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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탈출 게임에서 살짝, 내일을 엿보다

EP6. 방탈출, 그거 자물쇠 따러 가는 거 아냐?? -2-

by 탈출의 정석

지난 글의 주제는 방탈출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 중 한 가지에 대한 해명이었다. 일단 그 오해는 "방탈출, 그거 자물쇠 따러 가는 거 아냐?" 였고. 그런데 얼마나 해명할 게 많았는지 한 편에서 글이 끝나지 않고 이번 글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난 글에서 해명했던 내용을 살짝 가져와 보면, 방탈출은 단순히 방에 갇혀서 자물쇠만 따는 게 아니다. 첫 번째로 상상 이상의 규모와 고유한 컨셉을 가진 '인테리어'가 있고, 두 번째로 드라마, 공포, 스릴러, 잠입 등 영화 이상으로 다양한 '장르'가 있다. 세 번째로 여러 테마를 아우르는 세계관이 있을 정도로 멋진 '스토리'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사실 이 정도라면 한계가 없을 규모의 인테리어와 앉은자리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걸로도 고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장르와, 두 시간쯤은 순삭 하게 만드는 스토리를 지닌 영화 쪽이 월등할 수도 있다. 영화비가 많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두 시간에 만 원대의 금액은 방탈출에 비하면 완전 갓성비이다. 그런데 왜 나는 방탈출에 그렇게 빠져들었을까? 그게 바로 이번에 소개할, 그리고 내가 방탈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인 '몰입'이다.






최근 방탈출은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느껴지는 테마들이 많은데, 덕분에 방탈출을 많이 할수록 과몰입러가 되어간다. 단순히 주인공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고 하면 와닿지 않을 것 같아서, 이번에도 앞선 에피소드와 같은 예를 들어봐야겠다.


'평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폐가에 호기심이 생긴 당신이 직접 가보게 되는데...' 라는 시놉시스가 있다고 해보자. 그래서 테마에 입장했더니, 이럴 수가? 나보다 먼저 폐가에 와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심지어 그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 '여긴 내가 먼저 왔으니 순서를 기다리라고. 뭐, 나보다 먼저 여길 조사하고 싶다면, 간단한 게임이라도 해보겠나?' 그리고 어떤 게임을 제시하고, 이 사람을 이겨야만 조사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저 시놉시스와 상황은 순수 창작이다. 실제로 있는 테마의 내용을 가져오면 스포가 될 테니까. 그런데 정말 테마 내에 NPC가 있는 경우가 이제는 드물지 않아졌다. 단순히 NPC가 등장해서 '왁!' 하고 놀라게 만든 후 빠르게 사라지는 공포 연출뿐만 아니라 NPC와의 상호 작용을 하는 테마도 있다. 그것도 정해진 대사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따라 NPC의 반응과 행동도 바뀐다.






영화 이상의 몰입..이라고 하면 와닿지 않겠지만, 실제로 '배우'를 NPC로 섭외한 테마도 있다.(이 부분은 특정 테마의 소개에서 공지하는 부분이다) 배우의 연기를 눈앞에서 보며 플레이를 하면 마치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꼭 배우를 섭외하지 않더라도 여러 방탈출 카페의 직원 모집 공고를 보면 '배우 지망생 우대' 내지는 '연기 가능자 우대' 같은 문장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주인공인 것 같은, 내가 정말 그 상황에 처한 것 같은 몰입을 절로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인생테마로 꼽는 어떤 테마는 순간 '이거.. 정말 실제 상황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물론 NPC가 나오기 때문에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건 단순히 예를 든 것이고, 그 외에도 플레이어가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요소들은 정말 많이 있다. 스포일러가 되는 것만 아니라면 다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나만 알고 있어야 한다니 아쉬울 뿐이다.






방탈출이 한 시간에 2~3만 원이 드는 비싼 취미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정말 잘 만든 테마, 정말 재미있는 테마, 정말 몰입할 수 있는 테마를 하면 절대 그 돈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와, 이 정도면 저렴한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이 돈을 한 번 더 내고라도 또 한 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실제로 방탈출 테마를 하고 너무 재미있어서 같은 돈을 내고 두 번 한 테마도 몇 개 있고, 다행히 몇몇 방탈출 카페는 '옵저버'라는 제도가 있어서 세 번까지 플레이해본 테마도 있다. 보통 방탈출을 영업할 때는 나도 그 테마를 모른 채 가기 때문에 리스크가 있는데, 이미 해본 테마라면 리스크를 낮춘 채 영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방탈출 깨알상식! '옵저버'란?

원래는 '관찰자'라는 뜻에 걸맞게, 이미 해당 테마를 해본 플레이어가 다시 한번 그 테마를 하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방탈출에서는 이미 테마를 해본 플레이어가 신규 플레이어 (통상 2인 이상) 와 함께 방문하면 무료 혹은 할인된 가격에 테마를 할 수 있는 걸 '옵저버' 제도라고 표현한다. 보통 옵저버는 이전 플레이 때 놓쳤던 부분을 다시 보고 싶거나 실패해서 재도전할 때, 혹은 너무 재미있게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영업하고 싶을 때 하게 된다.






내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막연한 상상으로, 혹은 보고 들은 정보만으로 단정 짓는 건 조금 위험하다. 이건 꼭 방탈출에 대한 편견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넓게 보면 인생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방탈출 관련해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게 있는데, 혹시 방탈출을 '많이 해봤다'라고 하면 몇 번이나 해본 사람을 의미할까? 50번? 100번? 1,000번?? 가끔 방탈출 카페에 가면 직원이 '방탈출 많이 해보셨어요?' 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는데, 이때 '많이 해봤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50번 전후로 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주 당당하게 'XX번 했어요!'라고 이야기한다고.


'조금 해봤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 100번 넘게 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정도 한 사람들은 절대! 한 번에 방수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방탈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50~99 사이를 '초고수'로, 100 이상을 '방린이(방탈출 + 어린이)' 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 4~50번 정도 방탈출을 했을 때 '우와, 나 진짜 많이 했네!' 하기도 했고.


그래서 4~50번 정도 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방탈출도 좀 잘하는 것 같고, 방탈출도 좀 많이 했고, 이제 할 방탈출도 얼마 없는 것 같고, 방탈출에 대해서 되게 잘 아는 것 같다고. 주변에 방탈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자랑도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내가 했던 방탈출을 대부분 높게 쳐줘야 꽃길인 테마들이었다. 꽃밭길, 인생테마 급의 엄청난 테마는 해보지도 않은 채 방탈출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던 것이다. 어쭙잖게 알 때가 제일 용감하고 당당하다.


이것저것 길게 썼지만 결국 방탈출에 대한 편견 없이,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다!는 게 본심이다. 그래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이번 글은 그 말로 마무리 해야겠다.


혹시 방탈출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으신가요?? 그 편견, 제가 깨 드려도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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