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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경험

by 한동훈

예전 내가 대학교 기숙사 생활할 때의 일이다. 한 번은 야식을 시켜 먹으면서 동기들끼리 '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서로 이야기해본 적이 있었다. 동기들 입에서는 '수업 능력, 생활지도 능력, 상담 능력'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런데 그중 유달리 한 명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나는 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 아이들 각자는 저마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나 진로가 다른데, 교사가 세상에 대한 경험이 적다면 과연 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지도나 조언을 할 수 있을까? 특히 비행이나 탈선 등 문제를 일삼는 아이들일수록,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사부터 그들의 환경을 직접 만나 봐야 하지 않을까? 또 교사가 그런 경험이 진할수록 아이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말도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럼 평소 올바르게 생활하고 있는 예비교사들은 그런 체험을 위해서 직접 술 담배도 자주 해보고 가출이나 탈선 땡땡이도 해봐야 한다는 소리냐 나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지만 당시 그 동기의 말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몇 년 전 내가 어느 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느 반에 좀처럼 학교를 나오지 않고 가출해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당시 생활지도를 맡은 나는 학년 부장님과 함께 학교 규정을 들먹여가며 계속 아이를 지도했지만 아이는 크게 개선되는 점이 없었다.


수업시간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아이는 늘 입을 닫고 있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멍하게 앉아 있었다. 도대체 저 아이는 왜 저렇게 생활할까 무척 궁금했던 나는 학년부장님과 함께 그 아이 집에 가정방문을 갔다. 그리고 그때서야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두 칸짜리 단칸방에 부모는 서로 이혼한 상태.

부모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있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 혼자서 그 아이와 동생을 키우고 있는 상황.


조심스럽게 아이의 보호자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했으나 그 할머니조차 입을 닫은 상태였다.


불도 잘 들어오지 않고 곰팡이로 얼룩진 낡고 초라한 집에서 모두가 무기력한 상태로 있는 가정환경.


그때서야 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아이가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심각성을 깨달은 나와 학년부장님은 이후 아이와의 상담 때 아이의 행동과 환경에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아이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흡연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생활지도를 할 때도 가장 이해 안 가는 측면이 바로 아이들의 반복된 흡연이었다. 특히 나에게 크게 혼나고 나서 다시는 흡연하지 않겠다고 서약서까지 쓴 담임반 아이가 또다시 두 번 세 번 흡연으로 적발되는 경우를 볼 때엔 실망감과 함께 배신감마저 밀려왔다.


"서약서까지 쓴 녀석이 대체 왜 그런 거냐? 학교 교칙이 우습니? 선생님께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하던 너 스스로가 부끄럽지도 않니?"


그러나 이렇게 아이를 윽박지르고 달래 봐야 소용이 없었다. 좀 조심하는가 싶더니 아이는 또 똑같은 흡연으로 적발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한 선생님이 조언을 해주셨다. 그 선생님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워야 적성에 풀릴 정도로 매일 담배를 달고 사는 분이셨다.


"쌤 너무 그러지 말어. 우리 같은 골초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흡연을 하지 않으면 정말 몸이 미칠 지경이거든. OO이도 아마 상습범이라 담배 못 피우는 날엔 학교에서 무지 힘들 거야. OO이가 쌤을 무시하거나 싫어해서 그런건 아니니까 그런 부분은 이해를 좀 해줘요."


그러고 보면 OO이는 학교에서 흡연 외엔 딱히 큰 문제는 없는 학생이었다. 선생님들에게도 인사도 잘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었고 교우관계도 좋았다.


선생님의 조언에 힘을 얻은 나는 다시 OO이와 면담을 진행했다. OO이는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담배를 완전히 끊기는 힘들다고 고백했다. 나는 OO이와 학교와 학교 주변에서는 흡연하지 않기로 합의(?)를 봤다. 그 후 OO이는 졸업할 때까지 흡연 건으로 생활교육 위원회(선도위원회)에 회부되지 않았다.



지금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저마다 살고 있는 환경이 다르고 살아왔던 경험도 다르다.

그런데 우리(교사)는 이런 아이들을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만 비추어 너무 하나의 잣대나 관점으로만 지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꽃들을 보고 있으면 봄에 피는 꽃도 있고, 여름에 피는 꽃도 있고, 심지어 겨울에 피는 꽃도 있다. 아이들 저마다는 각자 기질도 다르고 만개하는 시기도 다르다. 그런데 교사의 일방적인 하나의 환경 강조는 나머지 꽃들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꽃들은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다. 학급의 아이들처럼


중요한 것은 교사가 이렇게 저마다 다른 시기에 만개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야 하고, 다양한 유형의 아이들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교사에게는 다양한 삶의 경험과 공부는 필수적이고 중요하다.


우리가 삶의 경험에서 우러 나오는 조언을 할수록 아이들도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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