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다.
결혼해서 사원아파트에 살다가 이사 나온 후로 그대로 눌러앉은 집이다. 크고 작은 일들이 지나가는 동안 세 아이들도 자라 성인이 되어 나간 집이다. 다섯이 북적이고 각자의 물건들로 복잡하던 집이 하나 둘 집을 떠나면서 비워지고 비어졌다. 큰 딸이 떠난 빈 방을 열어보곤 하던 때의 그 최초의 휑함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방 4개가 비어 있다. 방을 두고 거실에서 주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2~3주에 한번씩 들르는 집은 가족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도 일시 중단이다.
외국에 있는 아이들이 자주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 다섯 가족이 만나는 방이 따로 있다.
ZOOM ROOM 101호!
매주 일요일 밤 8시에 만난다. 그 곳에서 고민이나 계획이나, 기분 나쁜 일이나 매진하는 일이나 근황을 나누며 자신을 정리하고 나아가는 힘을 얻는다.
지금까지 집을 지키는 사람은 남편이다. 더 늦으면 꿈으로 끝날 것 같던 일을 하게 해준 덕분에 떠나 살고 있는 나를 대신해서 집을 가꾼다. 내가 살림 전담일 때
보다 훨씬 정리도 잘 되어 있고 특히 주방이 반짝인다.
요리를 많이 안하는 까닭도 있겠지만 뒷처리가 깔끔한 사람이다.
책방카페를 시작하고 집을 오가며 명절 때 빼고는 따로 식사 준비를 한 적이 없다. 오늘도 아침을 함께 먹을 때 수저만 챙겼다. 김치찌개며 부대찌개, 황태조림을 맛깔나게 해두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끔씩 주말에 김치볶음밥을 하거나 야외에서 조리를 전담한 사람이긴하다. 아이들은 아빠의 음식이 짜지않고 슴슴해서 좋아라했다. 음식은 그 사람의 반영이기도 하다.
재작년에 가족 중 나만 코로나에 걸렸었다. 그 때 일주일간 독방에서 남편이 해준 밥을 받아 먹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지 않으니 매번 비슷한 것만 넣어 주었다. 6일 째 되던 날 그 수고로움도 잊은 채 짜증을 냈다. 먹고 싶은 것을 좋은 말로 부탁하면 될텐데 지나쳤다. 하지만 내심 고맙고 호강스런 날들이었다. 어리석게도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일찍부터 설친 나로서는 뒤늦은 산후조리를 복리로 누리는 듯 했다.
오늘도 남편의 밥상으로 아침을 먹고 거실에서 뒹구는 이 시간이 일찍 사라진 친정에서 누렸던 짧으나 무한한 휴식같다.
남편의 눈썹 한 두개가 하얘진 걸 발견했을 때, 목주름이 눈에 띄기 시작할 때, 순리가 만든 일임을 알면서도 왜 그리 화가 나고 보기 싫던지. 그런 나를 그도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 크게 다정을 표하는 사람은 아니나 성실하고 일관되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아이들과 아내에게 인정을 받으니 잘 산 사람이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가장 나중까지 나의 친정같은 남자라는 것이다. 떠나있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우리들의 오래된 집을 지켜주고 온기를 불어넣고,
떠나있던 가족이 들르면 맞이하는 사람, 그 사람이 꼭 엄마여야할 필요는 없다.
뽑아든 <사피엔스 >14장 소제목이 '과학을 보살피는 다정한 아빠'다. 지금 옆에는 '집을 보살피는 다정한 아빠, 남편' 이 있고 이 곳에서 나는, 없는 친정을 느끼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인다. 그러다 석잠 잔 누에처럼 불어나 내일 새벽 기차를 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