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은 먹고사는 일이 바빠 첫 아이를 할머니 댁에 맡겼다고 했다. 어느 봄날 나의 언니가 우리 집에 왔다. 나는 그날 언니를 처음 보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어려 이전은 기억 못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정순, 난독의 계절
난독의 계절은 고정순 작가의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림책이다.
학교에 입학했지만 글을 읽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여러 이야기들 속에서 많은 공감이 된다.
작가는 변소에 자주 빠지곤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울지 않고 혼자 기어 올라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기억 속에도 시골에 가면 적응되지 않는 나무판에 발이 빠질까 불안 불안했던 변소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손이 닿을 위치쯤에 지금처럼 휴지가 아닌 일력이 있었던 기억도.
그때의 기억은 많은 부분 추억으로도 남아있지만 가슴 저 밑바닥에는 아픔이 있다.
나의 엄마도 먹고사는 일이 바빠 연년생의 아이 중 동생인 나를 할머니 댁에 맡겼다.
그 무렵의 아이들 심리는 마트에 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도 버려졌다는 불안함을 가질 때다.
강원도 산골에 맡겨진 아이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싶다. 엄마 혼자 서울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을지, 따라가겠다며 엉엉 울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정황상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나왔겠지만 소리 내어 울며 엄마 따라가겠다고 자기표현을 충분히 했기를 바라본다.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표현으로 눈치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발달이 되었는지도.
세탁기가 없을 시절이라 빨래는 당연히 빨래터에서 했다. 할머니를 따라 양동이 가득 빨래를 담아 개울로 향했다. 조물조물 빨래를 했을 것은 너무도 자명한데 내가 머리에 이고 간 양동이의 빨래들이 물에 흠뻑 젖어 돌아올 때의 무게는 마른빨래를 담았을 때와 사뭇 달랐다. 그러나 나는 내건 내가 한다며 갈 때와 똑같은 옷을 담고 할머니와 같이 머리에 이고 돌아왔다. 그때 할머니가 고집스럽다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 나이에 혼자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아야 했던 나는 그런 고집으로 마음표현을 하려 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방법을 몰라서. 누군가 물어봐주지 않아서.
돌아오는 길 할머니가 '그러다 키 안 클라' 염려했지만 유전자의 영향으로 아주 많이 컸다.
엄마는 읍내 부잣집 둘째 아들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 둘째 아들은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고, 혼자가 된 며느리와 손주들에게 상속분이 하나도 없음에 외갓집에서는 언제나 흉을 보았다.
고등학생이었던 막내 삼촌이 읍내에서 할아버지를 보았는데 잘 먹고 잘살더란 얘기를 나는 윗방에서 듣고 있었다. 그러다 삼촌이 너네 할아버지 못 댔다는 동의를 구하는 듯 장난스레 내게 말을 했다. 그러나 누워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며 삼촌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지도 A 씨 집안이라고 편든다고 삼촌이 뭐라 했던 기억이 있다. (쪼그만 게 아주 야무졌나 보다.)
단막극처럼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기억들이다. 그리고 어떻게 서울로 와서 엄마와 언니랑 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학교 입학 때가 되어 올라오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지금도 엄마랑 떨어져 살아야 했던 대상이 왜 나였을까를 생각한다.
언제나 엄마옆에서 투정 부리고 때를 쓰며 살았던 언니를 책 속 주인공처럼 언니 있다고 자랑하고 다니지 않았다. 함께 놀았던 기억이 없기에 머리 꼭대기에서 스카이 콩콩을 타던 여름날이 내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