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부름을 받고 잠시 떨어져 지내고 있는 아이에게는 오로지 나뿐이다.
18개월 무렵부터 할머니와 살게 되면서 쌓은 정으로 지금도 할머니라고 하면 열일을 제치고 뛰어간다.
그러나 그 할머니와의 관계도 나의 눈치를 보느라 가도 돼?라고 물어야 한다.
아이에겐 명절이라고 주어지는 긴 연휴는 매주 마주하는 주말과 다르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딘가를 방문한 적도, 누군가가 찾아온 적도 없다.
아이는 너무 일찍부터 혼자 해결해야 하는 방법을 익혔다.
아이가 성장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모두 후회고 아쉬움이다.
좀 더 예뻐할걸.... 좀 더 사랑한다 말할걸....
아이는 너무 빨리 성숙했고, 너무 빨리 어른이 되었다.
매번 매 시간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에게는 그와 다르게 채울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일을 우선시했던 나는 항상 귀가가 늦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나의 책임감이고 그것이 아이를 지키는 것이라 착각했다.
잦은 야근 후 돌아와 보면 하루 종일 밖에서 놀아 꼬질꼬질한 손을 씻지도 않고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나 아이는 한 번도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그때는 당연했지만 지금은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어 한쪽 가슴이 시리다.
주변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일이 늦는다고 맡길 사람도 없었다. 유치원은 제일 먼저 도착하고 가장 늦은 시간에 나오는 아이였다. 아이가 아파도 나는 출근이 먼저였다. 엄살보다 버티는 것을 먼저 배운 아이는 너무 일찍부터 병원도 혼자 다녔다.
나조차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 살필 줄 몰랐다.
일하는 중에 전화를 걸면 아이의 첫마디는 '엄마 통화 괜찮아?'였다.
밥은 굶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회사일에 충실한 만큼 집에 있는 아이는 내가 그랬듯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마음마저도....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아이가 입단하고 싶은 단체가 있었다. 100일 동안 부모님과 함께 새벽기도에 참여해야만 입단 조건이 생겼다. 내가 가지 않으면 아이는 기회조차 생기지 않았기에 건강상의 이유라는 핑계(?)를 댈 수 없었다. 하루는 할머니가, 하루는 삼촌, 하루는 아빠, 하루는 엄마가 돌아가며 참여하는 집의 아이가 너무 부러웠다. 온전히 혼자서 해야 했던 나는 결국 쓰러졌다.
아이 18개월 무렵 아이의 짐만 챙겨 친정집으로 올 때의 내 마음은 오롯이 아이를 잘 지키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심리적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아이가 20살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그때서야 돌아볼 수 있었다. 매번 매시간 최선을 다한 것은 맞지만 나는 그냥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서도 버티기 힘들 만큼 피폐해 있었지만 아이 덕분에 참아내고 견딜 수 있었다.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마음 기댈 곳 하나 없이 나 혼자서.
엄마였기에 가능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하면서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내가 자라는 동안에는 그래도 언니가 있었고, 명절이면 찾아가는 친인척이 있었지만 아이는 태어나 지금껏 그냥 혼자다. 형제도 없이. 엄마의 단절은 아이가 애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되었고, 자기의 외로움도 혼자 감수할 만큼 어른 이어야 했다.
지금 와서 사랑했다보다 미안함이 더 크기에 떨어져 있는 시간을 이유로 한 껏 표현하려 한다.
내가 듣지 못해 아직도 마음 아파하는 그 말을 나는 아이에게는 망설이지 않고 하려 한다.
'널 혼자 둬서 미안해'
'널 애어른으로 키워서 미안해'
썩은 동아줄 마저 없이 혼자 안감힘을 다해 그 오랜 시간을 정말 묵묵히 버텼다.
살아내느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마음과 말들을 나는 이제 쏟아내려 한다.
'아들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