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방대 이력서#15]월급 나오는 낙원은 없다

월급 나오는 낙원이란 세상에 있을까요?

by 다소

월급 나오는 낙원이란 세상에 있을까요?


자율 출퇴근, 수평적인 문화, 근사한 사무실까지. 이직에 성공했을 때, 저는 정말 그런 곳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5년간 ‘비용 절감’과 ‘규정 준수’를 신처럼 모시던 보수적인 조직을 떠나, 자유와 자율이 넘치는 회사에 합류했으니 이제 제 커리어에도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출근 첫 주 만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곳은 낙원이 아니라, 제가 알던 모든 업무 기준이 무너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쟁터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규칙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첫째,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으로 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한 직원이 허리가 아프다며 특정 브랜드의 100만 원짜리 의자를 요청했습니다. 과거의 저였다면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규정상 불가’ 도장을 찍었을 겁니다. 제 머릿속의 계산기는 ‘20만 원짜리 표준 의자 대비 80만 원의 손실’이라는 답을 즉각적으로 내놓았으니까요.

하지만 저의 팀장님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직원이 의자 때문에 아파서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우리 회사에 얼마의 손실이 발생할까요? 이 의자가 직원의 생산성을 단 10%만 올려줘도 100만 원은 결코 비싼 투자가 아닙니다."

그의 말에 저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눈앞의 '비용'에 얽매여 있었지만, 그는 직원의 '생산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까지 고려한 '투자'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팀장님의 피드백이 100%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5년간의 경험을 통해 굳어진 제 업무 판단 기준을 처음으로 되돌아보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둘째, ‘효율’이 아니라 ‘효과’를 증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사무실 이전 프로젝트의 첫 회의 때, 저는 평당 단가를 계산해 가장 많은 좌석을 배치할 수 있는 ‘효율적인’ 도면을 자랑스럽게 내밀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완벽한 비용 절감 안이었습니다.

하지만 팀장님은 도면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이 배치에서 직원들 간의 ‘협업’이라는 효과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냥 공간을 빌리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성과를 만들기 위해 이 공간을 이용하는 거잖아요.”

저는 ‘공간의 효율’만 생각했지만, 그는 ‘업무의 효과’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결국 제 도면은 완전히 폐기되었고, 우리는 좌석 수를 줄이는 대신 직원들의 협업과 소통을 극대화하는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밀도를 낮추고, 가치를 높이는 것. 그것이 새로운 세계의 방식이었습니다.


본문 이미지.png



셋째, ‘기능’이 아니라 ‘감성’을 채워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신입사원을 맞이하는 방식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과거에 제가 만들었던 ‘신입사원 비품 지급 체크리스트’에는 노트북, 모니터, 마우스, 키보드 같은 항목들만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신입사원에게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제 일의 전부였죠.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서 제공하고 있는 ‘온보딩 웰컴 키트’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안에는 업무용 장비뿐만 아니라, 회사의 로고가 고급 텀블러, 팀원 전체가 손으로 쓴 환영 메시지 카드, 그리고 회사 주변 맛집 리스트가 정성스럽게 담겨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품 지급이 아니었습니다. 신입사원이 첫날 느낄 낯섦과 불안함을 설렘과 소속감으로 바꿔주는 ‘감성’을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최고의 장비를 지급하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그때 배웠습니다.



꿈꾸던 이직에 성공하고 행복했지만, 결국 월급 나오는 낙원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유와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더 높은 수준의 결과와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치열한 곳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전 직장의 시스템은 저에게서 ‘고민할 자유’를 빼앗아갔지만, 동시에 ‘책임질 의무’도 덜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고민하고, 그 결과에 온전히 책임져야 했습니다.


모든 직장에는 나와 맞는 장점과 나를 힘들게 하는 단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두 번째 이직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디 있을지 모르는 꿈의 직장이라는 낙원을 찾아 헤매는 순례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낙원을 가꾸는 정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의 이력서 15번째 줄은, 그렇게 고통스럽지만 값비싼 깨달음의 기록으로 채워졌습니다.


[16화에서 계속됩니다.]

keyword
이전 14화[지방대 이력서#14] 퇴직 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