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혼자 살고 있다.
물론 혼자 사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대학을 가면서 스무 살에 집을 떠나 결혼 전까지 잠깐씩 혼자 산 적이 있다. 여동생이나 친구가 거쳐간 시간을 빼면 오롯이 혼자였던 것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결혼으로 둘이 되고 셋이 되더니 넷이 되었다가 결국 다섯이 가족이 되어 오래 살았다. 애 낳아 키우고 일 다니면서 세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세 번의 사춘기를 겪었다. 그 질풍이 지나고 하나 둘씩 떠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비바람 지나간 들판에 홀로 선 너덜너덜한 늙은 활엽수 한 그루였다.
밥하고 빨래하고 장보고 청소하는, 반복되는 일상의 일들에 깎여 나가는 시간들에 조바심 내던 때가 많아서 늘 허겁지겁 허둥지둥 살았다. 그 시간 아껴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겨우 밀린 잠으로, 취미생활이라는 명목으로 그렇게 흘려버렸으면서 언제나 가까이 없는 것만 갈구했다. 그 속에서 불어나는 몸은 남의 일처럼 두고 바라만 보았다.
오래 그리던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은 욕구불만이 아니라 욕구비만이었다는 것을.
다시 다섯이 넷이 되고 셋이 되었다가 딱 신혼 기간 만큼 남편과 단둘이 단촐하고 가벼운 한 때를 살았다. 그러다 합의 후에 남쪽에서 서해 바닷마을로 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혼자 살고 있다.
아침이면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설레어 하며 기꺼운 마음으로 일어난다. 욕구에 가득차서 머리로 상상하고 갈구만 하던 때를 벗어나니 일 앞에서 짜증나는 경우가 없다. 몸으로 헤쳐 나가는 일들로 욕구 비만의 헛살과 허상이 빠진다.
혼자 살아 좋으면서도 아쉬운 일은 있다.내 아이들 또래의 젊은이들이나, 모녀 또는 가족들이 카페를 찾았을 때다. 그들 모두가 나에게 가족의 정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지만 자식 또래의 유독 살가운 젊은이들을 볼 때나 나와 내 딸들이 주고 받는 대화 같은 것을 듣게 될 때,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볼 때면 내 가족의 반영으로 가슴이 아릿해진다.
가족에 대한 생각을 최근 들어 자주하게 된다. 아마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지 1년 쯤 되어가니 정신이 드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20년 전 미국 서부 여행길에서 였다. 뉴욕 사는 친구네와 LA에서 만나 S여객 패키지 여행을 며칠 한 적이 있다. 잊을 수 없는 가이드 K를 만났다. 그랜드캐년에서 경비행기를 타기로 되어 있던 날, 갑작스런 일기 변화로 남은 세 팀 중 한 팀만 마지막으로 태우고 급히 비행을 종료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여행사 일행 중 누구를 태울지는 가이드 몫이었는데 우리 가족이 타게 되었다. 나중에야 우리가 탄 연유를 알게 되었다. 경비행기를 타지 못한 팀의 항의를 받고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해명과 사과를 해야했는데 '가족이어서' 그랬다고 했다. 남은 팀은 친구끼리 온 경우였다.
그는 H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사업을 했으나 실패 후 노숙을 거쳐 도미한 사람이었다. 흥과 망을 오가다 가이드 생활 중인 사람이 '가족이어서 그랬습니다.'
라고 한 것은 오래 울림이 있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가족의 시간을그렇게 우리에게 되비추고 다음 여행코스에서 다른 가이드로 교체되었다. 그는 가족을 택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가족에 대한 마음자락이 어느 한 순간 다른 가족을 지키는 일에 가 닿았다.
지금 우리 다섯 식구는 모두 '각살이'다. 한 집에서 복작이던 때가 오래 전인듯, 엊그제인듯, 꿈인듯 하다.
내가 아이였을 때 할머니를 중심으로 모이던 가족이 부모님 중심으로 옮겨가고 시부모님을 축으로 모이던 가족이 우리 부부를 중심으로 하나의 원을 그렸다. 지금은 미혼의 세 아이와 불화없는 별거의 우리 부부가 모두 각각의 5세대로 살고 있다. 명절에도 전처럼 한 자리에 모두 모이기 힘든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