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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노랑 Aug 07. 2021

엄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딸이었기에 할 수 있는 말

제 나이 20대 초반에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면 다들 아직은 많이 이르니까 그럴 수 있다라는 반응과 점차 크면 생각이 변할 거야라는 반응으로 보통 나뉘어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제 나이가 많이 어려보일 겁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 엄마라는 역할을 갖지 않겠다 생각한 거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습니다. 무려 12년동안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정해서 20대 초반의 나이가 된 지금도 저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한창 구몬 학습지를 하면서 투니버스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봐야 할 나이에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고민한 계기가 무엇일까요. 지금의 저는 바로 계기가 떠오르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이유를 일기장에 많이 적었습니다. 그당시 우리 집은 무척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엄마는 우울증이 생겨 약을 먹고 지내지만 매일 울었습니다. 아빠는 잦은 출장과 공장 일로 인해 가정을 돌볼 여유가 많지는 않았고 어렸던 첫째 딸인 저는 그 사이에 항상 줄달리기를 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우울증을 갖게 된 이유는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임신, 가정의 책임감, 아빠의 잦은 출장 등 많은 이유가 있었고 그것들 눌러눌러 결국 우울증이 된 거이라 생각이 듭니다. 위태로운 분위기는 우울증 약 복용이 끝난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엄마와 저 사이의 큰 다툼이 매일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집을 나가고 싶다는 말에 뺨을 맞은 후부터 저는 어딘가 집에 대한 불신이 생겼습니다. 여기는 안전하지 않았고 집에 있을 때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으며 매일을 불안에 떨어서 살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커지는 학업에 대한 문제 역시도 커지면서 시작은 학업으로 인한 사소한 말다툼이 결국엔 끝을 알 수 없는 전쟁 같은 날들의 첫 시작이 되었습니다.


늘 중상위권을 유지하는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엄마와 그이상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좌절감에 빠진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입장이 결국엔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대한 결심을 하게 해줬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다른 어른들께 엄마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면 다들 웃으며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을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커서 보면 엄마를 이해하게 될 거라며 엄마에 대한 변명과 나의 이해만 바라는 모든 어른들이 무서웠습니다. 그렇기에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힘든 적응기를 끝내고 어느정도 자리가 잡혔을 때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생각한 모든 이유들이 하나의 결론을 내고 있었습니다.

내 아이도 같은 문제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딸은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닮아갑니다. 좋든 싫든 간혹 내 행동과 말에서 엄마의 모습이 비춰질 때면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원하지 않더라도 나는 엄마의 딸이기 때문에 엄마의 흔적이 있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고 나중에 낳을 아이에게도 내가 정말 싫어하는 행동들을 똑같이 하게 될까봐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여건과 내 환경이 모두 다 갖춰져 있더라도 내가 만약 갖춰지지 않았다면 그 몇 년의 세월을 또 반복하게 되어 나뿐 아니라 모두를 힘들고 괴롭게 할테니 차라리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맞다는 결론이 아직까지도 최종적인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아이를 낳아서 보면 다를 것이라는 말과 살다 보면 외로워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닮은 아이를 갖고 싶어지게 될 거라는 말들은 이 이야기를 하면 늘 나오는 말들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싫은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든 이들을 존경하고 또 존중합니다. 내가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대한 이유를 버튼만 누르면 바로 얘기하기 위해서 생각한 것이 아닌 내 미래를 위해서지 남을 위해서가 아닌 점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에 대한 내 생각을 우유부단하게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기준점을 갖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 내가 이러한 생각들을 한 이유입니다. 딸이기에 누구보다 엄마와 가까이 있지만 먼 사이라서 겪는 일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어딘가 있을 또다른 나에게 용기를 가져주고 싶은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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