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를 만드는 존재는 결국 나
30대에는 나는 내 호의를 당연히 여기는 상대방. 그 상대방이 예의가 없고 문제라고 생각했다. '왜 내 호의를 당연히 여길까?! 저 사람 안 되겠네~?!' 그렇게 생각했다. 40대가 된 지금은, 그 호의를 자처해서 계속 베푸는 '나'의 문제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원인은 결국 나.
아니. 내가 베푸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30대 후반,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일이다. 나는 그동안 소홀히 했던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회사에 육아휴직서를 냈다. 두려운 1학년 입학을 잘 맞이하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엄마들 모임에 나갈 마음도 먹고 슬기로운 엄마 생활에 뛰어들었다. 낯설고 두렵고 그랬다. 소문에는, 엄마들 모임에서 화장실 가면 내 욕할 차례라며, 화장실도 가지 말라는 소리가 있었다. 나는 엄마들이 무서웠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잘 보이고 싶었고,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 않았다. 회사와 다르게 저 자세를 유지하면서 엄마들과 만났던 것 같다.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고 커넥션도 없기에, 주눅도 좀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직장 다니지 않는 엄마들은 워킹맘을 싫어한다는 소문도 있어서 괜히 밑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말투도 재수 없게 들릴까 봐 조심스럽게 관계를 유지했다.
다행히 소문과 다르게 엄마들은 다행히 소문만큼 무섭지도, 욕을 많이 하지도 않는 엄마들이었다. 친하게 지냈고, 생각보다 엄마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거의 매일 같이.. 아이들 학교 보내고 커피숍에 앉아서 몇 시간씩 수다 떨고 아이들 학교 마치면 데리러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회사 생활에 쫓기던 나는 이런 생활은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생활이었다. 엄마들한테 잘하려다 보니, 그리고 유일하게 워킹맘이었던 나는 엄마들 커피를 사는 일이 잦았다. 무언가 내가 회사 복귀를 하고 나서,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들이 잘 좀 봐주십사 하는 마음이었다. 어느덧 그 생활도 1년 가까이 반복이 되었고,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가까워져 있었다. 1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휴직 상태이지만, 엄마들은 하나둘씩.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 등 일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사건의 그날이 왔다. 오랜만에 엄마 모임에 나온 엄마도 있었고, 여러 명이 모여 여느 때와 같이 커피 주문을 하려고 줄을 섰다. 코로나를 한참 겪을 때라, 프리랜서로 일하는 집은 한 동안 수입이 없는 상황이었어서 내가 밥도 여러 번 사고 커피도 거의 매번 샀었다. 줄을 서 있는데, 무심결에 뒤돌아 봤는데.. 내 뒤에서 엄마들끼리 서로 사겠다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너무 웃긴 게, 나는 내 것을 주문하는 것은 그 엄마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일인가 보다.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서로 산다고 실랑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현타가 제대로 왔다. 생각을 해보니, 나만 휴직 상태로 월급이 없는 상태였고 그 자리에 모인 엄마들은 다들 이렇게 저렇게 알바와 파트타임을 하는 엄마들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에게 커피 한잔 사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으나, 자기들끼리는 생색을 내며 서로 사겠다고 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왓?!!! 뒤 돌아봤을 때, 내가 잘 못 봤나 했다. 그중에서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는, 내가 살 때는 그렇게 잘 얻어먹더니, 오늘은 동생뻘한테는 언니인 본인이 사겠다는 제스처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마음이 몹시 좋지 않았고, 누구 하나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화를 낼 수도 없는 것이, 누가 나보고 사달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괜히 나 혼자 호의를 베풀며.. '저 언니 집은 요즘 일이 없으니 내가 사야지' 하면서 내가 그냥 샀다는 점이다. 누가 사달랬나?! 이 바보 등신아!!!!!
정신이 번쩍 들고, 마음에 아주 큰~ 커다란. 그리고 두껍운 마음의 선이 그 자리에서 생겼다. 요즘 말로 당장 손절각이었다. 그 관계가 모두 허상 같고, 나를 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도 정리가 되었다.
40대가 되고, 나는 어느덧 둘째 아이 초등 입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첫째처럼 육아휴직을 꿈꿨지만, 너무 야무진 꿈으로 그쳤다. 다행히 사라지지 않은 재택근무를 병행하며 초등 1학년 엄마 역할을 맞이했다. 참고로, 그 사이 이사도 했고 나에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동네여서 첫째 아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낯선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엄연히 다르다.
엄마들이 친하게 지내자며,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대화를 나누는 기회들이 많이 생겼다. 아이 학원도 같은 곳에 보내게 되면서 친분도 쌓여갔다. 하지만 나는 그때와 다른 기준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호의에는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내가 함부로 베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는 시간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호의를 막 베풀 때는 몇 시간이고 그 사람과 수다도 떨고, 장 보러도 다니면서 시간을 펑펑 써댔었다. 아주 펑. 펑. 즐겁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너무 부질없는 시간들이라고 생각이 들고 너무 x100 아깝게 느껴진다. 회사 생활하면서 맨날 바쁘게만 지냈던 탓인지, 웬일로 한가롭고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들이 좋아서 그 생활에 한 동안 취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차만 한잔 마시던지, 키즈카페를 가더라도 주구장창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시간도 어느 정도 내 마음에 정해두고, 그 이상으로 늘어질 것 같으면 조용히 그 상황을 정리했다. 나에게 갑자기 돌진하며 다가오려고 했던 엄마도 있었지만, 내가 적당히 그 상황을 몇 번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그 관계의 선도 정리가 되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상황을 만들면, 나에게 무례를 범할 기회도 없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 그만큼 끌려다닐 이유도 없다.
나는 예전보다 돈의 무게를 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커피를 사던, 밥을 사던 나는 쉽게 샀던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고생해서 번 돈인데, 그렇게 쉽게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른 사람을 대접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렇게 하지만 쉽게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턱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귀하게 번 돈은, 응당한 이유가 있으면 내도록 하자. 이유 없이, 내가 기분이 내켜서 턱을 내려고 하지는 말자는 이야기다. 그럴만한 이유나 조건이 된다면 그리하면 될 것을. 굳이 이유도 없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
- 반복해서 턱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닌, 반복성을 갖지 않는 것이 키이다. 반복성을 갖다 보면, 우리는 내성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호의의 나의 행동이, 반복성을 띄게 되면서 상대방은 기쁨이나 감사함을 느끼는 정도가 확연히 줄어들게 되는 원인(원흉) 중 하나가 된다. 반복성만이라도 띄지 않는다면, 우리는 호의를 당연히 여기는 무례함을 어느 정도 피해 갈 수 있다.
- 계산하는 순간의 어색함을 그냥 잘 넘겨라.
생각해 보면, 나는 돈 계산하는 순간에 충동적으로 카드를 내미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다. 돈 계산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어색함을 견디기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귀 뒤가 간질간질하면서 어떻게 계산할지 서로 쳐다볼 때, 나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그냥 내 카드를 내밀었다. 그 순간을 그냥 어떻게 할지 어색하고 미묘해도, 그냥 가만히 쳐다보면서 상황을 파악해라. 그리고 어떻게 할지 결정이 되면 그대로를 따르면 된다. 그뿐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이렇게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엄마들과 맺으니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고 있다. 물론 아주 가까워질 일도 없어서, 아주 가끔 심심할 때는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부분이다. 내가 그만큼 거리를 두고 상처를 받지 않는 대신, 내가 심심할 때 나랑 놀아줄 가까운 엄마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신 나에겐, 나 자신이 있고, 내 옆에 배우자도 있지 않은가. 그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엄마들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고부터 글 쓰는 시간은 더 많이 확보되어 그것도 참으로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