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밍 개인전 2026년 2월 24일(화) – 3월 1일(일)
만약에 나에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만약에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만약에 내가 더 강한 사람이었다면 삶이라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기에 과거는 가만히 있어도 점점 멀어집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과거는 흘러간 뒤에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도 참고 견디다 보면 다른 것을 보게 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시간도 조금만 지나면 과거가 됩니다. 조금 더 좋은 과거를 만들기 위해 지금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합니다. 무엇이 필요할까요. 다른 이의 이야기에 힘껏 귀 기울일 수 있는 긴 귀와 따뜻한 포옹입니다.
어느 날, 몇 년 전의 오늘이 궁금해 오래된 일기장을 펼칩니다. 그곳에는 저보다 더 괜찮은 생각을 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멀리 떠나버린 시간들 속에서 몇몇 사건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합니다.
말하지 못한 것들을 마음속에서만 말하는 것은 진짜가 아니기에 멈출 수 없습니다.
끝없이 고백은 반복됩니다.
이파리 하나는 무심히 스친 바람에 가볍게 흔들립니다.
낮에 뜬 하얀 달은 자기 시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공허하게 떠 있습니다.
나에게서 모순을 발견합니다. 세상에 대해 모순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명도만 다를 뿐, 모두 회색입니다. 스스로와, 또 다른 이와 치고 박고 싸우고 잘잘못을 따지지만 결국 언제든 명도가 달라질 수 있는 우리는 회색입니다.
내가 아파하는 것도, 기뻐하는 것도 과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결국 제로입니다.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반대되는 것들은 꼭 존재합니다.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져 혼란스럽지만, 결국 삶이 제로라면 더하고 빼지는 리듬에 몸을 맡기고 한번쯤은 즐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주말에도 밤낮없이 일을 하며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시달립니다.
수면은 줄고, 화는 늘어납니다. 현실적인 부분을 마주하고 나니 내가 있던 곳이
마음은 우울해도 한적한 곳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깊은 생각과 우울해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간들입니다.
깊게 생각하는 것을 놓아버리면 더 큰 것들을 놓치게 됩니다. 그건 시간이 흘러 깨닫게 되면 큰일입니다. 지금 이미 큰일이 나버린 것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다시 잘라, 바로잡습니다.
만약에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지금의 저는 길을 잃은 게 분명합니다. 무채색,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려 합니다.
만약에 회복 불가능한 좌절이 있게 된다면 만약에 나를 지탱하던 보호막이 사라진다면 만약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병아리가 닭이 되기 전, 애매한 자리에 있습니다. 불안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비율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생각과 애매한 영혼만이 그림 안에 담겨 있습니다.
시간의 조각을 그림에 담아 두고 그것을 시간이 지난 뒤 지켜보는 일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방황했지만, 고민하고 기록했습니다. 방황이 있었기에,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았습니다. 한때의 시간을 담아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사랑은 강합니다. 예기치 못한 역경들 속에서 단단한 기둥이 되어 줍니다.
막연한 불안 속에서 희망을 품게 해 줍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하여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 논어 배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나를 반성합니다. 자기 의심의 중요성을 마음속에 새깁니다.
대체로 서로가 싸우는 이유는 모두 자기 관점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 큰 인사이트가 되었습니다. 서로 간에 공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일을 서로 노력한다면 조금 더 서로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름의 경험으로 나름의 좋은 과거를 만들어 보겠다며 보내온 시간들 이후에는 그때 아팠던 지난 시간들이 오히려 청춘이 되었고, 또 다른 후회와 상처, 회복과 사랑을 안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정리하고 완벽해지기에는 무척이나 불안정한 존재인가 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존중과 애정을 가지고 다시 앞으로 날아봅니다.
아직도 목에 걸려 있는 지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회색으로 그려진 깊이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간직한 채 지금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합니다. 미래의 희망들을 생각합니다. 목에 걸려 있는 것들에 쉼을 줍니다.
회복과 재생의 반복은 좋은 것 같습니다.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잘 회복하는 법을 익힌다면 고통 또한 나름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분명 괜찮아지는 것을 넘어서 더 좋아질 거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2017년, 저는 마음이 깊이 병들어 있었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도 괜찮아질 것 같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형식으로든 변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함께 품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에서 시작된 그림이 〈이프온니〉였습니다.
이후 저는 시간의 흐름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변화의 리듬을 기록하고, 그 흐름을 관찰하는 일은
저에게 ‘삶’이라는 울고 웃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프온니〉는 해마다 그해의 첫 그림으로 리메이크해 그리고 있습니다.
저의 ‘만약’은 처음에는 과거에 머물렀고, 이후에는 불안 속에 움츠러들었으며,
다시 한 번 희망을 품었던 시간을 지나 지금은 만약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많이 슬퍼졌을 ‘지금의 내가 품을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다음 해의 ‘만약’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의 리듬을 돌아보니 이제는 어떤 일이 오더라도 마음을 활짝 펴고 삶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