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우리 학교의 사회과 교과부장을 맡았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과란 윤리 지리 역사 일반사회 등 총 4개 교과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이에 해당되는 교원 수만 해도 13명이 된다.
사실 세부적으로 따지고 보면 윤리 지리 역사 일반사회는 이름만 사회과지 모두 독립된 교과로서 각자의 전공 교과목이 있다. 예를 들어 지리는 한국지리 세계지리 여행지리가 있고 윤리는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가 있는 식이다. 다만 1, 3학년 때 배우는 통합사회나 사회 문제 탐구의 경우 4개 교과 선생님들이 시수에 따라 각자 반을 맡아 가르치기도 한다.
1년만 고생하면 되겠지 생각했던 교과부장은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교과목 전체 회의에수시로 참석해야만 했고, 다른 부서에서 부탁하는 사항을 교과 선생님들께 전달하고 사회과 전체 의견을 다시 수합해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근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사회과 티오감과 관계된 회의였다.
학교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내년도 전체 수업시수를 고려하여 티오증 교과와 티오감 교과를 결정한다.
아이들은 고교 2,3학년 때 본인 진로나 성향에 따라 희망교과를 선택하는데 매년 아이들 선택 쏠림 교과가 다르다 보니 교과별 필요한 교원 수도 들쭉날쭉 변동이 생기는 편이다.
예를 들어 00 교과가 첫해엔 선택자가 150명이라 교원이 1명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둘째 해가 되니 선택자가 300명으로 늘어나 교원이 2명 필요했다.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티오증을 하였다. 그런데 셋째 해가 되니 다시 선택자가 160명으로 줄어들어 이 교과는 다시 티오감 대상이 되어 교원 한 명이 나가야만 했다. 즉 학생들의 교과 선호도가 해당 교과의 교원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 학교에서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사회과는 매년 티오감 대상이라는 거였다.
사실 5년 전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지는 않았다. 우리 학교는 일반계 학교임에도 별명이 '00 외고' 라 불릴 정도로 아이들이 문과 성향이 강한 학교였다.
그러나 갈수록 이과 특히 과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나더니 올해는 사회와 과학 선택 비율이 역전되는 현상마저 발생해 버렸다. 우리 사회과의 선택과목 수업시수도 127에서 108로 1년 만에 15%나 감소해버렸다.
각 교과의 전체 수업시수가 발표되자마자 학교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교과부장 회의를 소집하여 티오증 교과와 티오감 교과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수학과나 과학과에서는 아이들의 수학 과학 선호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전체 수업시수도 많이 늘어났으니 티오증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학교에서는 의견을 받아들여 이번에는 반대로 티오감 대상이 될 교과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교과 부장들의 티오감 1순위 물망에 오른 교과는 바로 우리 사회과였다. 전체 수업시수를 따져봐도 사회과가 많이 줄어들었고 늘어난 수학 과학 시수를 보충(티오증) 하기 위해서는 사회과에서 티오감이 되는 것이 다들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수년째 우리 사회과만 티오감이 계속 논의되고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점. 전체 수업시수가 아니라 윤리, 지리, 일반사회 등 세부 교과별 교사당 수업시수로 따져보았을 때는 이들 교과보다 더 적은 교사당 수업시수를 가진 교과들도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티오감이 되는 교과의 교원은 자의가 아니라 반강제로 학교에서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과부장으로서 나는 어떻게든 사회 과목의 티오감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주장에는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사회과는 과학과와 마찬가지로 세부 교과가 아니라 사회과라는 큰 틀로 전체 수업시수로 따지는 것이 맞다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했고, 그런 면에서 사회과가 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끝까지 반대를 고집했다. 참고로 교과 부장 협의회에서는 한 명이라도 반대자가 생길 경우 그 협의회 결정은 할 수 없게 되고 학교장 최종 결정으로 넘어가게 된다. 난 학교장 결정이라는 마지막 단계까지라도 어떻게든 이 문제를 끌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교장 선생님도 협의회에서 알아서 결정되기를 바라세요. 사회과만 동의해주면 모든 게 끝날 텐데 학교장 결정까지 가야 하고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요?
어느 선생님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는데 사회과 부장인 내가 굳이 계속 반대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건 제 선택이자 제 결정입니다. 세상 어느 교과가 자기가 티오감 대상이 되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까요? 이럴 때 쓰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교과부장으로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게 제 마음이에요."
이미 대세가 기운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다음날 학교장 결정으로 최종 끝난다 해도 큰 이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굳이 고집이라면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퇴근하는데 마음이 힘들었다. 회의장에서 남들은 다 찬성하는데 나 혼자 반대 목소리를 꿋꿋이 견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2교시 내에 티오감 대상 사회교과를 빨리 정해달라니요?
다음날 학교를 출근했는데 당황스러운 소식부터 접했다. 학교에서는 9시 시작하기도 전에 학교장이 사회과에서 티오감 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고, 아침에는 관리자가 일찍 출근한 사회과 교과 선생님들을 불러 모아 윤리 지리 역사 일반사회에서 티오감 될 교과를 2교시까지 정해달라고 통보했다는 것이었다.
' 사회과가 티오감 대상이 최종 확정된 것만 해도 사회 선생님들 충격이 클 텐데 어느 교과에서 티오감 될지 당장 2교시(11시)까지 정해달라니......'
나는 곧장 관리자분께 달려갔다. 선생님들이 티오감이라는 충격을 받아들이는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또 사회과 선생님들과 티오감 교과 협의까지 끝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점심시간까지는 필요하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관리자 앞에서 그동안 교과부장으로서 힘들었던 점, 어제 있었던 회의에 있었던 이야기들도 전달했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사실 어젯밤 잠을 못 잤습니다 매번 이렇게 정리해고 되듯 문과 애들이 많았던 이 학교에서 우리 사회과가 밀려나는 게 많이 속상하네요.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이 결국 내가... 내가... 너무 못 가르쳐서 아이들이 내 교과를 선택하지 않는 것 아닌가 생각이.... 생각이...."
나는 계속 눈물이 나와서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갈수록 수학 과학이 강조되는 시대 흐름 속에 사회과목이 밀려나는 현실이 서러웠던 것인지, 어쩔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이 사회과목을 외면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던 것인지, 어제 전체 교과 회의에서 혼자 꿋꿋이 주장함에도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현실이 아쉬웠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이 학교에서 내가 무능력하고 못 가르쳐서 아이들이 사회과목을 자꾸 외면하는구나 생각해서였던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계속 눈물이 났다.
결국 점심시간까지 협의하기로 관리자분께 다시 약속받고 티오감 확정 교과도 큰 진통 없이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교과부장으로서 난 티오감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과가 접하고 있는 냉혹한 교육 현실, 아무도 타교과에서 사회과의 어려움에 대해 크게 공감해주지 않는 현실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간 정신 나간 듯 멍하게 있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단 한 번도 그렇게 크게 울어본 적이 없어서 그 후유증은 더욱 컸던 것 같다.
제삼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당장 니네 교과(역사)에서 나가게 된 것도 아니고, 니가 학교 짤리는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 질질 짜냐. 니가 언제부터 사회과에 관심 있었다고 이러는 거냐. 고작 1년 교과부장 하는 주제에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솔직히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런식으로만 살아왔기에 앞으로는 사회 과목에 대해 더 애착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시대의 흐름이다 어쩔 수 없다 이야기하며 사회과 선생님마저 사회 과목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대체 사회과목은 누가 지켜준다는 말인가?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나는 앞으로 내 교과를 지켜나갈 것이다. 내 교과를 사랑하고 내 교과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내 교과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를 성찰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과도 이를 같이 공유하며 여전히 사회 과목은 우리가 살아나가는데 꼭 필요한 과목임을 주장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의 눈물이 그저 속상함만 나타냈던 눈물이 아니길 바란다. 이를 마음속 깊이 새기며 앞으로 미래사회에도 사회과목이 필요한 이유를 떳떳하게설명할 수 있는 성찰하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