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맘 편한 아싸(아웃사이더)
나는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진심이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어떨 땐 집착했던 것 같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로는 나의 부족한 부모로부터의 사랑과 유대감을 타인을 통해 채웠다. 나는 무뚝뚝한 경상도 집안에서 태어나, 딸 하나밖에 없는 집안이지만 사랑 표현은 아예 못 받고 자랐다. 칭찬은 사치였다. 먹고살기 바빠서 그랬고, 부모의 성향도 컸다. 그래서 나는 그 부분이 항상 내적 결핍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와서 그 부분을 탓하는 건 아니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파악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또래보다 항상 나이가 많은 선배들을 선호했고, 그때는 그분들께 배울 것을 찾으려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실 부모로부터 조언을 거의 듣지 못하고 컸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나는 나보다 선배들한테 따뜻한 울타리나 보호 또는 안도감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두 번째로는, 그때 맺은 인연과 멀어지거나 연락이 뜸하게 되면 그 시간을 헛되게 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한 번 맺은 인연과 연락이 끊어지지 않도록 애를 썼다. 애를 썼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 인연을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고. 문득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남기고 그랬다. 나는 주로 생각나면 갑자기 전화를 걸곤 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뜻밖의 내 전화를 반기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서 그 방법을 선호했다. 카카오 톡이 생기고 갑자기 전화하는 것은 이젠 거부감을 느끼는 문화가 생겨 더 이상 그렇게 하지는 못 한다. 카톡으로 선톡을 하고, 용건이 있거나 아주 가까운 지인만 전화를 거는 암묵적인 룰이 생겨서. 여하튼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으려고 나는 전화기를 붙들었던 사람이었다.
그럼 내가 인간관계를 집착한 이유는 대략 알아보았는데, 위에도 잠깐 언급되었지만 집착하던 패턴은 몇 가지로 추려진다.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O 가지로 쓰는 것을 선호하게 된 것 같다.^^
가장 큰 부분이, 회사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을 만들려고 했다. 사실 이 부분은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해서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단지 집착했던 부분을 좀 덜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다. 직장의 한 선배와 너무 사적으로 많이 만났고, 그 분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친구 + 직장 상사의 관계를 그분을 통해서 충족했다. 관계는 쌍방이라, 그분도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이고 적절히 심심하던 차에 나라는 후배와 어울려서 사실 재밌게 시간을 보내긴 했었다. 하지만 여파는 그 이후였다. 상황이란 것은 변하고, 나는 어쩌다 보니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분과 연애와 결혼을 하게 되고 이직도 하게 되면서 그 분과의 관계가 요상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질투 아닌 질투도 있었고, 직장을 동일한 곳으로 이직한 탓에 견제도 있었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서로 공유한 사이인 우리는 과하게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나빠질수록 깊었던 관계는 독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좋아했던 그분과 관계가 꼬이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져 갔다. 아마 그분도 그랬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더 이상 깊어지지 않아야 할 선이고, 어디까지 지켰어야 했는지 그때는 몰랐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이젠 직장 동료들과 적정한 선을 유지하면서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땐 순수하게 너무 깊이 관계를 맺었던 시절이었다. 참 고마운 분이었지만, 그만큼 괴로운 시간도 뒤를 따랐으므로 앞으로는 이렇게 깊이 관여하는 동료 관계는 만들지 않겠다고 체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 간접적 경험을 들려드리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이미 겪으신 분들께는 체득해서 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결혼 후, 나는 아이 육아와 관련된 이유로 여러 번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나' 위주의 인간관계만 맺었으나,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와 관련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다가 학군의 이유로 친하게 지내던 관계를 뒤로하고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의 반 친구들과 그 엄마들의 모임이었는데, 그 관계가 아예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사 온 한동안 그중에서 친하게 지낸 몇 명과 이사한 집에 초대도 하고 예전처럼 전화도 자주 걸곤 했다. 지금 지나고 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점점 횟수를 줄여나가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꾀나 그 인연들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결국 그러다 보니, 나는 현타가 왔고 나와 같지 않은 그들의 반응에 나 혼자 괜히 지쳐서 그 관계를 부자연스럽게 확 끊으면서 정리를 해버렸다. 요즘 말로, '손절'을 했다. 지나고 보니, 세련되지 못하고 혼자 쇼를 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정말 큰 부분을 모르고 살았다. 여기저기 걸치고 인연을 맺어놓으면 나에게 보탬이 된다고 20~30대에는 생각했다. '굳이..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겠는가?' , '적당히 걸쳐놓으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땐 나에게 돌볼 아이가 없었고, 챙겨야 할 가족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내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후로는 이 공식은 나에게 절대 맞지 않았다.
불필요한 관계는 정리가 답이었고, 그래야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대단히 뭘 하지 않아도, 관계를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정리를 하면 나의 신경망 회로.. 어딘가로 뻗쳐있는 에너지를 단절시킬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딱히 연락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불필요하게 엮여있으면, 불시에 그들이 원하는 방법대로 나의 일상에 간섭이 들어올 수 있다. 20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던 학교 동창회에서 돈을 내라며 연락이 오고, 동호회에서 불쑥 후원하라며 연락이 오며.. 반갑지도 궁금하지도 않던 모임에서 불쑥 모임에 나오라며 찔러보는 톡을 받게 된다. 10년 가까이 연락하지 않던 친구는 갑자기 내 결혼식엔 아무 소식이 없다가 본인 결혼에는 공을 들이며 연락을 한다. 아, 이젠 그만해야겠구나. 톡에서 좀 과하게 선을 긋고 퇴장을 하였다. '조용히 퇴장하기' 버튼을 선택하지 않고, 티 나게 퇴장했다. 그들에게 헷갈리지 않게 메시지를 주고팠다. 예전 같았으면, 나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나가지도 못하고 그들이 의미 없이 하는 톡을 보며, 눈팅만 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이젠 정리가 답이다.
지금은 왜 진작 그러지 않았나, 이젠 별다른 에너지가 들지 않고도 할 수 있다. 처음엔 삐걱거리고, 부자연스럽고, 세련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관계는 쌍방이라, 상대방의 의사를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그 관계에 미련이 남아도 상대방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내가 연락을 계속하며 부담감을 상대방에게 준다면, 그것 또한 상대방에겐 못 할 짓이다. 나는 상대방의 마음이, 다들 내 마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다.
나에겐 약속 잡을 때 팁이 있다. 만나고 싶은 지인과, 두 어번 만남을 추진해 본다. 하지만 상대방이 본인의 상황을 이유로 조금씩 약속을 바꾸거나 취소를 연속 2번 하면 나는 더 이상 미련 없이 매달리지 않는다. 그리곤 그 사람이 만나자고 할 때까지 내버려 둔다. 그래도 연락이 없으면 나는 받아들인다.
이직 또는 이사는 큰 변화 중 하나다. 그런 큰 변화가 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동안 맺어왔던 관계가 대부분 정리가 된다. 왜냐면 그 상황이 맞아서 맺었던 관계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직장 또는 집은 머물렀던 곳과의 인연이므로 내가 머무르는 곳이 바뀌면 대부분 관계는 변하게 된다. 그럼 나도 큰 저항 없이 그 관계를 흘려보내면 된다. 관계를 흘려보내야, 새로운 인연을 맞이할 공간이 생긴다. 우리의 마음도 물리적 공간과 비슷해서 이미 채워져 있던 공간을 비워내야, 새로운 관계가 들어올 자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흘려보내고, 또 새로이 맞이하자.
변화된 관계를 잘 받아들이고, 흘러갈 인연도 잘 보내주었다면 나는 이제 새로운 관계를 또 맺으면 된다. 이렇게 순환하며 돌고 도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행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순환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려면, 전제 조건은 그 관계들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없어야 가능하다. 이런 과정을 나는 40 초반이 되어서야 깨달았고 받아들이고 적용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니 나는 진정으로 관계에서 자유를 얻었다. 어떠한 관계도 그리 집착하며 매달릴 필요가 없으며, 언제든지 변화하는 것이 관계의 속성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