이 미래인 나라는 희망이 없다. 우리가 지겹도록 많이 들은 말이다.
그런데 공무원을 억죄고 공무원에게 수년째 고통분담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공무원의 미래가 없는 나라는 과연 괜찮은 것일까?
공무원을 억죄었던 과거의 역사와 주변국들의 사례에서 우리는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과연 누가 진짜 피해를 입게 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