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긴 내 트라우마들
지금도 같은 교과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초등학교 때 도덕과 슬기로운 생활을 통해 살아가면서 필요한 도덕적인 부분에 대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가족은 무조건 화목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다정한 아빠와 잔조리가 있지만 나를 너무나 사랑해주시는 엄마, 많이 다투지만 누구보다 아끼는 남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가족은 화목해야 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남동생과 다투더라도 화해하는 그런 가족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부턴가 집 가는 길이 무서웠고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을 보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렵고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제게 가족은 평화와 화목의 존재가 아닌 트라우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평범하다고 생각을 했고 누구나 나와 같이 사는 줄 알았지만 저희 집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에서는 길게 얘기를 하지 못했지만 저는 엄마의 자살시도를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우울증을 가지고 있던 엄마는 어린 내가 보았을 때도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매일 울었고 매일 아빠와 다투고 자아가 생긴 저와의 다툼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약을 복용하는 엄마는 조금 큰 후에 제게 그때의 심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매일 락스를 먹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생각도 여러 번, 시도도 몇 번 해보았다는 엄마의 그날들이 무척 고됐을 겁니다. 그것과 별개로 저는 엄마가 손목을 식칼로 그어서 피가 나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되고 너무나 불안했었습니다. 마치 안 좋은 기억이니 지우려고 작정하듯이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내가 느꼈던 죄책감과 불안감들이 아직도 어제의 날처럼 생각이 납니다.
남들과 달랐기에 우울증이라는 존재를 일찍이 알게 되고 그 시기부터 저는 집을 나가고 싶어 했습니다. 집에 있으면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계속 옭아매는 느낌과 문만 봐도 숨이 턱 막히고 불안감에 잠도 자지 못해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을 보면서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초등학교 4학년을 재학 중이었고 그때 만났던 담임 선생님은 저희들에게 대학이란 존재를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막연하게 대학을 가면 이 집을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선생님께 끊임없이 대학시절의 일화를 얘기해달라고 했으며 공부라는 것도 신경 쓰기 시작했습니다. 고작 받아쓰기가 세상의 전부였던 제가 국어, 과학, 수학, 영어, 음악, 미술 모든 과목을 신경 쓰면서 공부하니 부모님께서도 제게 공부에 대한 기대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성적은 좋았던 편입니다. 게다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갈 생각이라며 주위 모두에게 얘기하였고 나에겐 그게 내 동아줄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시작된 성적의 압박은 엄마와 나 사이의 전쟁을 일으키게 된 수단이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방에 들어와 공부를 하는지 보고 성적이 중상위권에서 오르지 않는다면 늘 비교를 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스스로 서울권 대학을 갈 거라는 말이 나를 더 옭아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뱉은 말이니까 내가 해야 한다고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쪽팔림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늘 저를 다그치기 바빴습니다. 어차피 밤에 잠을 못 자게 되니 공부를 했고 성적이 올라서 상위권을 유지해도 중상위권으로 내려가기만 해도 다그침이 심해졌습니다. 그간의 다그침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 알아서 잘할 수 있고 나는 첫째기 때문에 뭐든 내가 처음이니까 나는 늘 잘 헤쳐나갔었다고 그러니 내가 공부를 하든 무엇을 하든 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발단으로 엄마에게 심한 욕설을 들었습니다. 불효녀는 기본으로 욕설 섞인 말들은 이제는 싸울 때 나오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내가 한 말 그거 하나 때문에 내게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고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기대도 안 했을 거라는 말들, 들어보니 맞는 거 같았고 그래서 더더 스스로를 자극했습니다. 하지만 성적은 오히려 내려가기 바빴습니다.
나중에는 아빠에게도 욕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를 때리는 것은 물론 문제집을 찢고 내 물건을 망가트리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휴대폰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싸우고 홧김에 집을 나가면 전화로 친구네 집에서 자게 되는 날도 많아졌기에 싸울 때 싸우더라도 휴대폰은 무조건 들고나가야 했습니다. 그걸 알아서일까요 어느 순간부터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휴대폰을 망치로 내려쳐서 망가트리고 집에 오면 휴대폰을 압수하고 비밀번호도 걸지 못하게 했습니다. 가족이란 이유로 제겐 비밀 하나도 공유해야 했습니다. 친구들과의 문자 내용도 모두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럴수록 더욱더 휴대폰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휴대폰 개수만 해도 9대가 넘습니다. 그 많은 휴대폰들이 망가질수록 저 역시도 가족이 무서워졌습니다.
외식을 하러 나가면 늘 울면서 들어와야 했습니다. 남들이 있음에도 제게 하는 다그침과 압박은 여전했고 주위 어른들은 모두 내가 아닌 부모님 편을 들었습니다. 내가 그럴만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심하게 하는 거라고, 나는 아마 동네에서 유명한 불효녀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저에 대해서 아시냐고, 우리 가족에 대해 얼마나 잘 아냐고, 나로 생활을 해보았냐고 모르면 내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는 것은 집에 가서 듣는 욕설과 매를 맞는 행위만 남게 되었고 심한 압박감에 성적은 더더 내려갔습니다. 더는 노력을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무기력해지고 초조해지기만 했습니다.
물론 욕설과 매를 맞는 행위만으로 가족에 대한 무서움이 생겼다기보다는 복합적인 모든 것이 결국엔 공포를 만들었다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의 이유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매를 맞는 행위로 얘기했지만 뺨을 맞고, 발로 걷어차이고, 가위를 들고 협박하다 내 머리카락이 잘리고 이러한 것들을 모두 그저 매를 맞는 행위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는 이렇게 멀어졌으며 남동생과도 분명하게 멀어졌습니다. 멀어진 데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내가 가족을 무서워하는 이유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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