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블로그 일 방문자가 1,000명이 되었다
추리소설 리뷰를 주로 올리는 블로그를 제법 오래 해왔다. 블로그를 시작한 건 순전히 나의 독서 성향 덕분이었다. 어느 책을 읽었는데 마음에 들었다? 그럼 그 작가의 출간작을 모두 읽을 기세로 달려든다.
그런데 그즈음 읽은 책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그 책의 작가가 정말 다작을 했다. 몇 달을 읽어도 출간작을 다 읽을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니 어떤 책을 읽었는지 헷갈릴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아, 안 되겠네, 어디에 기록이라도 해야지. 하고 선택한 게 블로그였다. 어차피 나만 볼 거라며 중구난방으로 읽은 책의 감상을 남겼다. 때로는 결정적인 스포도 서슴지 않는 천둥벌거숭이 시절이었다.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서.. 도 있겠지만 책 리뷰는 애초에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아주 인기 있는 작가, 이를테면 '히가시노 게이고' 정도 되는 작가의 책이 아니면 누적 조회수 1,000을 넘기는 것도 어려웠다. 어차피 내 기록용이니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리뷰를 쓰는 시간을 생각하면 조금 씁쓸했다. 이때 내 블로그는 일일 방문자가 1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연극을 보러 다녀와서 아무 생각 없이 블로그에 리뷰를 올렸다. 그리고 그날 블로그 방문자 수가 처음으로 100명을 넘겼다. 와,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신기했고 내가 쓴 리뷰를 본 사람이 많다며 조금 뿌듯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연극 리뷰를 올리는 날에는 블로그 방문자 수가 많아졌다. 연극 리뷰는 대부분 누적 조회수 1,000은 기본으로 넘겼고, 인기 있는 연극은 누적 조회수 10,000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글을 쓰는데 들어가는 품은 소설 리뷰가 훨씬 큰데 조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연극은 자주 보러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100명을 넘긴 방문자 수도, 1,000을 넘긴 조회수도, 그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여기에 행복의 역치는 나날이 높아지기만 하지, 결코 낮아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갈망하게 되었다.
친구에게 방탈출을 영업하기 위해 서치를 하고 정보가 너무 없음을 아쉬워하면서도, 막상 블로그에 방탈출 리뷰를 쓸 생각을 왜 그렇게 늦게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블로그에 첫 방탈출 리뷰를 올린 건 무려 40여 번의 방탈출 테마를 한 이후였다.
방탈출 리뷰를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있었다. 어떤 방탈출 테마를 하러 갔고, 무사히 성공해서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찍었는데 인화에 문제가 생겨서 잠시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특별히 할 일이 없었는데 마침 그 방탈출 카페의 대기 공간이 참 예뻤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매장 사진을 몇 장 찍게 되었다.
집에 와서 사진을 보다 보니 이 정도면 블로그에 리뷰를 올려도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다음날 매장 사진을 포함한 테마 리뷰를 남겼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리뷰의 조회수는 대부분의 연극 리뷰 조회수보다도 높아졌다. 와, 방탈출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나? 깜짝 놀랐다.
블로그에 방탈출 리뷰를 딱 하나 올렸을 때, 다른 블로그에서 '체험단'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받았다는 방탈출 리뷰를 보았다. 리뷰를 쓰면 방탈출을 무료로 할 수 있는 건가? 그때까지 체험단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눈이 번뜩했다. 방탈출 리뷰도 하나밖에 없는 데다 일 방문자 수도 많지 않은데 무슨 배짱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체험단 신청 버튼에 손이 갔다.
여기에서 잠시 방탈출 깨알 상식. 무언가를 하고 꽤 좋았을 때 '꽃길'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방탈출에도 이렇게 방탈출의 퀄리티 혹은 만족도를 '길로' 표현하는 게 흔하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를 보면..
인생테마 - 꽃밭길 - 꽃길 - 풀꽃길 - 풀길 - 흙길
정도로 많이 표현한다. 굳이 이 타이밍이 이 토막 상식을 꺼낸 이유는 다음에 나올 내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방탈출 체험단을 신청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지 첫 신청에 덜컥, 선정되었다. 보통 체험단 이벤트를 진행하는 방탈출 카페의 테마들은 대부분 꽃길 미만이다. 그래도 처음 체험단으로 하는 방탈출이라 풀길도 풀꽃길 정도로는 느껴졌던 것 같다. 첫 체험단의 경험은 제법 즐거웠다.
블로그에 방탈출 리뷰가 조금 늘었고, 체험단으로 방탈출을 하는 횟수도 조금씩 늘어갔다. 그리고 블로그 방문자 수도 4~500명 정도로 점차 늘어갔다. 여기에 이즈음,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강렬한 경험이 찾아왔는데, 방탈출 카페에서 나를 초대하는 일이 생겼던 것이다.
다수가 체험단을 신청하고 그중 내가 선정되어야만 방탈출을 하러 갈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방탈출 카페에서 '내가' 와주기를 바라며 초대를 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기뻤다. 방탈출 카페에서 초대를 한다는 건, 최소한 내 블로그의 리뷰를 읽었고 그런 리뷰를 써주었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와, 내 리뷰 포스팅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방탈출 초대를 받을 때마다 내 리뷰를 인정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래도 그중 그런 행복에 절정을 찍었던, 그래서 내가 방탈출 리뷰를 빠짐없이 올리게 만들었던 계기를 꼽으라면, 단연 내가 정말 좋아했던 매장에서 초대를 받았을 때였다. 방탈출 체험단이나 초대는 꽃길 이하의 매장에서만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는데 이 초대를 통해 훨훨 날아가버렸다.
블로그에 꾸준히 책과 연극 리뷰를 올렸지만, 내 블로그가 성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방탈출 리뷰였다. 블로그 방문자 수가 100명만 넘어도 신기하던 나였는데, 방탈출 리뷰를 올리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일 방문자 수가 가뿐히 1,000명을 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쓴 리뷰는 대부분 검색하면 최상단에 노출되게 되었다.
물론 그간 꾸준히 책, 연극 리뷰를 올린 게 무의미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당연히 블로그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책과 연극 리뷰만으로는 분명 지금만큼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단순한 리뷰일 뿐이지만,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은 일종의 포트폴리오처럼, 든든한 나의 데이터베이스가 되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리뷰를 쓰면서 방탈출에 대한 기억도 보다 생생하게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방탈출은 일회성이라 또 한 번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다시 체험할 수 없다. 또 시간이 지나면 테마가 리뉴얼되며 없어지거나, 방탈출 카페가 폐업하는 일도 적지 않다. 리뷰를 남기지 않은 방탈출은 첫 방탈출, 첫 성공처럼 몇몇 강렬한 경험이 있는 테마가 아니면 거의 기억나지 않는 게 너무 아쉽다. 이렇게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또 한 번의 예고. 블로그에 남긴 방탈출 리뷰는 나의 포트폴리오, 나의 데이터베이스, 나의 기억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소중한 만남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 소중한 만남에 대한 경험도 언젠가 풀어나가 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