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모하시노?

by 소소한 특별함

대형마트 안.

날카로운 소리에 어린아이가 떼쓰나보다 싶다가 애완견을 동행했나싶었다. 애완견을 키워본 적 없지만 성대수술을 보편적으로 해주고 있다고 알고있기에 성대술 전인가도 싶었다.

점점 더 그 소리는 날카로워졌고 더 가까이에서 전달되어 돌아보았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채 눈을 감고 걷고 있는 이는 엄마로 보여지며 그 옆으로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소리높여 자기주장을 하는 중이다.


"악악악"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아이를 향해있다.


"아이고 엄마가 힘들겠내"



도서관 식당.

옆에 앉은 중년 남성의 컵라면 흡입소리가 너무도 요란스럽다. 배가 고팠을까 이해도 하지만 습관일거란 생각이 더 짙다. 쩝쩝거리는 소리와 국물을 호르륵호르륵 거리는 소리가 소음에 가깝다는 것을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성장했을 그가 지적받지 못햇을거라 생각해본다. 그가 떠나간 자리에 유치원생 꼬마가 엄마가 함께 왔다.

자기보다 키가 큰 의자를 소리없이 살짝들어 앉기 편하게 꺼낸다. 나를 사이에 두고 어느 쪽에 앉을까 고민하듯 이번에는 왼쪽의 의자를 똑같이 소리없이 뺀다. 엄마는 손짓으로 이쪽(나의 왼쪽)으로 앉자고 말한다.


대형마트에서 큰 소리를 내던 아이에게 모두가 집중되어 있을때 나는 엄마를 보았다. 동물소리인가 싶을만큼 낯선 소리를 내던 아이의 태도는 엄마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떼를 쓸 수 있고 그러면서 성장하겠지만 내게 보이는 엄마의 태도는 타협이나 이해가 전혀 없는 굳은 표정이었다. 승부가 없는 싸움에 승리는 언제나 엄마였을만큼 엄마도 제법 고집있어 보였다.


도서관에서 마주한 아이는 그 보다 어린 유치원생임에도 공중도덕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 나의 시선은 엄마에게 향할수밖에 없었다.


영화 친구의 명대사 중 배우 김광규의 "아버지 뭐하시노"가 떠오른다.

훈육을 앞세워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이였지만 가정의 훈육이 제대로 되지않았음을 말하고자 했을테다.


나 역시도 집에서 아주 엄격하게 성장하였다. 훈육이였을 그 말은 되려 나를 주눅들게 하였다.

엄마가되고 나 역시 높은 기준치로 아이를 키웠다. 맥락은 내가 엄마에게 받은 그대로였다.

"안에서 세는 박아지 밖에서도 센다"


답습이라는 것을 끊기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끝없이 이어진 실타래는 어디쯤에서 끊기고 연결되었는지 알 수 없을만큼 끈길지게 증상을 나타낸다. 여자라는 둘레가 엄마가 자랄때보다는 조금은 넓어졌기에 나때보다는 아이도 조금 넓게 키우지 않았을까 위로해본다.


KakaoTalk_20260206_234247958.jpg 2025년 8월 경기도 군포 반월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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