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이름처럼 다른 사람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모방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특정 움직임을 행할 때나 다른 개체의 특정 움직임을 관찰할 때 활동하는 신경세포를 말한다. 즉 옆 사람이 하품하면 내가 따라 하게 되거나,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슬퍼하면 나도 슬퍼하는 공감 능력, 부부가 서로 닮아가게 되는 현상이 바로 이 거울 뉴런이 반응하는 현상이다.
학교도 마찬가지인데 학교에서 아이들은 담임을 닮아간다.
3월 처음 교실 분위기는 어색하고 뭔가 어수선하다. 처음 이 아이들을 접하는 담임도 상당히 낯섦과 이질감을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가면 갈수록 아이들은 학교에서 마주치는 담임의 모습을 배우고 닮아간다.
예를 들어 담임이 조용하면서도 독서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면 아이들 역시 학교에서 책을 많이 읽고 점잖은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반면 담임이 적극적이고 활달하고 긍정적인 성격이라면 아이들 역시 학교에서 밝고 쾌활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희한하게도 어른(교사)의 안 좋은 모습조차 닮아간다. 초임 시절 학교에는 한 담임선생님이 계셨는데 이분은 수시로 5-10분 정도 지각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 반 아이들도 지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 반은 전교에서 지각 횟수가 가장 많았다.
그때를 기억하는 나는 그래서 담임을 맡았을 때 조금이라도 더 일찍 출근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내가 지각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내가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아이들에게 말할 명분도 있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 꺼내기가 부끄럽지만 실제 그래서 내가 맡은 반들의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교칙을 잘 지키는 편이었다. 점잖은 분위기 속에서 교칙을 잘 준수하는 담임(나)을 보며 아이들도 안정적으로 학교 생활을 잘해 나갔다. 물론 간혹 아이들의 이탈 현상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는 찻잔 속의 태풍처럼 큰 문제는 되지 않는 경미한 것들이었다.
특히 '꾸준함과 부지런함'을 생활신조로 삼았던 나는 담임을 할 때는 최대한 지각을 하지 않고자 노력했다. 고등학교 생활은 학업을 위해서라도 꾸준함이 중요했는데 나는 늘 그 시간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정말 간혹 가다 몸이 아프거나 아이가 아침부터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아이들에게 단톡방을 통해 아침 일찍 문자를 보내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은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는데 그날은 비가 억수로 왔고 차가 막혔던 날이었다. 나는 운전하기에 지쳐서 아이들에게 단톡방으로 양해를 구하는 일도 까먹었고 조회시간에 5분이나 늦게 지각하고 말았다.
그러자 늘 나에게 지각으로 구박받던 학급반 한 아이가 그날은 웬일로 일찍 와서
쌤. 이리 와보세요. 쌤 저보고 맨날 일찍 오라고 잔소리하시더니 오늘은 쌤이 늦게 지각하셨네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쌤 좀 혼나셔야겠네요.
와하하
개그 본능 있는 아이의 말에 학급 아이들은 모두 따라 웃었지만 정작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나는 아이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너희들 보고 '일찍 와라. 지각하지 마라' 해놓고 담임인 내가 지각해서 미안하다고. 그 이후로 나는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지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첫 입학했기 때문이었다. 사정상 내가 매일 아침 등원을 시켜주어야 했는데 아이 등원까지 하면서 학교에 정시 출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매번 시간에 쫓겨가며 허둥지둥 학교에 오는 모습을 담임반 아이들에게 보이기도 싫었다. 그런 모습이 거울 뉴런처럼 또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낳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결국 이것이 올해 내가 비담임으로서 많은 일을 맡겠다고 하면서 까지 담임을 포기한 이유였다.
그러고 보면 학급에서도 행실이 바르거나 모범적인 아이들은 항상 부모가 차분하고 생각이 깊으신 분들이 많다. 이런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아이에게 관심은 많으시지만 성적에 대한 잔소리는 잘 없으셨고, 평소 말보다 행동으로 아이들의 모범이자 버팀목이 되는 분들이 많았다. 아마 가정에서도 최대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자신을 꾸준히 성찰하는 분들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렇게 생활해 오셨기에 아이들도 학교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학교에서는 교사가 모범을 보이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어른의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 물론 어른도 일탈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는 있고 때론 쉬거나 나태한 모습만을 보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섭게도 그 순간을 포착하고 또 그 행동을 따라 한다.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항상 아이들 앞에서 부모나 교사가 행동을 조심하고 또 꾸준히 자신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