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가성비충
어느 순간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내 기억엔 특별한 이벤트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살면서 하나씩 깨달았던 뿐.
이제 가방을 안 사겠다고 마음먹었다는 말은, 그만큼 사봤으니 미련이 없는 경우도 있다. 사실 내가 여기에 속한다. 결혼할 때 우연히 프라다 사피아노백을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첫 명품을 사게 된 계기였다. 우연찮게 가방을 접했지만, 너무 좋았다. 가죽의 질도 좋았고, 결혼 혼수라는 의미도 있어서 자주 즐겨 들었다. 한 동안 거의 매일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명품의 길로 접어든 후, 나는 1~2년에 한 번씩 연말 회사 상여금이 나올 때마다 샀던 것 같다. 나름의 기준은 있었다. 200만 원은 넘지 않는 선에서 구매하긴 했다. 그래도 큰 금액이다.
어느 날.. 매 번 명품 가방을 살 수는 없어서, 나는 지나가다가 귀엽고 깜찍한 레드 컬러의 길거리 가방을 하나 샀다. 그러고 보니 나는 보부상 스타일이라 그 작은 백 안에도 이것저것 참 많이 넣어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곤 어떤 날 퇴근길에 신이 나서 대문 앞에서 점프를 했는데, 그 충격으로 가방의 양쪽 끈이 동시에 끊어져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가방 안의 화장품 팩트가 박살이 나버렸다. 나에게 유일하게 있던 샤넬 화장품이었는데... 그리곤 나는 명품 찬양론자로 마음을 굳힌 계기가 되어버렸다. 나에게는 '이래서 명품이 좋구나'를 확신시켜 준 계기였다. 한 동안 나의 명품 가방 사랑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대략 10년 정도 흐른 뒤, 나는 새로운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서 가죽 공방을 등록했다. 그곳에선 정말 명품 가방에 쓰이는 가죽 그대로를 사용해 아주 비슷하게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와~~ 몇 백. 몇 천만 원짜리 가방도 원가는 1~20만 원 밖에 들지 않았다. 거기에 매달 학원비 30만 원을 보태면 50만 원 이하로 나는 명품 가방과 거의 비슷한 퀄리티의 가방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가방은 가죽이 좋기도 했고, 손수 직접 손 바느질을 해야 하므로 아주 튼튼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원가를 알게 되니, 나는 더 이상 정말 비싼 명품 가방은 절대로 살 수가 없게 되었다.
꼭 가격뿐만이 아니라, 내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가방을 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끊어지지 않고 튼튼한 가방을 가성비 있게 구매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 가방을 살 생각이다. 아니 그런 가방을 이미 샀다. 1년째 아주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형태의 소비는 계속할 것이라 믿는다!
20대에 나도 하이힐을 가끔 신었다. 소개팅의 이유로, 친구 만날 때 기분 내는 용도용으로 신곤 했다. 하이실을 신은 날은 발이 깨질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하이힐을 신은 나의 바지핏과 뒤태를 포기할 순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30대 접어들고 출산을 했다. 하이힐을 포함한 대부분의 신발이 이제는 작아서 맞지 않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니 몸에 많은 신체적 변화가 왔다. 몸무게는 출산 전과 불과 3kg 차이지만, 몸의 구조는 이상하게 많이 변해있었다. 신발도 이젠 작거나 불편한 신발은 아예 맞지가 않았다. 그리고 아이를 안으면 체중이 더 가중되어서 허리 통증을 달고 살았고, 통증을 조금이라도 더 유발하는 신발은 자연스레 쳐다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아이들의 육아를 거칠 동안 단화만 고집하다 보니, 그동안 하이힐을 어떻게 신었다. '아니 왜?' 신었나 싶다. 단화가 너무 편하고 좋다. 하이힐을 신는 것은, 사실 타인들에게 더 예쁜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맘이 크므로 나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그 욕망을 압도적으로 눌러버렸다고 해야 할까?! 대부분 작아서 버렸거나 아직 미련이 남은 아주 예쁜 하이힐 2켤레는 신발장 맨 위에 남아있긴 하지만, 그 신발들도 정리되는 것은 시간문제 같다.
구두와 마찬가지로, 나는 출산을 경험하면서 나에게 편하고 좋은 소재의 옷을 입게 되었다. 모유수유 옷이라 던가 임산부 옷은 하나 같이 옷감들에 신경을 많이 쓴 옷들이다. 그 옷들을 경험하면서, 그동안 내가 입었던 옷감들은 많이 까슬하거나 불편한 옷들이 많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절대로 출산 전 옷감의 옷들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불편한 핏이나 옷감은 피부가 완전히 거부한다고 해야 할까?!. 조금만 입어도 가렵거나 따갑고, 빨갛게 변하기도 했다. 이건 명백한 신체 증상이므로 내가 참거나 감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돌이켜보면,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나 자신을 덜 귀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왜 나에게 좀 더 친절하지 못했을까. 나의 피부나 발을 위해서 더 좋은 것을 사려고 하지 않았을까. 사실 누구나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격 측면에서도 타협을 해야 하므로.
이젠 무조건 거르는 것은 사이즈 작고, 무거운 가방이다. 그냥 사치품처럼 느껴진다. 가볍고 크고 질 좋은 가방은 집에 가는 길에 장을 보아도 되고, 가볍게 가방에 산 물건들을 쏙 넣어갈 수 있다. 지나가다가 아이들 옷 가게를 들르더라도, 큰 가방에 쏙 넣어버리면 된다. 번거로울 것이 없다. 만능이다.
나의 미련으로.. 크고 무거운 명품 가방은 아직 정리하지 못하고 있지만, 쳐다만 볼 뿐 내가 미쳐 그 가방을 메야겠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잘 들지 않는다.
이젠 단화 마니아가 되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나는 가방은 명품을 더 이상 사지 않게 되었지만, 출장 가다가 산 명품 단화는 정말 8년째 너무 잘 신고 있다. 너무 가볍고 편하고 신은 듯 안 신은 듯 매번 감탄하게 된다. '이보다 더 편한 신발이 있을까?'
이제는 어떤 단화가 정말 신기 편한지 아는 도사가 되었다. 가끔 당근을 통해서 만족도 높은 신발인데, 가격이 비싼 경우는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해서 신기도 한다. 이젠 정말 단화족이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이제 소재를 따지게 되었다. 예전엔 좀 사이즈가 끼어도 입고, 불편해도 입었는데 나이가 한해 한해 들수록 입고 싶어도 입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는 내 몸을 감싸는 감촉과 무게, 옷 라인 등이 편하지 않으면 손이 가질 않는다. 그렇다고 펑퍼짐한 옷만 찾는다는 것은 아니다. 적당히 핏을 살려주면서 옷감이 좋은 브랜드를 알게 되었고 시행착오 끝에 그 브랜드 할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가서 구매하고 있다.
그리고 가격이 다소 나갈지라도 질 좋은 옷은 오래 입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불편해서 입지 않는 옷 여러 벌을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옷 고를 때 더 까다로운 상황이 되었지만, 그런 옷을 찾게 되면 퀄리티가 좋아서 오래 입을 것 같아 구매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가 어떤 소비가 맞는지 알게 되어서, 그동안의 경험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이젠 질 좋은 옷으로 정착.
반드시 하게 된 것과 하지 않게 된 것들의 행동은, 그동안의 나를 더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내가 어떤 점에 불편해하고, 또 무겁게 느끼는지. 또는 기피하게 되는지 등 나의 성향을 알게 되는 것은 나의 값진 경험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