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라는 섬에서 3

by 만리의 바다

스무 살.

발음만으로도 푸름이 배어난다.

그 푸른 나이에 나는 전공 이수를 위한 학점을 채운 나머지는 대부분 국문학과 수업을 들었다.

사회과학대학에서 인문대학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어서 연이어 수업이 있을 때는 뛰어도 지각일 때가 많았다. 수강 여건이 나빴고 시론 수업은 학점이 엉망이었는

데도 중독처럼 인문관을 드나들었다. 연일 최루가스 속에서, 가라앉지도 않는 시대와 개인의 허기를 문학에서나마 채우고 싶었을까.


어느 날 인문관 301호 강의실 서랍에서 강렬한 표지의 책을 발견했다. 누군가 두고 간 모양이었는데 그냥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 들고 나왔다. 몇 페이지 들추어 보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다음 강의 시간에 그 책상 서랍에 책을 도로 갖다 두었다. 책은 책주인에게로 갔을까 아님 내게 왔다간 것처럼 다른 누군가에게도 강렬한 빛깔을 묻혀두고 아직도 여기저기로 순회하며 읽히고 있을까.


80년대의 대학 캠퍼스를 생각하면 <분노의 포도>와 강석경, 김승희 작가가 떠오른다.

그 날 그 서랍 속의 책이 김승희 시인의 산문집 <33세의 팡세>였다. 걸신 들린 듯 읽었다. 미처 다 씹지도 않고 다음 숟갈을 입 속으로 밀어 넣듯, 다음 페이지를 보채듯이 넘보며 읽었다. 시인의 얼굴에서 조차 나의 이십대의 초상이 보이는 듯 하여 연이어 그녀의 시집을 사 모았다.

50대에 다시 그녀를 만났다. 무딘 중년의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여전한 눈빛이었다. 잘 벼린 시의 칼끝이 퍼렇게 번쩍이는 듯 했다.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 시인의 시의 제목이자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다.

그 시에도 김종삼 시인이 나오지만 김종삼 시인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라는 시와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는 나에게는 같은 빛깔로 들어있다.


책방카페 문을 열고 왼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바다다. '오천항'이라 쓰인 아치형 철구조물 사이로 갈매기가 날기도 하고 물새들의 기척이 자주 들린다. 작은 여객선 터미널에서는 앞바다의 여러 섬들을 오갈 수 있다. 월도 육도 추도 소도......

그러나 그래도에는 갈 수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냥 살아가는 , 그래도 살아가는 , 여기서 거기로 결국은 건너가는 사람들의 섬, 그래도.


책방카페 이름은 그렇게 해서 정해졌다.


작가의 이전글욕구 비만과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