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뉴스 기사 중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충남 홍성의 모 중학교에서 발생한 일인데 한 남학생이 버젓이 수업시간에 교단에 올라와 누워 선생님의 뒷모습을 찍는 듯한 모습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남학생은 웃통을 벗고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당 교사는 상황을 외면한 채 애써 수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교사는 이 학급의 담임선생님으로 알려졌다.
해당 영상은 틱톡으로도 올라왔다. 그러나 논란이 계속 커지자 영상은 결국 삭제되었다. 하지만 영상의 흔적은 계속 남아서 결국 언론에 제보되었고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교육청에서는 뒤늦게서야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 문화일보>
사실 나도 해당 사건의 기사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학생인권이니 교권추락이니 해도 학교현장에서 이 정도까지의 일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이야기를 아마 들어보았을 것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두면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각종 범죄가 발생한다는 이론인데 사소한 무질서 하나를 방치했다가는 결국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추측컨대 아마 해당 학급의 아이들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기에는 수업시간 단상 쪽에 휴대폰 충전기를 꽂아 넣고 있는다든지 여름철에 반팔이나 나시 차림으로 있는다든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나 교사가 아무런 제제가 없으니 이들은 더욱 과감해져 아마 이런 안하무인격의 행동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웠다.
애초에 교사가 처음부터 좀 더 강력하고 단호하게 아이들을 지도했더라면 사태가 과연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해당 교사는 '큰 문제는 아니었다. 큰 처벌은 원치 않는다.' 고 했지만 결국 이런 생각들이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용인하게 되었고 아이들은 결국 최소한의 선마저 넘어버린 꼴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대체 저 선생님이 무슨 힘이 있어서 아이들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것이냐 이미 교권도 추락할 대로 추락한 마당에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 말이다. 이 말도 맞는 말이다. 지금 현 상황에서는 이런 일들이 생겨도 처벌 기준이 약하고 사건이 언론에 크게 부각되지 않으면 슬그머니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이다. 사건의 심각성만 인지한 채 우리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결국 제2, 제3의 똑같은 일들은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빌미 삼아 우리는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그 원인을 분석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이런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자꾸 생겨나는지 그 원인을 되짚어보자.
우선 이런 아이들은 가정에서도 통제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성향이 거칠고 반항적인 면도 있어서 부모와의 갈등도 심한 편이고, 부모가 반쯤 포기한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집에서 쇠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처럼 학교에서 교사를 대할 때도 가정에서 부모를 대하는 모습과 똑같이 대하는 경우가 많다. 즉 평소 어른에 대해 반항적이고 불신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보니 교사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나 예의조차 갖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런 학생의 부모들은 가정에서 통제가 잘 안 되다 보니 옛날처럼 오히려 학교에서 강력하게 지도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학생인권이 강화되고 선도의 목적이 강한 요즘의 학교에서는 이들 부모가 바라는 강력한 계도 조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행 학교들의 전체적인 선도 규정도 문제다. 이번 일이 언론에 제보되어 부각되었기에 망정이지, 특정 학교에서 소리 소문 없이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아마 학교에서는 교권 보호위원회나 생활교육위원회(선도위원회) 정도를 여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선도위원회에 처음 이 문제가 다루어졌다면 기껏해야 사회봉사나 특별교육 정도 처분에서 그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그 정도 조치로는 아이들이 진지하게 반성하는 경우를 보기 힘들고, 학교 복귀 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일이 있더라도 피해를 입은 선생님은 이 학생의 계속 담임이고 계속 수업을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해당 선생님에게는 앞으로의 수업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교권 보호위원회의 경우도 애매하다. 아마 이 건이 교권보호위원회로 넘어간 순간 해당 선생님은 '그동안 아이들 지도는 어떻게 했냐'는 경위서와 질문, 심할 경우 책임 추궁도 받을 것이다. 또한 해당 학생에게 강력한 조치가 내려진다 할지라도 학부모가 항소하거나 재심, 행정심판으로 가면 학교가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도 일을 강경하게 처리하기보다는 타협을 보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쪽을 선호한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해당 학생들의 깊은 반성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국 피해자만 상처를 입고 일은 제대로 해결 안 되는 경우가 생겨 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의 처벌기준이 약하고 제대로 된 처벌을 못한다는 점을 악용한다. 그들은 학교의 규정을 크게 무서워하지 않고 일탈행동을 저지른다. 일명 막장 짓을 하더라도 그들에게 학교 처벌이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고 어떻게든 졸업은 시켜주는 규정인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교권보호를 위한 관련법을 강화하고 구체화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를 학교 학생, 학부모, 교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홍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은 2019년 개정되었다. 하지만 정작 학교의 학생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교원조차도 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어렴풋이 그런게 있다 정도를 알고 있었지 해당 법에 대한 내용은 이 글을 쓰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학교 폭력이나 학생 인권은 그토록 강조하고 1년에도 몇 번은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교육청이 교원 지위 향상이나 교권 보호에는 왜 이토록 관심이 없고 미온적인지 모르겠다. 참 기이한 일이다. 때문에 선생님들은 당연히 알고 있고 누려야 할 권리를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문제 학생들을 대하고 있다.
또한 교권보호위원회는 반드시 당사자인 교원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평소에도 학생, 학부모의 눈치를 보고 있는 교원이 과연 적극적으로 학생을 고발하고 학생에게 강력한 처벌을 요구할 수 있을까? 교육적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교육적으로 아이들을 선도하는 것을 교육받은 교사들이 직접 말 안 듣는 아이들을 고발하라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결국 이에 대해서는 정부나 교육부,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선 당사자인 교원이 가질 수 있는 교권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주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또한 교사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는 경우도 다양하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법을 좀 더 세분화하고 구체화시키고 해당 처벌기준을 보다 명문화하여야 한다.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학생 학부모에게도 알려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필요하다.
학교전담경찰관(SPO)는 현재 학교폭력과 관계된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학생만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폭력이라면 모든 것이 학교폭력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교사의 경우에도 학생, 학부모로부터 폭언, 폭행을 당했다면 충분히 학교폭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권보호위원회에는 반드시 SPO도 꼭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도 명문화해야 한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밞지 않는다 했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교사는 아이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그들을 교육하고 바른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역할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이렇게 되면 교사는 싫든 좋든 거친 학생들도 계속 가르치고 지도 해야 되는 입장이 되는데 정작 이런 교원을 위한 법적 보호조치가 미약하다면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번 깨진 유리창을 그 상태로 놔두면 주변의 유리창도 모두 와장창 깨지게 된다. 그때서야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이는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불과한 것이다.
깨진 유리창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은 신속하게 깨진유리창을 갈아 끼우는 것이다.
갈수록 교권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 교권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알리는 길만이 유리창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