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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설 Mar 05. 2024

양말 한 짝

차라리 정말로 잃어버렸더라면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널다 보니 양말 한 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면 합이 안 맞는데. 세탁기 안을 다시 뒤져봐도, 빨래 바구니를 뒤져봐도, 심지어 빨래건조대 아래를 다 헤쳐봐도 없다. 


양말 하나쯤 없어지면 어떻나 싶어 그냥 고개를 들어보니 집이 너저분하다. 3년 넘게 살고 있는 6평짜리 원룸. 책상 위엔 읽던 책들과 어디서 와 또 언제 다시 열어볼지 모를 종이들이 쌓였고, 또 바닥 한 구석에는 고작 술병과 맥주캔 따위만 줄 지어 있다. 


이 좁은 집에도 동거하는 비위 좋은 생명체가 있으니, 1년 반 넘게 같이 사는 수채화 고무나무 한 그루가 그것이다. 엄밀히 말해 내가 키운 적은 없었다. 그저 최소한의 물과 채광만 챙겨 주고 있다. 마치 교도소의 죄수 마냥 식물을 대하는 셈이다. 사실 2층 건물에다 동향 창문의 자취방에서 이 친구가 자라 봐야 얼마나 잘 자랄까. 집에 데려올 때만 해도 이파리가 11개였는데 어느새 3개가 떨어져 8개만 남았다. 자란다기보다는 죽어가고 있는 녀석이다. 강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 집이다. 생각해 보니 요즘은 최소한의 물을 주는 거 조차도 잊어버렸다. 이 친구... 강하다! 


이런 기본적인 가사일도 통 손에 잡히지 않는 요즘이다. 사라진 양말 따위 못 찾아도 그만이다. 책상 정리, 병이랑 캔 정리는 묵혀둔 지 오래고, 옷장 정리도 귀찮다. 광적으로 줍던 바닥의 머리카락들도 이제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냥 벽을 향해 옆으로 누워 해가 지길 기다리는 게 일상의 대부분이다.


답답하다. 


그리고 공허하다.

양말이 사라져서인지. 아님 정말로 나한테서 무언가 사라졌는지. 

둘 다 일까. 


이대로 또 하루를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이 좁아터지고 생기 없는 집 안에서는 시체처럼 누워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세워졌다. 그러니 일단은 무덤 같은 이 방에서 도망쳐 나가자는 생각이 불쑥 찾아왔다. 

저 문 밖을 나가면 정말 할 일이 하나도 없겠어? 


배낭에 맥북을 넣고(이거로 뭐 할지는 생각 안 했다), 그리고 공책과 펜을 쑤셔 담고(이것들로 뭐를 쓸지는 생각 안 했다), 읽던 책도 집어넣었다. 머리를 뒤로 바짝 동여매 묶고, 대충 손에 잡히는 셔츠재킷을 입고, 양말은 다른 거로 짝 맞춰서 신고, 그 위에 검은색 라코스테를 대충 신고. 와중에 향수는 이솝으로 공들여 뿌렸다. 


그렇게 문 밖을 나가면 정말로 할 일이 없다. 

시발.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세 가지. 


1. 카페를 가 책을 읽는다. 

2. 걷는다. 

3. 집으로 돌아간다.


결국 제일 생산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선택지인 1을 선택한다. 마침 커피도 안 마셨으니. 그러나 혜화동에서 카페 고르는 일은 늘 어렵다. 결국 적당히 발걸음을 옮기는 카페는 또 스타벅스다. 맥북을 펼치고 아넬형 안경을 끼고, 백현진의 노래를 들으며. 민음사에서 나온 김언의 시집을 읽으며, 쥐꼬리만 한 커피 더블샷을 마시는 나. 미친 힙스터 그 자체 같다. 물론 당연히 겉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이다. 


약간 추워서, 햇빛이 너무 세서, 그냥 집중이 안 돼서 등등…갖은 이유를 속으로 되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어둘 필요도 없던 맥북, 집중해서 읽지도 못한 시집, 두 세입만에 사라진 더블샷 잔을 모두 정리해 스타벅스를 빠져나왔다. 이제 남은 옵션은 두 가지. 걷거나 집으로 돌아가거나. 차마 집에 가기는 애매해서 걸어본다. 그래봐야 결국 이화사거리, 창덕궁, 원남동 잠깐. 혜화동로터리를 넘어 성북천 잠깐. 이게 전부다. 멀리 걸을 거였다면 재킷이 아니라 트랙탑을, 라코스테가 아니라 올버즈를 신었어야 했는데… 결국 핑계와 핑계 끝에 2번째와 3번째 옵션이 합쳤다. 그러니까 그냥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방이 너무 좁아서 나왔는데 바깥이라고 그리 넓지는 않나 보다. 어쩌면 좁은 건 그냥 내 속인 지도. 


이게 아닌데. 너무 공허해. 

뭔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사라진 양말 한 짝처럼. 

여전히 나 너무 답답한데. 


의미 없던 짐들을 대충 바닥에 내려놓고 입었던 옷들을 정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빨래건조대 위에서 아까 못 찾은 양말 한 짝을 찾았다. 없어진 줄 알았던 그 양말. 그냥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어이가 없었던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시발. 잃어버린 적도 없는데.


양말을 건조대에 다시 잘 보이게 널어두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고무나무 화분에도 물을 주었다. 이 친구가 잃은 건 물이었을 테니, 양말이 제자리를 찾은 김에 물도 돌려준다. 


나는. 

나는 그냥 자리에 눕는다. 똑같이 벽을 향한 자세로. 

양말이 돌아왔다니. 그냥 정말로 없어졌어야 했어. 그렇지 않고서는 이 답답함과 공허감이 설명이 안되잖아. 


하릴없이 그냥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뜨면 6평 집이 아니길. 그럴 일은 없지만. 

그럼 적어도 내일은 정말로 양말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적막한 6평 방 구석에 괜히 뿌릴 필요 없던 카르스트의 향만이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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