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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교는 '왕따'보다 '은따'가 문제입니다 1

by 한동훈


예전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었다. 특히 집단 괴롭힘, 왕따 등으로 청소년 자살사건까지 생기자 정부에서도 학교 폭력법을 강화하고 전담경찰관을 배치하고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펼쳤다.


학교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실제 이런 조치들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 아이들은 꾸준한 예방교육 덕분에 폭력 특히 학교폭력 문제를 굉장히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고, 집단 괴롭힘이나 일방적 괴롭힘도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특히 학교폭력 문제가 법 문제가 되다 보니까 피해자 가해자가 생기면 부모들끼리 법정 공방까지 가서 다투는 일도 많이 생겼다. 이 때문에라도 아이들끼리는 학교에서 특히 행동을 조심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방적인 폭력이나 공개적인 집단 따돌림인 '왕따' 사건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학교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왕따가 줄어든 대신 여전히 '은따'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은따는 '은근한 따돌림'을 일컫는 말로 정작 피해자인 당사자가 아니면 그 행위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닌다.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청소년들이 SNS나 단톡방을 통해서도 은따를 만들기도 한다. 피해자가 특정 캐릭터를 닮았을 때 SNS 상에 특정 캐릭터를 게시해놓고 서로 비난 댓글을 달기도 하고, 본인들만의 비밀 톡방에서 피해자 모르게 피해자를 계속 험담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은 그 집단 내의 누군가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즉 증거가 불명확한 교묘한 따돌림인 것이다.


물론 따돌림이 꼭 상대를 괴롭히는 것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당사자가 존재하는데도 그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든지,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든지, 밥을 먹거나 단체행동을 할 때 아무도 껴주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은근한 따돌림(은따)'에 해당한다.


학급에서 이런 은따가 생겨나는 데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1. 원래는 메이저 그룹이었다가 혼자 떨어져 나온 케이스

튀는 행동을 한다든지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다든지 등의 딱히 은따가 될만한 요소는 없는 아이인데 그룹에서 은따가 된 케이스다. 이런 경우는 교사 입장에서도 가장 해결하기가 어렵다. 또한 이런 문제는 사소한 오해나 서로 간 의견 충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그룹에서 A와 B간의 갈등이었는데 여기에 C와 D가 B의 편을 들어주게 되면서 A는 저절로 소외되고 은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메이저 그룹에 속한 이런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아이들이라서 서로 양보가 잘 안 된다. 또 이런 문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교사가 이들 간의 갈등을 중재하려 했다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은따가 된 아이도 문제다. 이런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메이저 출신이기 때문에 마이너 그룹에 들어가는 것도 꺼려한다. 또 들어가고 싶어도 서로 성향이 너무 달라서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자발적 외톨이가 되어서 1년을 그냥 버티기도 한다. 이를 심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들의 경우는 자퇴하는 경우도 꽤 볼 수 있었다.



2. 특별한 문제는 없는데 평소 성격이 소극적이다가 은따가 된 학생

고등학교에 첫 입학하는 1학년들을 보고 있으면 저마다 낯선 환경에서 온 아이들이 3월 눈치작전에 이어 4월부터 본격적으로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의도적인 관계 맺기를 좋아하지 않거나 서툰 학생들이 꼭 있다. 그러다 보면 2-4명씩 그룹은 생기는데 나중에는 어디 어울리지도 못하고 혼자 남거나 소외되는 아이가 생긴다. 이런 분위기는 교사나 학부모가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4월이라면 그래도 교우관계를 형성할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아이들일수록 행동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교사나 학부모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관심을 안 가지고 방치해 버린 채로 그냥 시간이 지나 버리면 이후로는 그 누구도 아이에게 접근하지 않게 된다. 일명 투명인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이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도 조별 모임, 자리 배치, 같이 밥 먹기에서 계속 소외된다. 말하려고 친구에게 다가가지만 계속 기회를 놓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다.



3. 쟤는 너무 튄다 싶은 학생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들이란 싸움을 잘하거나 놀기만 하는 아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인정받고, 대인관계가 좋으며, 특별히 튀지 않으면서 다재다능한 아이들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인기 있는 학생들이 이런 유형이라면 반대로 인기 없는 학생은 어떤 학생인지도 느낌이 올 것이다. 수업시간 매번 교사로부터 지적당한다든지, 행동이 튀는 면이 있다든지, 그러면서도 딱히 뛰어나 보이는 것은 없는 학생들이 그 예이다. 학급에서도 첫인상이 중요한데 처음부터 이런 인상으로 아이들에게 잘못 낙인이 찍혀버리면 아이들은 이 친구를 기피하게 된다. 이럴 경우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친구를 만들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4. 일반적인 경계의 범주를 넘나드는 학생

만약 학급의 한 아이가 누가 봐도 명확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라고 치자. 이럴 경우 아이들은 '아. 그 아이는 상황이 어쩔 수 없구나.' 생각하여 이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장애-비장애의 범주를 넘나드는 아이라면 다르다. 상황을 모를 경우 아이들은 '쟤는 정상적인 아이인데도 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거야?' 하여 이 아이를 크게 꺼리게 된다. 피해 아이도 본인의 이런 상황은 알고 있다. 하지만 해결이 되지 않아서 답답하다. 실제 담임 시절 그 경계를 넘나드는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아이들은 "선생님 쟤는 대체 왜 그래요? 진짜 이상해요." 하며 싫어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아이의 특수한 사정이 있었음에도, 아이도 학부모도 특별히 그 이야기를 하기는 원치 않아서 이도 저도 안되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기도 하였다. 그때를 떠올려 볼 때 담임으로서 '좀 더 현명한 대처가 필요했다' 고 계속 후회되기도 한다.


은따를 당하는 피해학생의 심정은 어떨까?


성인이 되어 난 어느 동호회에서 은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인사만 할 뿐 같이 껴주지도 않고, 내가 무엇을 하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혼자 외롭게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동호회에서 내가 맛 본 감정이란 씁쓸함, 소외감, 외로움, 패배감, 타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더불어 한없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있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맛보며 나는 하루빨리 그 동호회를 정리했다.

아마 학교의 아이들은 이런 감정이 더욱 심할 것이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 경험도 없고, 살아본 인생은 고작 학교가 전부인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당하는 따돌림은 더 큰 고통일 것이다. 심지어 나 같은 경우는 동호회라서 나가면 그만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어디 학교가 나가기 쉬운가?

은따를 당하는 아이일수록 학교 활동 참여는 더욱 줄어들었고, 교사의 지시에도 부정적이었다. 늘 우울한 표정에 엎드려 자는 일이 많았고 나중에는 아무것에도 반응하지 않는 자발적인 무기력 현상이 강해졌다. 아마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퇴를 못할 바에는 이런 무기력한 모습으로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모습이 차라리 최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은따 문제에 대한 대처방법은?

솔직히 학급에서 이런 은따 문제가 발생해버리면 담임이나 학교 입장에서도 이를 해결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은따를 시키는 아이들의 명확한 가해 증거도 없을뿐더러 교우관계란 것이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맺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예방이 최우선이다. 그리고 혹시나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피해 학생뿐만 아니라 담임교사(학교), 학부모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 글에서는 은따 문제 해결을 위해 각 주체별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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