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버리는 것'_인간관계 편

by 유나희

인간관계 다이어트를 진행 중이다. 시작한 지 2-3년 정도 된 것 같다. 앞서 글에서도 나는 인간관계에 다소 집착하는 부류 중 한 명이었다. 아마 내가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서인지, 타인들로부터 그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나도 힘들면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서.. 나의 20-30대엔 주로 나의 하소연을 받아주는 누가 있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인연이 다되어 떠나가는 관계도 나는 내가 굳이 연락해서 연을 이어갔었다. 상대방은 그런 나를 받아준 것인지,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관계가 또 이어지면 그 관계를 꾸역꾸역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 내 자아가 어느 정도 온전히 바로 섰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나는 내가 너무 애쓰면서 이어가는 인간관계는 부질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몰랐다. 내 꽉 찬 인간관계의 자리를 비워야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는 의미를.

여러분들은 아시는지 궁금하다. 혹시 저같이 이해 못 하신 분이 계시다면, 겪은 예시를 들어 설명드리겠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때 나는 휴직을 하고 동네 엄마들과 사귀었다. 그중 한 분과 처음엔 많이 친하게 지냈는데, 지낼수록 서로의 가치관이 맞지 않아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선, 다른 엄마와 여러 번 마주치면서 친하게 되었고 아직도 돈독하게 지내고 있다. 새로 친하게 된 엄마와도 그전에도 인사도 하고 잘 지냈곤 있었는데,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낸 분의 빈자리가 생기니 새로 사귄 분과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약에 나와 결이 맞지 않는 분과 꾸역꾸역 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새로 사귄 나의 결이 잘 맞는 분과 가까워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로 나는 비우는 인간관계의 필요성에 눈 뜨게 되었다.


비우는 인간관계 3가지


1. 자꾸 엇갈리는 관계

나랑 약속을 했다. 3주 전에 미리 해둔 약속이다. 나는 잊지 않으려고 핸드폰에 미리알람까지 설정해 놓았다. 그리곤 의상도 미리 생각해 두었고 퇴근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업무량도 조절하며 일을 했다. 하지만 당일, 그 친구는 중요한 일이 생겼다며 약속을 미루 자고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사회생활하다 보면, 이런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약속을 다시 잡았고, 약속 날이 다가왔다. 이번엔 약속 전날.. 아이 관련 학원에서 어딜 가야 해서 미안하다는 통보 문자를 받았다. 또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두 번 모두 그 친구가 미룬 약속이기에 내가 나서서 약속을 다시 잡지 않았다. 약속은 흐지부지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한 참 시간이 흘렀다.


카톡에 그 친구 프로필이 업데이트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못 본 지 오래된 것 같아서, 내가 연락을 하고 또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는 흐름이 되었다. 다음 주 목요일에 만나기로 대충 정했다. 큰 기대는 하지는 않았다. 어디서 , 몇 시에 볼지 아직 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친구에게서 카톡이 오지 않았다. 당일에 우리 만나는 것 맞냐고 물어봤고, 깜박했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나는 약속이 있다고 남편에게 양해를 구해두었지만, 왠지 이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곤 나는 며칠 뒤 조용히 카톡방을 나왔다. 그리곤 더 이상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우리 관계는 자연스레 정리되는 수순이었다.


친구 사이에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생각하실 수 있다. 맞다. 하지만 매번 이런 패턴의 관계는,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한 사람만 노력하는 관계이다. 나도 이런저런 일로 약속 당일날 일이 생길 수 있지만 되도록 만나는 방향으로 대처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 정도의 노력을 하며 나를 만날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이런 관계는 한쪽으로 기우는 관계 중 하나이며, 나의 에너지를 상당히 갉아먹는 관계 중 하나다.

예전엔 이런 관계도 내가 주도해서 만나왔지만, 지금은


'굳이(?)'


노땡큐다. 나를 위해 서로 만나려고 노력하는 관계에만 집중해도 내 시간은 넉넉지 않다.

그래 그 관계에 집중하자.



2. 에너지가 한쪽으로만 흐르는 관계


몇 년 전에 유행한 단어가 있다. 에너지 뱀파이어. 혹시 기억하시는가?! 내 에너지를 누군가가 빨아먹는다는 것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친구 중에 항상 좀 우울한 친구가 있었다. 20대엔 나름 활기찬 친구였고, 성취 지향적인 성향이 나와 비슷해 우리는 연락을 지속하여 20년 넘게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그 친구의 결혼을 계기로 우리는 관계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일이 매우 중요한 친구 중 하나였지만, 육아를 시작하면서 남편의 아무런 서포트가 없어 혼자 동동 거리다가 좋아하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주 서서히 우리 관계는 변하기 시작해서, 아마 그때부터 이 관계가 극대화가 된 것 같다. 우울감이 어느 정도 깔려 있는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면 대화가 즐거웠으면 해서 그 친구를 웃겨주다가 통화가 끝나는 패턴을 이어나갔다. 혹시 만나더라도, 보통 그 친구는 변하지 않는 남편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다가. 또는 아이 관련 있었던 일을 털어놓다가. 나는 좋든 안좋든 해결책을 내놓거나 상담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면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항상 나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친구의 카톡이 집 도착할 때쯤 나에게 와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 친구를 만나고 나면 한 3일 동안은 우울감에 나도 빠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 여운이 길게 갔었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친구가 어려울 땐 서로 도와야지 생각하며 넘겼다.


2년간의 준비 끝에 준비한 시험에 합격하여, 그 친구는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대단한 친구였다. 합격하자마자, 아이가 초등입학이라 그동안 시험 준비로 못 한 엄마역할을 충실히 해야겠다며 바로 휴직을 2년간 냈다. 그리곤 아이 뒷바라를 열심히 했다. 옆에서 보기에 너무 무리일 정도로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우울증이 친구를 찾아왔다. 나도 마침 다음 해에 아이로 인해 휴직을 했던 차, 그 친구를 성심껏 돌봤다. 우리는 자주 만났고, 뭐라도 힘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끝나가는 시점에 그 친구는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우울증은 약을 먹으면서 좋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 관계는 그렇지가 않았다. 아니 내가 괜찮지가 않았다. 그 친구 전화만 오면, 자동적으로 우울해졌다. 그 친구 전화를 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럴수록 더 나에게 연락을 자주 하게 되었고, 나는 피하려는 나 자신이 힘들었다. 그런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 서글펐다. 관계에 고민이 많았다. 그 친구는 이혼하지 않는 이상, 우울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그 친구와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멀어지려 할수록 그 친구는 나에게 연락을 계속하려고 애썼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이 관계는 멀어지지 않고 더 집착하는 관계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용기 끝에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그 친구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더 이상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많이 속상했다. 20년 이상 이어온 친구와의 관계를 저버리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한 달. 두 달이 지날 때쯤. 나는 내가 많이 평온해진 상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나는 홀가분했다. 그리고 지금이 좋다.



3. 상처를 주는 관계

너무 당연히 정리해야 하는 관계다. 하지만 나는 가족의 일이라, 그 관계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지속적으로 차별과 상처를 받았다. 여자라는 이유로.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식이라는 이유로 감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아왔다.

결혼을 하고, 크게 상처받는 일이 또 있었다. 나는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혼자 일 때는 나 혼자 속으로 삼키면 되었지만, 결혼하고서는 나만 피해를 보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 전체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내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과 아이들이 같이 피해를 보게 둘 순 없었다. 내가 가장 먼저 지켜야 하는 가족은 이제 내가 결혼한 남편과 자식들이므로.

힘들었지만, 나는 연락을 더 이상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과도 받은 적이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결단력이 필요했던 사건이었다. 그 후 1-2년 동안 명절은 괜히 우울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관계는 이제 더 이상 없다.




관계 정리 후 지금..


1. 마음의 평온함.

가장 큰 장점은 마음의 평온이다. 나는 내 인생에 나를 괴롭히는 빌런은 현재로선 없다. 확실히 나를 괴롭히는 인간관계가 없는 것은 인생의 난이도를 확실히 낮춰준다.


2. 심플함.

피로감이 훨씬 덜하고, 삶이 단순해진다.


3. 온전히 나에게 집중.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글쓰기를 시작한 시점도 그쯤이었다. 고민하는 관계에 나의 에너지를 쓰지 않으니, 나에게 집중하며 내가 뭘 하면 좋을지만 생각한다.


한 마디로, 나는 지금이 딱! 좋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