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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감독관을 마친 어느 교사의 심정

by 한동훈

예전 수능날 아침 학교 정문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모교 후배들로 구성된 응원단은 학교 정문 앞에서 북과 꽹과리를 치며 선배 수험생들을 맞이했고 일부 선생님들은 보온 통에 차와 음료를 들고 나와 수험생들에게 긴장을 풀라고 건네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수능날 아침 학교는 이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꽤 멀다. 북과 꽹과리를 치는 응원단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 흔한 수험생들의 부모님들조차 학교 앞에 많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아침부터의 축제 분위기나 지나친 부모님의 관심이 시험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할 수험생들을 괜히 들뜨게 만드는 탓인지 어느 순간 그런 문화는 사라졌다. 정작 수능날 아침 요즘 학교는 아직도 해가 뜨지 않은 어두컴컴한 환경 속에서 차량통제를 하고 있는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수험생들은 조용히 하나둘씩 시험을 보기 위해 학교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났어도 수능날 아침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수능을 앞두고 있는 부모와 학생의 마음일 것이다. 그들은 고3이라는 무거운 부담감 속에 1년 동안 수많은 고생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숨가쁘게 달려왔을 것인데 이제 그 노력의 결실이 이번 시험을 통해 잘 맺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 간절한 마음을 잘 알기에 수능날 아침 1교시 첫 감독을 들어가는 내 마음도
항상 무겁고 긴장된다.


7시 30분 감독관 연수를 최종적으로 받고, 8시 10분 고사본부에서 물품을 수령하여 교실로 들어가면, 수험생들의 긴장한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교실에 들어오면 '이제 진짜 시험이 시작되는구나.' 생각하며 더욱 긴장하고 입을 굳게 다무는 수험생도 있다. 눈을 질끈 감고 갑자기 간절히 기도를 시작하는 수험생도 있다. 전날 다들 잠은 잘 잤는지 의문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등교한 수험생들은 결전의 날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 없이 긴장한 얼굴로 감독관인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는 시험 본령이 울리기 전까지 오롯이 감독관의 시간이다.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거두고, 혹시나 부정행위로 처리될 물건들이 있는지 살피고, 신분증 수험증을 통해 본인 신원 확인을 하고, 부정행위와 시험 요령을 안내하고, 시간에 따라 해야 될 행동들을 안내하고, 답지와 문제지를 순서나 유형에 맞게 제대로 배부해야 하는 등, 각 시간에 따라 감독관들이 해야 될 일들은 생각보다 많다.


1교시 본령이 울리기 전에는 혹시나 내가 놓치거나 실수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계속 생각하고 수시로 살핀다. 단순히 실수하여 내가 민원의 소지가 될까 봐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감독관으로서 24명의 수험생이 허락된 규정 내에서 최대한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내가 무겁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능 감독관이기 때문에 내 고사장 수험생들을 위해 한 치의 실수도 해서는 안된다는 부담감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문제지를 나눠 주면서 나랑 같이 고사실에 들어온 감독관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감독관은 펜을 잡은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긴장되었으면 그러시는 건지. 수능은 그렇게 수험생뿐만 아니라 감독관도 몹시 긴장하게 만드는 괴물인가 보다.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생각하고, 나는 본령 전 마지막으로 수험생들에게 필요한 안내 사항을 큰소리로 말했다.

"답지 필적확인란 꼭 작성해주시고 문제지에도 본인 수험번호 이름 써주세요. 본령 전에는 문제지 펼쳐서는 안됩니다."



이윽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1교시 언어 영역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독해력, 추리력, 응용력이 요구되는 시험이다. 특히 언어영역은 변수가 많고 그날의 감정 상태나 컨디션에 따라서도 많이 좌우되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잔뜩 긴장한 채로 눈에 불을 켜고 지문 읽기와 문제 풀이에 열성이다. '1교시를 망치면 기분이 잡쳐서 수능 전체를 망친다.' 말이 있을 정도로 수험생들에게 1교시는 중요하다.


감독관으로서 시험 종료령이 울리기 전 수험생들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이번 시험이 전체적으로 쉬웠는지 어려웠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다. 간혹 열심히 풀었던 학생들 중 시간이 남아서 막바지에 여유 부리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런 학생들이 꽤 보인다면 이번 시험은 난이도가 평이한 것이다. 반면 그런 학생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번 시험은 굉장히 어려웠던 것이다. 이번 시험은 어느 쪽이었을까.

1교시는 항상 변수가 많고 긴장감이 가장 많은 시험이다. <출처 머니투데이>

다행히 1,2교시 내가 시험감독을 들어갔던 교실들에서는 혹시나 모를 부정행위나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미리 사전에 공지를 들어서인지 수험생들은 규정을 잘 준수하면서 시험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막바지 4교시(탐구영역) 때 다소 아쉬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한 수험생이 열심히 문제를 풀던 중 답안 수정을 위해 감독관에게 수정테이프를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감독관이 건네주려는 그 순간 종료령이 울리고 만 것이었다. 그 순간 수정테이프를 건네려는 감독관도, 수정테이프를 건네받으려는 학생도 당황하여 순간적으로 얼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종료령이 울렸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그 수험생은 정답이 그게 아니었던 것이 이제 생각이 났는지 두고두고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몹시 괴로워했는데 이를 보고 있는 나도 마음이 착잡하고 안쓰러웠다. 집에 가서도 그 수험생 표정이 내 눈앞에 아른거렸고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이 들기 전에도 그 순간의 내 대처가 과연 문제가 없었는지 계속 생각해 봤다.


수능시험에서는 상위권 대학일수록 점수 간극이 좁다. 45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448점이나 445점이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상위권 대학, 상위권 학과에서는 그 3점 차이도 꽤나 큰 격차일 수 있다. 아마 마지막 답안 수정을 놓친 그 수험생도 3점짜리 문제를 놓친 것 같았는데 이것이 그 수험생의 대학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는 밤이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수능을 치르고 나온 수험생들에게 수고했다 한마디 덕담만 건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고했다는 그 한마디로 수험생들에게 만족스러운 위로가 될지는 의문이다. 이제부터 수험생들은 대부분 다가오는 겨울만큼이나 차가운 자신의 현실을 맞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점수 몇 점 차이로도 대학 서열이 달라지고, 아마 대부분은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보다 한두 단계 낮은 대학으로 가야 할 것이다. 또 어떤 수험생은 소신 지원했지만 합격자 명단에 본인이 없음을 알고 깊은 탄식과 서러운 눈물을 흘릴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본인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했다는 아쉬움에 펑펑 울 것이고, 누군가는 한 두 문제 더 맞출 수 있었다고 시험장에서의 본인을 떠올리며 계속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벌써부터 재수를 준비한다며 앞으로 1년을 또 어떻게 참고 버텨야 하나 막막해하고 있을 것이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수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이처럼 차갑고 냉정한 현실을 맞이해야 한다. 이런 수험생들에게 "수고했어" 한 마디뿐 더 이상 내 일 아니라고 관심을 안 가지는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아이들에게 수능은 3년간의 고등교육 과정을 마무리하는 중차대한 시험이다. 하지만 그 결말은 수험생들에게 주로 기쁨과 만족감을 주기보다 다수에게 좌절과 한계감을 느끼게 한다. 결국 대학은 서열화 되어있고, 우리사회는 치열한 경쟁사회이고, 상호 배려와 협동은 공허한 것이고, 무소의 뿔처럼 결국 혼자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수험생들에게 강하게 인식시키며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게 만든다.


이런 모습 이런 제도가 희망을 던져야 할 우리 교육이 앞으로도 나아가야 할 길인지 의문을 던져본다. 수능 감독을 마친 감독관으로서 내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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