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단약후기➀ | 발가락에서 피가 나던 날

by 김헤니

수년 전 그날, 마음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여느 때와 똑같은 하루였고 늘 앉아 있던 내 방의 책상 앞이었다. 마음의 병은 그렇게 소란스럽지 않게 찾아왔다.



어릴 적, 꽤 높은 의자에 올라가 천장의 조명을 고치던 작은삼촌이 기억난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내 눈앞에 삼촌의 발이 보였는데, 엄지발가락에서 피가 줄줄 흐르던 장면이 생생하다.



“삼촌, 발가락에서 피나.”


“엥?”



우당탕 허겁지겁 의자에서 내려온 삼촌은 엄지발가락을 살펴보더니 그제야 연신 따가워 죽겠다고 피를 닦으며 연고와 밴드를 찾았다. 피가 굳어 물에 젖은 손수건으로 힘을 주어 닦아야 할 정도로 금방 난 상처가 아니었는데 삼촌은 정말 그동안 발가락이 안 아팠을까?



“삼촌 근데 엄마가 삼촌 발가락 아까부터 피 나고 있었대.”


“그러게,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발가락이 터졌다. 모를 때는 하나도 안 아팠는데 알고 나니까 엄청 아파. 따가워서 발가락 털이 다 뽑힐 것 같아.”



어린 나는 킥킥 웃으며 다 큰 삼촌이 왠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스무 해 남짓 지나 떠올린 삼촌의 모습은, 놀렸던 게 무안할 만큼 현재의 나와 닮아 있었다. 천장에 집중하느라 발가락에 난 생채기를 눈치채지 못한 삼촌과, 열심히 산다는 핑계로 마음에 우울이 쌓이는 것도 몰랐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발가락은 주인이 알아주지 못하는 사이에도 기특하게 스스로 지혈하며 기다렸다가 따가움으로 톡 쏠 뿐이었지만,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나 좀 먼저 돌아봐 달라고 무수히 보내는 신호에도 응답이 없던 것을 원망하듯, 천천히 나를 떠밀어 한순간 벼랑 끝에 데려다 놓았다.


내가 마음과 기분을 통제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이미 우울척도는 위험 수준에 도달했지만, 직전까지도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인지하고 못 하고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몰아치듯 사느라 피곤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힘이 나지 않을 때마다 자신을 다그쳤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오히려 이득이라며 책상에 앉았지만 이내 책이 아닌 스마트폰만 바라보았다. 이전보다 부쩍 추위를 느껴도, 소화불량을 달고 살아도 한 번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울증의 영향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몸과 마음의 태도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이상증세에 가져다 붙이던 온갖 이유는 사라지고 ‘마음이 아파서’ 하는 단 한 개의 꼬리표만 남아있었다. 꾸역꾸역 이어가던 의지와 억지로 만들어내던 행복이 병명 아래 숨어버리자, 마음은 겨우 한숨 돌렸을지도 모른다.


코앞까지 오는 것도 몰랐으면서 마주친 순간부터 커다란 존재감에 휘청휘청 휘둘렸다. 예쁘게 불타는 노을을 넋 놓고 바라보다 갑자기 끼얹은 밤에 놀랐을 때처럼 나의 세상은 그 전과 전혀 달라져 있었다. 그 후로는 도무지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직장 상사의 지나가는 한마디에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던 날, 나는 마침내 마음이 아프다고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마음의 병과 정신건강의학과가 생판 처음은 아니었다. 우울증과 트라우마 치료 과정을 겪으며 먼저 거친 길을 걸어준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름대로 우왕좌왕하지 않고 조치를 취했다. 마음이 아파서 도움을받아야 할 것 같다고 부모님께 알렸고, 동생을 치료해 주시던 대학병원 주치의 선생님께 연락드려 최대한 이른 날짜에 진료를 예약했다.


도움을 청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랬나? 약 좀 먹고 뜨끈한 데서 쉬면 되겠군’ 하고 생각했다. 동생의 상처를 가족처럼 돌봐주던 교수님도 계시니, 고장 난 마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든든했고 어이없게도 병원 가는 길에 살짝 들뜨기도 했다.


환자 당사자로 처음 찾아간 정신과 진료는 생각보다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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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발가락에서 피가 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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