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상황, 미운 사람들
지난 화에서는 5년 만에 다시 이력서를 쓰게 된 저의 여정을 공유했었죠.
이번 화에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야기, 바로 제가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들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을까 합니다. 단순히 "새로운 도전"이라는 거창한 이유 뒤에 숨겨진, 5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씁쓸하고 때로는 아팠던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 아마 여러분 중 누구는 깊이 공감하고, 또 누구는 '나도 저랬는데!' 하며 무릎을 탁 칠 수도 있을 겁니다.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구체적으로 했던 건, 바로 우리 팀의 김 팀장님을 보면서였습니다. 김 팀장님은 저에게 항상 롤모델 같은 분이었습니다. 한 직장에서 25년 이상 근무하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고, 후배들에게도 존경받는 분이셨죠. 그분은 회사가 곧 자신의 삶이자 자부심이라고 여기는 분이었습니다. "다소 대리, 우리는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해. 회사는 우리에게 보답할 거야." 늘 그렇게 말씀하시던 분이셨어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김 팀장님이 한순간에 팀원으로 강등되었다는 겁니다. 회사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맞물린 인사였지만, 젊은 인재 중심의 조직 개편이라는 명목 아래, 오랜 세월 회사를 위해 헌신했던 베테랑은 아무런 존중도 없이 마치 버려진 장난감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팀장님은 강등된 후, 아무런 배정된 일도 없이 뻘쭘하게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퇴근 시간까지, 그저 앉아계시거나 의미 없이 자료를 뒤적이는 모습은 저에게 너무나 불편하고 비참하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존경했던 분의 모습이 저렇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는 걸까?', '내가 25년 후에 저 자리에 있다면?'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동안 회사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의 롤모델이었던 분의 몰락은 저에게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나의 커리어는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요.
두 번째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옆 팀의 임 과장이었습니다. 임 과장은 전형적인 '강약약강' 스타일의 사람이었습니다. 윗사람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유능한 척했지만, 아랫사람이나 타 부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죠.
어느 날,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임 과장 팀과 함께하는 업무였는데, 내부 감사 결과 큰 책임이 돌아갈 상황이었습니다. 임 과장은 감사팀의 추궁이 시작되자, 책임 면피를 위해 교묘하게 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제가 보낸 이메일 내용을 왜곡하고,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주장하며 모든 화살을 저에게 돌리려 한 거죠.
저는 그 상황이 너무나 어이가 없고 분했습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졌고, 밤새워가며 감사팀에 소명 자료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저의 결백은 밝혀졌지만, 저는 그 과정에서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와 함께 깊은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사람과 계속 한 공간에서 일해야 한다니...', '이곳에서 계속 버틸 수 있을까?'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은 멀리서도 보인다는 말이 있죠. 임 과장의 행태는 저에게 더 이상 이 회사에서 내가 온전히 성장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없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저는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존중해 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커졌습니다.
임 과장과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리 진급 교육 및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진급 교육은 평일 업무 시간 중에 회사에서 진행되었고, 그만큼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중요한 시험이라 집중해서 참여해야 했지만, 임 과장은 제가 진급 교육 중임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저를 불러내 방해했습니다.
그는 감사를 핑계로 저를 계속 불러내서 프로젝트의 문제에 대해 저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마치 제가 진급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적인 방해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소 대리, 지난번 그 자료 다시 확인해 봐. 아무리 봐도 그건 다소 대리 잘못인 것 같은데?",
"이 부분, 다소 대리가 제대로 처리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거야." 끊임없이 저를 추궁하고, 이미 감사팀에 답변한 내용에 대해 계속해서 저를 죄인 취급했습니다.
이 모든 행동은 저의 성장을 방해하고, 제가 성공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순간, 제 앞길을 막고 저를 갉아먹는 독초 같은 존재는 과감하게 뽑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이런 환경에 저를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제 성장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곳에서, 제가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위의 결정적인 사건들과 더불어, 저는 지금의 회사 환경이 나의 커리어를 발전시키기 어렵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 저희 회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보수적이고 경직된 분위기였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변화에 대한 수용도가 낮았고,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개인의 성과나 역량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개인의 의견이 조직에 반영되기 어렵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되는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저는 이곳에서는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정체된 나 자신을 발견: 5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저의 역량은 분명 성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함 속에서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 정해진 틀 안에서의 사고는 제가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 보수적인 회사라는 틀 안에 갇히는 대신, 저의 커리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의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강렬한 동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변화와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개인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퇴근 후 '현타'가 습관이 된 나: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혹은 주말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밀려오는 극심한 허무감과 피로감은 제가 회사를 떠나야 할 또 다른 신호였습니다. 직장이 제 삶의 에너지를 앗아가는 블랙홀처럼 느껴졌고, 저는 더 이상 이런 '현타'가 습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의 인생'을 회사의 일정에만 맞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들은 지방대 졸업 후 행운처럼 입사한 대기업에서 '5년 차 대리'라는 안정적인 직함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습니다. 단순히 연봉이나 직급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직업인으로서 성장하며,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물론, 이직을 결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죠. 하지만 저는 이제 압니다. 나를 갉아먹는 환경에서는 절대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요. 저의 퇴직 사유가 여러분에게도 자신의 직장 생활을 돌아보고, '진정한 나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화에서는 제가 이직에 성공한 제가 새롭게 경험한 기업에서 경험하고 있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5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