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학교에서 생활교육위원회(줄여서 생교위)업무를 맡았다. 학교의 문제 학생들을 다루는 생활교육 위원회는 교사라면 누구나 기피하는 업무 중 하나이다.
솔직히 1년간 해 본 경험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정말 힘들었다는말밖엔 안 나온다. 수시로 생활규정을 어기는 애들에게서는 학생으로서의 기본적인 신뢰감을 기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속상한 일도 많았다. 또 행동과 언행이 거친 아이들을 달래고, 생교위회의 종료 후 교내 봉사 등 또다시 생활지도를 해야 하는 일도 힘들었다.
가장 힘든 건 교사 학생 간 충돌이 발생할 때였다. 학생과 부딪친 교사는 학생을 나에게 넘기면 그만이었지만 나는 양측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의 잘못을 찾아내어 학생 학부모에게 이해시키고, 또 생활교육위원회는 위원회대로 따로 열어야만 했다. 이것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12월 현재까지 우리 학교에서 다루어진 생활교육위원회 회의는 총 15번이었고 회의 한 번당 다루어진 안건은 1-3개씩, 총 32건의 안건을 다루었다. 32건이나 되다 보니 제법 통계도 내볼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1년간 생교위를 맡으면서 다루어진 문제 학생들의 특성과 그들을 상대하며 내가 느꼈던 소회를 풀어보고자 한다.
문제 학생들의 가족관계는 솔직히 좋지 못했다.
32개의 생교위 안건에 다루어진 아이들은 총 20명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중 7명이 이혼 가정이었다는 점이다. 평균적으로 학급에 파악되는 이혼 가정이 한 두 가구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많은 수치라고 볼 수 있다.
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좀 더 상세히 조사해보면 이 아이들 중에 가족관계가 문제 있는 경우는 아마 더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보통 학부모들은 교사가 자기 아이를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까봐, 가족과 관계된 일은 말하기 꺼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임이 구체적인 가족관계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실제 담임 의견서를 보면 아버지 어머니 성함이나 연락처 중 한쪽이 비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아마 그렇게 적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아이들이 저지르는 일탈 및 방황 행동은 결국 불안정한 가족 관계와 어느 정도 관련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독하게 신뢰감이 없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이 아이는 생활교육위원회에 작년에도 여러 번 올해도 2번째에 회부된 아이인데 생활교육위원회라는 엄중한 자리임에도 늘 적대적이고 반항적으로 나왔다. 교사의 질문에도 꼬박꼬박 말대꾸였고 교내봉사 등 추후 지도하기도 힘들었다. 아이는 신뢰감이 전혀 없었다. 늘 약속을 밥먹듯이 어겼고 학교를 나오라고 약속을 잡으면 겨우 3-4번에 1번 나올까 말까 한 아이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의 가족 환경은 좋지 못했다. 엄마는 집을 나간 지 오래였고, 아빠 혼자서 아이를 케어하고 있었지만 아빠와 사이도 틀어진 지 오래였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이가 부모에게 느끼는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그토록 신뢰감이 없는 이유도 부모를 보는 눈으로 어른과 교사, 세상을 바라봐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가족관계가 심하게 틀어져서 가족끼리 좀처럼 대화를 안 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아이 가정에는 생교위 일정이나 결과 통보도 학생, 학부모에게 각각 전화를 걸고 이중으로 해야 해서 일이 배가 되었다. 심지어 생활교육위원회 진행 중에도 부모 학생 간 언쟁과 갈등이 너무 심해서 그 자리에서 둘 사이 관계의 조정을 내가 맡아야 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부모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조금이라도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고 품어주고자 했다면 이 아이들의 일탈행동은 없었을까?
한번 걸린 아이들이 또다시 생활교육위원회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청소년 범죄율을 보면 초범보다는 이전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이 또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유사하게 아이들도 한번 생교위에 회부된 학생이 다음에 또 생교위에 회부된 경우도 많았다. 좀 전에 생교위에서 다루어진 안건은 32건인데 회부된 학생은 총 20명이라고 했다. 이는 일부 아이들은 여러 번 생교위에 회부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생교위에 여러 번 다루어진 아이들의 안건은 대체로 비슷했다. 주로 교내외 흡연과 출결 불량, 수업시간 이탈이었는데 한번 생활교육 위원회에 올라오면 몇 달 후엔 여지없이 또 같은 건으로 올라오곤 했다.
이는 선도 규정을 가볍게 여겨서 그럴 수도 있고 평소 굳어진 잘못된 습관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흡연을 예로 들면 한번 흡연으로 니코틴으로 중독된 뇌는 좀처럼 끊기가 힘들어진다. 결국 아이들은 처음 한순간은 조심하겠지만 며칠 뒤면 또 흡연을 하게 되고 그러다 결국 또다시 적발되고 마는 것이다.
출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습관성으로 지각을 하거나 학교를 안 나오기 시작한 아이들은 한번 생활교육위원회 징계를 받았어도 돌아서면 또 지각 결석 등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이미 학교에 대해선 부정적 시선이 가득하고 학교에 와도 무기력한 상태만 반복될 뿐인데 아이들이 꾸준하게 학교를 나올리는 만무했다.
생교위에 여러 번 같은 잘못으로 회부된다는 것은 학생의 반성 정도가 그만큼 약했다는 뜻이다. 또한 그만큼 생교위의 징계 자체도 아이들에겐 경각심을 주지 못했다는 소리다. 실제 우리 학교 규정에는 흡연의 경우 여러 차례 누적이 되었음에도 최대가 특별교육이었다. 출결 문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도 이런 부분을 알기에 생교위를 여러 번 거쳤음에도 내성이 생기고, 습관화된 잘못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생활교육위원회 규정을 좀 더 세부적으로 손보고, 여러 번 생교위를 거친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상담 및 집중 관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생교위에 회부된 아이라도 학부모 성향에 따라 아이는 달라졌다.
그런데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된 아이들이라 해서 학부모 성향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학부모는 아이가 생교위에 회부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각성을 깨닫고 생교위 당일날 부부가 각자 연차를 쓰고 회의에 모두 참석하기도 했다. 이런 학부모들일수록 아이의 평소 학교 생활태도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하고 교사들의 조언에 공감을 표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학부모들의 아이들이 생교위에 다시 올라오는 경우는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아이들이 부모의 많은 관심과 노력에 진정으로 반성하여 그럴 수도 있고, 더 이상 부모를 실망시켜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서 그럴 수도 있다.
반면 어떤 아이 학부모는 연락도 잘 안될 뿐더러 여러 번 생교위를 거쳤음에도 얼굴 한번 비춘 적이없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바빠서 그렇다지만 학부모가 이렇게 아이 문제에 소극적일수록 아이는 더 제멋대로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아이는 부모와 대화가 워낙 없다 보니 나와 주고받은 몇 마디가 부모와 며칠간 나눈 대화보다 더 많았다고 말했다. 평소 얼마나 부모-아이간 대화가 없는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었다.
두 사례를 종합해보면 결국 아이는 부모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났다. 그리고 그 사랑과 관심은 청소년인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필요하다.
<따뜻한 가족관계는 청소년기에도 여전히 필요했다.>
아이들은 누군가 자신을 잡아주기를 바랐다.
특징적인 것은 이런 아이들일수록 평소 대화나 소통, 조언에 목말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생활교육위원회를 거친 아이들의 80% 이상은 학교 상담실을 좋아했다. 이는 상담 선생님이 그만큼 상담을 잘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아이들은 시원하게 자기 속내를 털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학부모와 학교 선생님들은 그들의 이런 욕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아이가 잘못을 하면 잘못한 그 행동에만 포커스를 맞추어 아이를 바라봤고, 처벌규정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아이를 혼내기에만 바빴다.
물론 제가 이러이러한 부분은 잘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의도는 그게 아니었고요. 그리고 또
어쨌든 잘못한 거네요?
아, 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이런 이유가 있었고 원래 제 생각은.....
잘못한 것만 인정하면 되지 뭘 그렇게 말이 많을까요? 이런 변명이 과연 학생한테 도움이 될까요?
네;;
누군가로부터 공격 비난을 받으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거기에 대한 반발심부터 생기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제대로 된 이해나 공감도 없이 자기들을 혼내는 어른들을 싫어했다. 심한 경우는 즉각적으로 반발하며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소극적인 경우라도 어른들을 '꼰대'라고 부르며 일부러 피해 다니고 대화의 문을 닫아버렸다.
아이들은 이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또 한 번 아이와 사이가 틀어졌을 경우 교사는 아이들을 더욱 더 생활 지도하기가 힘들어진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일으켰을 때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이의 문제행동을 직면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이들은 문제 행동이 적발되었을 때, 어렴풋이라도 자기가 잘못한 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혼부터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잘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틀어지거나 어긋나있는 자기 마음부터 타인이 공감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이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아이의 상황은 이해되었고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도 좀 더 쉽게 파악될 수 있었다. 아이들도 대화가 길어지고 자기 마음이 공감받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이성적으로 차분히 생각해서 자기 잘못을 자발적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기도 했다. 아이와 래포가 많이 좋아질 때는 아이가 수시로 교사를 찾아와 자기 고민을 털어 놓으며 해결책을 자문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뇌가 발달단계에 있는 청소년들은 때론 감정이 격정적이고, 이성보다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도 하며, 순간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지 못한다. 한편으로 자기 행동에 대해서도 평소 제대로 된 성찰이 없어서 잘못을 저질러도 그게 큰 잘못이었구나 뒤늦게나마 깨닫는 경우도 많다.
고무적인 것은 아이들의 뇌도 전두엽의 발달로 시간이 갈수록 점차 성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잘못을 접했을지라도 아이에게서 제대로 된 반성과 성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아이의 미래 모습은 좋아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들을 접하고 지도하는 어른들의 행동과 태도는 중요하다. 아직도 그들은 방황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누군가 자기에게 올바른 조언을 해주기를 갈망한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할수록,또 진심어린 조언을 통해 그들에게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수록, 그들도 닫혀 있는 마음의 문을 열고 바른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