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방탈출, 그거 자물쇠 따러 가는 거 아냐?? -1-
'제 취미는 방탈출입니다.'라고 말하면 주변에서 많이 듣는 말이 몇 가지 있다.
1. 굳이 내 돈 내고 뭐 하러 갇히러 가..??(여기에 우리 아버지는 '그냥 내가 방에 가둬줄까?'라고 하시는...)
2. 진짜 비싸더만.. 돈 많이 버나 봐??
3. 방탈출, 그거 자물쇠 따러 가는 거 아냐?
사실 이 중 1번은 사실이라 해명할 게 없고, 2번은 절반, 정확히 말하면 앞쪽만 사실이라 남은 절반만 열심히 해명하고 있다. 실제로 방탈출을 시작한 이후 다른 취미 비용을 대폭 줄이기도 했고. 하지만 3번, 이 3번에 대해서는 해명하고 싶은 게 있다. 방탈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보통 자물쇠인 것 같고, 실제로 방탈출 하러 가면 제일 많이 보이는 게 자물쇠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탈출에는 자물쇠만 있는 게 아니다.
보통 '자물쇠'와 대응되는 게 '장치'이다. 주어진 단서를 이용해 문제를 풀었을 때 답이 3~5자리의 영문이나 숫자, 혹은 한글로 나오는 걸 해당하는 자물쇠에 입력한다! 는 게 분명 가장 흔한 문제 풀이 방식이다. 하지만 나온 답을 자물쇠가 아닌 다른 곳에 입력하는 경우도 있고, 단서를 보고 답을 구하는 게 아니라 그 단서 자체를 어떻게든 활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흔한 경우는 '태그'이다. 나온 단서를 알맞은 위치에 가져다 대면 해당 장치가 작동한다. 가장 흔하게는 '문이 열린다'가 있다. 자물쇠를 풀어서 내가 직접 문을 여는 게 아니라, 단서를 태그 하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게 된다. 이 문은 자그마한 사물함 문부터 진짜로 이동하는 문까지 다양한다.
최초의 방탈출은 정말 자물쇠만 있었고, 지금도 대부분 자물쇠로 이루어진 테마가 트레이드 마크인 방탈출 프랜차이즈도 있다. 하지만 점차 트렌드는 장치로 넘어가게 된다. 초기에는 앞서 설명한 대로 태그 형태의 장치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의 장치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방탈출의 장치는 그 자체로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곳이 테마파크인지 방탈출 테마인지 모를 정도의 장치도 있고, 아예 내가 있는 곳이 실내인지 실외인지 헷갈릴 정도의 장치도 있다는 것으로 궁금증을 유발해 봐야겠다.
그렇다면 방탈출은 자물쇠 따고, 장치 작동시키러 가는 걸까? 초창기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또 달라졌다. 내가 방탈출 후기를 쓸 때 몇 가지 항목이 있는데, 그 항목을 가져와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인테리어'이다. 방탈출이라고 하면 방 안에 자물쇠 주렁주렁, 다 풀면 끝!! 같은 걸 상상하기 쉽지만, 요즘 방탈출은 방 하나로 되어 있는 게 드물다. 방이 여러 개인 건 기본에 각 방마다 인테리어가 범상치 않다. 방탈출은 가서 보기 전에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테마를 하기 전에는 '포스터'와 몇 줄의 '시놉시스'만 보고 상상하게 되는데, 심지어 그 상상이 맞아떨어지는 경우조차 별로 없다.
한 테마를 예로 들어보자면, 이 테마의 컨셉은 '마을'이었다. 그래서 이 테마의 메인 공간에 가면 정말 길도 있고, 길 양쪽으로 집과 상점들이 있다. 방탈출 테마 안에 마을이 있다는 걸 방탈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을까? 예는 비교적 평범한 걸로 들어봤는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들도 많이 있다. 저는 방탈출 테마 안에서 '배'도 타보고, '우주선'도 타보고, 아예 우주도 다녀왔다니까요.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고 일축할 수도 있고, 정말 그럴 수가 있나?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진짜, 리얼, 방탈출 세상에서는 가능한 일들이다.
두 번째는 '장르'이다. 방탈출 카페의 홈페이지에서 들어가서 '테마' 정보를 보면 몇몇 매장, 혹은 몇몇 장르를 비공개하는 테마를 제외하면 공식적인 테마의 장르를 확인할 수 있다. 장르도 얼마나 다양한지, '감성', '판타지',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드라마' 등등 어지간한 영화 장르 저리 가라! 할 정도이다.
초기에는 장르가 있었다고 해도 단순한 '분위기의 조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공포 장르라고 해도 시놉시스에서 '평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폐가에 호기심이 생긴 당신이 직접 가보게 되는데...' 하는 식으로 설정이 되어 있더라도 테마에 들어가면 좀 어둡고, 뭐가 나올 것 같고, 폐가 같은 분위기를 내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시놉시스라고 해도 인테리어는 폐가 그 자체에, 폴터가이스트 뺨 칠 정도의 심령 현상에, 심지어는 정말 귀신이 나오기도 한다.(연출입니다) 그 장르를 테마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느낄 수 있게 정말 많은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 장르의 마니아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참고로 나는 '잠입' 테마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다룰 예정이니 여기에서는 가볍게 언급만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세 번째는 '스토리'이다. '평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폐가에 호기심이 생긴 당신이 직접 가보게 되는데...'라는 위에 적었던 시놉시스를 다시 가져와보자면, 초기 방탈출이라면 뭔가 있을 듯한 분위기 조성으로 끝이지만 요즘 방탈출은 그렇지 않다. 방탈출을 해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 귀신이 나오는지, 그 비밀이 풀린다. 단순히 비밀이 풀리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반전이 있을 수도 있다.
스토리도 그냥 '텍스트'만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나레이션이 나올 때도 있고, 영상으로 보여줄 때도 있다. 스토리는 이거다! 하고 대놓고 알려주지 않아도 그냥 문제를 풀다 보면 자연스레 스토리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테마를 플레이하고 나면 직원이 스토리와 플러스알파 요소들까지 설명해 주는 경우도 있고, 아예 스토리가 정리된 스토리북을 제공해 주는 곳도 있다. 테마를 플레이하면서 전혀 몰랐던 '이스터에그'까지 있는 테마들도 적지 않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스토리가 테마 하나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매장의 2~3개 테마의 스토리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아예 한 매장의 모든 테마의 스토리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같은 프랜차이즈의 다른 매장의 테마들과도 스토리가 이어지는 대규모 스토리 테마도 있다.
그리고 '방탈출을 하다 울었다'는 후기도 심심치 않게 올라올 정도로, 스토리의 완성도도 높아졌다. 나는 울기까지 한 적은 없지만 정말 감탄하거나, 정말 찡했던 경험은 몇 번 있었다. 그리고 정말 소름 돋는다! 는 생각도 여러 번했다. 방탈출 테마의 스토리가 이 정도라는 걸, 방탈출을 해본 적이 없거나 초기 방탈출만 해본 사람이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편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너무 해명하고 싶은 게 많아서인지 글이 자꾸 길어져서 두 편으로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살짝 예고하자면, 다음 편에서 다룰 항목은 내게 방탈출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더 길어지는 걸지도.
아주 어릴 때 책에서 본 내용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바다가 있다는 걸 책에서 읽은 사람과 바다가 있다는 걸 바다를 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사람, 그리고 바다를 직접 본 사람이 있다고 하자. 세 사람은 모두 바다를 '안다'라고 말하겠지만, 진정 바다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내가 길고 긴 글로 방탈출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도 결국 방탈출을 한 번 해 본 사람이 방탈출에 대해 '아는' 만큼도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또 쓰게 된다. 방탈출이 단순히 방에 가둬놓고 자물쇠만 따게 하는, 비싸기만 한 취미라는 편견에 조금이라도 금이 가게 만들고 싶어서. 자꾸 쓰다 보면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방탈출에 대해 방탈출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 아는 것에 가깝게라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실 그보다는 자꾸 쓰다 보면 방탈출에 호기심이 생겨서 한 번이라도 해 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크다. 그럴 때를 대비해 방탈출에 입문하기 좋은 테마도 조만간 추천해보려고 하니 누군가 조금쯤은 기대해 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