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인생테마를 찾아서..
블로그에 방탈출 후기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댓글에 질문을 하는 분들이 생겼다. 그중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세 가지를 뽑아보라면 아마 이게 아닐까?
1위. 이 테마 스포 좀 해주실 수 있나요??
2위. 이 테마 XXX 테마랑 비교하면 어떤가요??
3위. 탈출의 정석 님의 인생테마는 무엇인가요??
(※ 실제 블로그 닉네임은 다릅니다)
아무래도 방탈출은 스포일러를 금지하다 보니, 비밀 댓글로 스포에 대한 질문을 정말 많이 한다. 특히 공포테마의 경우 분리구간이 있는지, 특히 무서운 구간은 어디인지, 연출이 있다면 알려줄 수 있는지 등등인데, 당연하지만 비밀 댓글로 물어봐도 답해줄 수 없다고 답글은 단다. 이게 정말 희한한데, 분명 방탈출을 하기 전에 스포일러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서에 서명을 하는데, 참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본다. 비밀 댓글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방탈출 깨알 상식! '분리구간'이란?
방탈출에 따라서는 인원이 나누어지는 구간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떤 테마는 들어갈 때부터 나누어지기도 하고, 플레이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눠지도록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나누어진 상태로 협력해서 문제를 풀다 보면 다시 만날 수 있지만, 테마에 따라서는 끝까지 만날 수 없을 지도...??
그 외에는 엔딩을 못 봤는데 특정 구간 이후에 대해서 알려달라든지, 스토리 이어지는 테마를 하러 갈 예정인데 앞선 테마를 안 했으니 그 테마 스토리를 알려달라든지... 물론 이런 댓글도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몇몇 방탈출 카페는 테마 진행률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지 않으면 뒷부분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데, 그래서 이후 내용을 모른다면 다시 하러 가는 게 맞지 않을까? 나도 경험치가 부족했던 때에 실패해서 뒷부분을 모르는 테마는 경험치를 좀 더 쌓은 후 같은 돈을 내고 다시 하러 가서 뒷부분을 확인하곤 했다.
테마 간 비교는 내가 그 테마를 해봤다면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답변을 해준다. 예를 들면 스토리는 A 테마가 더 제 취향이었어요! 난이도는 B 테마가 더 높았던 것 같아요!처럼 두루뭉술하게. 더 자세히 비교하고 싶으시다면, 그 테마 리뷰를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라는 영업(?)도 살짝 곁들인다면 더 좋다.
문제는 바로 3위 질문, '당신의 인생테마는 무엇인가요?'였다. 나는 방탈출 경험이 100번이 넘어가도록 인생테마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는 '인생테마는 아직 없지만, 스토리는 A 테마가 가장 좋았고, B 테마를 가장 재미있게 했어요' 정도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다, 나도 인생테마 만들어야지! 그래서 50방이 넘어가면서부터는 후기 좋고 다른 사람들이 인생테마라고 하는 테마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100방이 넘도록 인생테마는 찾을 수 없었다.
인기 있는 방탈출 테마는 예약 오픈 시간에 1초 컷으로 모든 시간대가 마감된다. 인기 가수의 콘서트 티켓팅 저리 가라! 하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온라인 방탈출 카페에 'XXX 가수 티켓팅도 실패한 적이 없는데 방탈출 티켓팅을 실패했다..'는 글까지 올라올까. 심지어 1년 전에 예약해야 할 수 있다는 방탈출도 있다. 인생테마를 찾기 위해, 방탈출 예약 전쟁에 뛰어드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후기에 '인생테마'라는 글자만 보면 손이 방탈출 카페 예약 사이트로 향했다.
그런데 그렇게 인생테마로 꼽히는 테마들을 차례차례 해도 '나의 인생테마'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친구에게 '이거 사람들이 인생테마라고 엄청 추천한 테마야!'라는 설레발을 잔뜩 치고 가서 그런지 친구도 썩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아, 이래서 기대컨(기대치 컨트롤) 하라고 그러나..? 싶었지만 이미 늦었고, 나날이 높아가는 눈을 만족시킬 테마는 더더욱 나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인생테마라고 하는 테마를 찾아다니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테마로 돌아갔다.
그런데 의외로, 포기하니 생각보다 빠르게 인생테마를 찾았다. 이 테마는 조금 특이한 테마였는데, 테마 자체는 풀길을 넘어서 흙길이 아닐까.. 싶은 정도의 퀄리티인데 연출 하나로 씹어먹는 테마라는 평이 있었다. 호기심으로 찾아갔는데 바로 인생테마로 등극했다. 바로 지난 에피소드에서 '이거.. 정말 실제 상황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그 테마이다.
테마 시작 10분 전보다 조금 일찍 갔더니 입구컷에 테마 인테리어도 기대 이하, 문제의 퀄리티는 뚝배기 깨는 수준, 스토리가 대체 뭐였더라.. 싶은 정도.. 그냥 보면 좋은 요소가 없는 것 같은데, 그 연출이 미쳐버린 몰입을 만들어냈다. 만약 '구인'으로 갔다면 모든 것을 의심하느라 방탈출이라는 생각도 못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방탈출 깨알 상식! '구인'이란?
방탈출은 물리적으로 혼자 할 수 없는 테마도 있고, 테마에 따라서는 최소 인원을 3~4인으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그 외에도 일행과 시간이 맞지 않아서, 난도가 높은 테마라서, 인원이 많아야 더 재미있어서.. 등등의 이유로 온라인에서 일행을 모집하는 걸 '구인'이라고 한다. 나도 몇 번 구인을 해봤는데, 정말 좋은 사람도 있지만, 다소 불쾌한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아주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하지 않고 있다.
다른 친구 데리고 또 하러 갈 거야!라고 다짐했던 이 테마는 아쉽게도, 내가 플레이한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매장이 폐업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하러 갈 수 없다는 아쉬움과 그래도 없어지기 전에 했다는 안도감이 뒤섞였다. 그래도 나의 첫 번째 인생테마!라는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물론 블로그에 올린 리뷰도 남아있고.
방탈출 테마를 고를 때 평점이나 후기를 참고하기는 하지만, 평점 높고, 호평인 후기가 넘쳐도 나에게는 그저 그런 테마도 있고, 대부분 그냥 그렇네, 심지어는 별로네.. 하는 테마가 나에게는 너무 재미있는 테마인 경우도 있다. 결국 모든 것은 해봐야 아는 법! 나의 첫 번째 인생테마 이후로 나는 방탈출을 하러 가는 친구들에게 더 이상 '이 테마 진짜 인기 있고 재미있는 테마래!'라는 설레발을 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방탈출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처음이라면 평점도 보고, 추천도 받아서 최대한 재미있을 '확률이 높은' 테마를 하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조금씩 내 경험치가 쌓이면 그때는 '나와 맞는' 테마를 찾아갈 수 있다. 비단 방탈출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렇다. 나와 맞는 옷을 찾아가는 것, 나와 맞는 취미를 찾아가는 것, 나와 맞는 일을 찾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게 나와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까지. 그래서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번에는 브런치가 나와 잘 맞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