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이 모든 것은 시간이 아닌 내가 해결한 것임을

그땐 모두들 내게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웃으면서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울면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아플 것이고, 여전히 과오로 인한 후회로 괴로울 것이라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 말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나는 지금 그때처럼 아프지 않고, 아주 가끔 그때의 과오로 인한 후회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와 이별 후 지난 7년의 시간 중 적어도 3년은 죽을 듯이 아파했고 2년은 씁쓸한 마음으로 아주 조금 그리워했으며 나머지 2년은 존재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렸더랬다.

얼마 전 우연히 그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의 행복한 연애 사진을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그의 연애 사진을 보면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진 듯 쿵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친구들의 말대로 나는 그의 사진을 보며 웃고 있다. 그가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웃음이 났다.

정말 시간이 해결해 준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뎌지고 무뎌져서 나는 괜찮아진 것일까. 아니다. 나의 실연을 해결한 건 시간이 아니라 나다. 매일 밤낮을 울며 그리워하고 아파한 것도 시간이 아니라 나다. 나의 모질었던 과오들을 떠올려가며 자책을 반복하고 닿지도 않을 곳에 잘못을 빌었던 것도 나다. 결국, 마음껏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그렇게 하다 하다 잊혀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단순히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 시간 속에 목 놓아 울던 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와 그의 사진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 청춘 중 가장 별로였던 그때의 내 모습을 그가 기억하지 못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쁜 기억만 간직해 줘,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추잡했던 그 시절에 예쁜 기억은 없을지도 모르니 그냥 나와의 기억을 전부 지워주기를 바랄 뿐이다.

처음 겪어보는 이별의 아픔이었다. 더 이상 그 사람보다 좋은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던 나도 그 사람보다 훨씬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인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인연 역시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는 내가 찾고, 내가 만들어낸 나의 인연이며 사진 속 그는 내가 잃어버리고 내가 끝끝내 만들어내지 못한 과거의 연인이다.

나는 그를 인연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기 때문에. 그도 그러길 바란다. 부디 좋은 사람과 오래오래 행복하길. 이런 날이 정말로 올 줄이야. 신기한 마음에 기록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