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보다는 멀고, 거래처보다는 가까운
‘직장동료와 사이좋게 지낸다’는 말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이 문장은 ‘술자리를 빼지 않고, 상사의 농담에 잘 웃고, 내 의견을 앞세우기보다 조직의 평화를 우선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우리는 ‘회사는 가족’이라는 구호 아래 끈끈함을 강요받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로 건강한 갈등을 회피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회생활의 정답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로 옮긴 뒤, 저는 제가 배워왔던 정답이 완전한 정답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곳에서의 ‘사이좋음’은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관계의 법칙들을, 저는 또다시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야만 했습니다.
첫째, ‘심리적 안정감’ 만들기
무슨 말이든, 어떤 실수를 하든 비난받거나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 '심리적 안정감'
이것이 모든 관계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처음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저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특정 공간의 필요 가구수량을 잘못 계산해, 발주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수천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의 저였다면, 밤새 경위서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며 위장의 통증을 느꼈을 겁니다. 상사의 질책과 동료들의 수군거림이 눈앞에 선했습니다.
저는 다음 날 아침, 비장한 각오로 팀 회의에서 실수를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것은 비난이 아니었습니다. 팀장님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죠.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빨리 해결하고, 다음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 프로세스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거예요.”
그 누구도 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팀은 일사불란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고, 저는 그 과정에서 배제되는 대신 해결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팀워크는 실수를 하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누구든 안심하고 실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이 단단한 땅 위에서라야 비로소 우리는 마음껏 달리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솔직한 친절함’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이곳의 동료들은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솔직했습니다. 하지만 그 솔직함에는 언제나 ‘개인적인 관심과 존중’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바로 ‘솔직한 친절함’의 원칙입니다.
사내 행사를 기획하며 제가 만든 제안서를 발표했을 때였습니다. 발표가 끝나자 동료 팀 동료가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행사 컨셉 자체는 너무 좋은데, 이 예산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경험을 절대 구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사용 만족도가 떨어질 게 뻔하고요. 이 행사가 꼭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대안으로 이런 방식은 어떨까요?”
팀원의 피드백은 날카로웠지만,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성공과 저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저였다면 ‘내 의견에 반대해?’라며 감정적으로 반응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저는 피드백을 ‘나’와 ‘나의 일’을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솔직한 비판이야말로 최고의 동료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명확한 ‘경계 설정’이야말로 최고의 존중입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말처럼 위험한 말도 없습니다. 이곳의 동료들은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의 목표를 가진,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프로페셔널한 동맹’이었습니다.
퇴근 시간이 지난 후 메시지를 보내면 “내일 아침까지 답장 안 주셔도 괜찮아요”라는 말이 덧붙여졌고, 누군가의 캘린더에 '휴일'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면 그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한 회식은 없었고, 사적인 질문은 조심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문화가 정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서로의 에너지와 시간을 완벽하게 존중하는 최고의 배려라는 것을요. 우리는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는 명확한 경계 안에서, 오히려 업무에 더 깊이 몰입하고 서로에게 더 높은 신뢰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회사 동료와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이제 저에게 조금은 다른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불편한 침묵으로 갈등을 덮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 속에서 건강하게 토론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숨기고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위해 솔직하고 친절하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퇴근 후에도 서로의 삶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경계를 통해 서로를 완벽히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직장 동료는 친구도, 적도 아닙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각자의 전문성으로 서로의 등을 받쳐주는 든든한 ‘전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전우애를 쌓아 올리는 과정이야말로, 월급 이상의 가장 큰 기쁨이자 보람일 것입니다. 나의 이력서 17번째 줄은, 그렇게 새로운 관계의 법칙들을 배우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나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18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