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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부연 Jan 10. 2024

있는척 하는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제동아리를 운영하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제가 경제교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제교육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는 지난번 글에서 밝힌바 있습니다.


1. 무슨 과목이든 학습자를 가르칠 때에는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요즘의 공교육에서는 정말 그러합니다. 대다수의 학습자가 학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기부여를 잘하는 선생님이 수업대회에서 우수한 결과를 내기도 합니다.


2. 제가 하는 경제교육의 동기부여 방법은 단순합니다. '경제공부를 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반복해서 던집니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대가들의 명언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실 왠만한 경제서적을 봐도 동기부여의 메시지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메시지지만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이미 초등학생때부터 화폐를 가진 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몸으로 체감했기 때문입니다.(사실 개인의 욕망을 자극하는 방법은 자칫 투자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교육의 동기로서는 강한 집중력을 유발하므로 종종 사용합니다.)


3. 하지만 제가 목표로 하는 경제교육은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동기부여는 부자가 되기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경제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경제적 자립'입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1인경제, 가족경제를 이루어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당연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4. 하지만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점차 지연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30대가 되어서도 부모 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캥거루족'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대졸 이후에도 부모에게 주거를 의존하거나 생활비 등을 받아 쓰는 비율이 50%이상이라는 통계 결과도 있습니다.



5. 경제적 자립이 미루어지다 보니 부모의 노후대비에는 그야말로 치명타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좋은부모 컴플렉스가 있는 듯 합니다. 본인들의 노후자금마저 자녀에게 쏟아부어 번듯한 직장을 잡게 해주어야 제 역할을 다 해냈다고 생각하니, 다 큰 성인들을 캥거루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형국입니다. 


6. 그렇다면 늦게나마 번듯한 직장을 잡게 된 자녀가 과연 부모의 노후를 자녀가 책임져 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실 본인들 살기에도 빠듯한 세상입니다. 노후준비가 안된 부모는 자녀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7. 청소년에게 올바른 경제적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경제적 자립은 커녕 허세의 늪에 빠져 경제적 고통을 겪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개인회생이나 파산은 모두 국민세금으로 지원해주는 사회적 비용입니다. 즉 국가경제 입장에서도 사회적 낭비가 되는 셈입니다.


8. 요즘 허세 피라미드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허세피라미드에 발을 담그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요즘 중고등학생 용돈은 일명 장난이 아닙니다; 우리학교에 보통 30~40 쓰는 친구들부터 많게는 100 이상 쓰는 친구들도 많습니다.(잘사는 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피곤해하고 아침엔 지각할까 택시를 타며 번 돈을 까먹습니다.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보상을 준다며 각종 외식에 유흥비 등등으로 몇일만에 한달 알바비를 모두 까먹곤 합니다.





9. 카페의 음료나 커피는 수시로 마십니다. 얼마전에는 졸업식에 한 학생이 벤츠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였습니다.(가정환경이 부유하지는 않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이라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모은 알바비로 산 모양입니다.) 아직 운전이 미숙해서 코너에 주차하며 긁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벤츠를 살 수는 있어도 차를 수리할 돈은 없는 듯합니다.


10. 한번 허세 피라미드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 자산은 순식간에 사라질 뿐만 아니라 큰 대출을 필연적으로 질수밖에 없습니다. 청년들이 받을 수 있는 대출은 1금융권의 질 좋은 대출은 아닐 것입니다.(아마도 제2, 제3금융권, 카드론, 리볼빙 등등이지 않을까요?) 자산이 복리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자가 복리로 늘어납니다. 


11.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저는 한가지 이유를 바로 '결핍의 부족'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의아니게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다루다 보니 원치 않게 학생들의 가정 경제적 상황을 들여다볼 상황이 생기곤 합니다.(장학생 선정을 위해서 등등) 그런데 어려운 상황의 친구들도 겉으로 보기엔 브랜드 점퍼에 신형 아이폰 등을 갖고 다니는 경우를 심심찮게 관찰하곤 합니다. 


12. 그리고 학생을 불러 상담하다 보면 본인 가정의 경제적 상황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유추하건대 부모가 자녀에게 가정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눈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학원비, 옷구매비용, 통신비, 통신기기 교체비용, 용돈 등등이 부모의 노후자금인줄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정의 경제적 결핍 상황을 진솔하게 말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13. 인당 일이백의 사교육비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가정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잘 내색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의 '기'가 죽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14.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가 주는 그 많은 비용이 부모가 여유가 있어서 주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부모가 여유(남아돌아서)가 있어서 주는 비용이니 당연히 그 비용으로 다니는 학원수업이 그리 절박하지는 않습니다.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 학원 전기세 내주러 다니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입니다.(실제 대형학원 원장님께 들었네요) 


15. 본인들이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부모가 여유로운척하며(사실은 피같은 노후자금인데) 자금을 계속 대주니 자녀의 경제적 생존 욕구는 점차 사그라들고 결과적으로 온실속의 화초처럼 생존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16. 그래서 저는 실전 경제교육을 좋아라 합니다. 본인들이 앞으로 미래에 닥칠 상황을 상상하고 막막한 상황을 마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시나리오를 작성한 학생들은 깜짝 놀랍니다. 교통비, 경조사비, 대출이자, 취미생활비, 옷값, 술값, 인터넷 비용, 보험료 등 예상치 못한 항목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아도 일년에 오백만원을 모으는것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과시소비, 동조소비, 과소비, 과잉소비라는 덫에 걸려버리면 돈을 모으기는 커녕 빚을 지게 됩니다. 


17. 교육해야 할 내용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이마저 조금 어렵거나 단어가 복잡해지면 학생들은 이내 코를 골고 자버립니다. 그래서 최대한 쉽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밌어야 합니다. 그래도 절반정도 전달됐다면 성공입니다. 교육은 쉽지 않으나 깨닫는 친구 몇명이 있어 보람이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쉬는시간에 제 주위에 모여 질문하는 학생들이 가장 귀엽고 이쁩니다. 요즘 경제교육에 몰두하고 있어 생각나는 내용을 두서없이 적어봤네요. 


18. 아울러 이 내용과 관련있는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일부를 본문 하단에 첨부하니 읽어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세이노의 가르침 中>


둘째 딸이 태어났을 때 이미 나는 자가용 기사를 거느리고 있었고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틀림없이 앞으로 더더욱 부자로 산다. 나는 딸들에게도 그 비결을 알려 주고 싶다. 그 비결 중 하나는 낮은 곳에서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들이 중학교 수준이 되면 아빠가 갑자기 망했다고 말하고 거짓으로 재산을 몽땅 압류당하는 것으로 연극을 꾸미자. 그리고 판잣집으로 이사 가서 단칸방 생활을 하자. 너는 파출부를 하는 것으로 하고 나는 뭐 길거리에서 노점을 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모르겠다. 우리 둘은 허름한 옷을 입고 매일 아침 판잣집에서 나와 숨겨 놓은 진짜 집에 가서 낮에 있다가 저녁에는 다시 애들이 있는 판잣집으로 돌아가자. 물론 애들에게는 돈이 전혀 없는 듯 처신하고 등록금은 일부러 늦게 주자. 맛있는 것이 먹고 싶으면 우리끼리 몰래 밖에서 외식하고 들어가고 딸들에게는 수제비나 먹이자. 봉투 붙이는 일 같은 것도 가져와 딸들에게 시키자.”


  이러한 계획은 아내의 반대로 인하여 실제로 실현되지는 못하였고(아내는 내가 농담하는 줄로 알았다고 한다) 그 대신 딸들에게 이 세상에서 대가를 얻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곳에서의 삶을 체험하여야 나중에 경제적 문제에 부딪혔을 때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음을 나는 지금도 믿는다. -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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