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경험 뒤에 온다

이성은 마지막 자존심

by 소소한 특별함

지하철 안

분명 개인전화 용도이나 스피커 넘어 상대방의 말 조차 모두가 알만큼 큰소리로 통화를 하는 이를 볼 때가 있다. 어느 때는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눈동자가 붉어지며 금세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애써 참아내는 모습을 볼 때도 있다.


예전에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지금은 이해가 된다.

나도 그래봤기에...

나는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논리가 맞아야 이해가 쉽게 된다. 그렇기에 흥분상태일 때 더 냉정해진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항문기(생후 18개월 ~3년 사이) 때의 나는 아빠가 돌아가셨고 그 이유로 엄마와 생이별을 했고 그때의 유일한 양육자였던 할머니를 잃었다. 둘째가 가지는 생존본능의 특징을 나는 냉정함과 성숙함으로 유독 발달되었고 흔들리기 쉬운 감성보다 논리가 마치 자존심인 듯 나를 지키는 수단으로 발전되었다.(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이런 모습은 부부싸움을 할 때 더 두드러졌다.

그때의 남편은 자라면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커야 했던 본인의 계모와 너무도 닮았다는 이유로 그 모습을 아주 끔찍하다 했다.

계모지만 엄마였기에 대들지 못했을 것이다. 계모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버지가 알게 되면 유일한 울타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을 테니.

상대는 그때 하지 못한 말들을 나에게는 거침없이 쏟아냈다.


아이가 있던 우리 부부는 이혼숙려기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는 사회봉사명령의 일부로 의무 상담시간을 반드시 받아야 했다.

접근금지가처분이 되어있었지만 사무실로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이혼을 하지 않으려 기관의 상담 선생님까지 대동시켜 회유하려 하는 그를 나는 이성적으로 대할 수 없었다. 집에 불이나 모두 타 버린 후 미안하다 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아 나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퇴근길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계속 피할 수 없어 지하철이지만 받았다. 막무가내 본인 하고 싶은 얘기만 들린다.


"싫다잖아!!"

"그동안 나한테 끝없이 대답을 요구했던걸 이제야 답하는 거잖아 아니라고!!"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나는 지하철에서 울부짖었다. 그때의 나는 주변사람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의 소리를 들으며 이혼하려나 봐, 남편인가 봐, 애가 있나 봐 등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처럼 이성을 내려놓으며 미친년처럼 소리를 질러본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항문기에 살아남으려 본능적으로 택한 논리와 이성은 자라면서 더 발달되었고, 그렇게 차분하다 비쳤던 나는 어쩌면 상처를 들키지 않으려 더 냉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방패 뒤에 숨어만 있지 않으려 아플 땐 아프다 소리를 내려하지만 여전히 참는 것이 편하고 익숙하다.


그래봤던 경험치로 지하철에서 커다랗게 들리는 소리에 '이유가 있겠지, 사연이 있겠지'하며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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