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자 없이 실무처리하기
오늘은 요즘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깜짝 놀랄만한 일에 대해 말하려 한다. 정말 엄청난 일이다. 그 일은 우리 회사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내가 직접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실무를 보고 있다. 그게 무슨 놀랄만한 일이냐고? 5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외부 컨설팅 회사에 맡겨서 처리했다. 시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처리하기에 난이도가 있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돈 잔뜩 들여서 외주를 주는 것이 관행이었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 일을 혼자서 처리하고 있다. 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갑자기 벼락을 맞아서 신의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니고 실무에서 손 뗀 지 20년도 넘었건만 어찌 이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아주 오래전 기획자로서의 경험이 몇 차례 있었을 뿐이다. 그런 사람이 직접 기획서를 만들고 있다. 그것도 아주 탄탄한 기획서를 말이다.
눈치 있는 사람은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핵심은 AI다. AI가 모든 일을 다 처리해주고 있다. ‘지금부터 내가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려 한다. 네가 나를 도와서 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만일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방향을 제시해 달라.‘ 이것이 내가 젠스파크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마치 담당 직원에게 업무 지시하듯 말을 걸었다.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현황분석 툴에 대해 물어보고, 답이 나오면 그대로 실행시켜서 샘플 데이터와 결과물을 만든다. 데이터를 추가하고 시각화시킨다. 그 자료를 다시 검토하고 어떻게 하면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지 묻는다. 답변을 듣고 다시 실행시킨다. 이 흐름은 어색한 것 같으니 다시 순서를 잡아달라고 한다. 이 데이터를 보완하고 싶을때 딥리서치 기능을 돌려 5분 만에 논문검토를 끝낸다. 근거를 확보했으니 보조자료를 시각화해서 덧붙인다. 파워포인트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길래 맥캔지 스타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결론을 강조하는 깔끔한 디자인의 맥킨지 스타일의 슬라이드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주룩주룩 만들어졌다. 젠스파크는 엑셀자료도 분석했다. 그리고 그 자료를 그래프로 만들어주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추가했으면 좋을 일 세 가지 리스트를 나에게 되물었다. 이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결과물의 수준은 말 그대로 엑설런트 하다. 지시하면 즉시 처리하고, 그 자리에서 분석하고, 보기 좋게 시각화해 주고, 자료와 어울리는 색상까지 고려해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자기가 생각할 때 부족한 부분은 이렇게 하면 어떻냐고 인사이트까지 제시하는데 그 논리에는 빈틈이 없고 쓸만해 보인다. 이 녀석이 말하길 자신이 시킨 일을 하고 있을 테니 다른 궁금한 거 있다면 기다리지 말고 언제든 물어봐도 된다고 한다. 이러니 내 마음에 쏙 들 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시간 됐다고 밥 먹으러 가겠다는 말도 안하도, 바빠서 그러는데 내일 까지 보고해도 되냐고 시간조정을 하려 들지 않는다. 얼굴 찡그리고 인상 쓰며 뒤돌아 서지도 않는다. 성과급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이건 제 업무가 아닌데요, 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월 3만 원이면 열심히 일하겠다는데. 만일 이런 직원이 있다면 무조건 특진 1순위 아닌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담당자가 고민고민한 기획안을 들고 오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나하나 가르치며 일을 진행해야 했다. 그래야 그 직원의 능력도 향상된다고 믿었다. 언젠가는 그도 그의 후배를 가르쳐야하는 입장이 될테니까. 그러나 이제는 직원에게 묻지도 않고 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는 기초 데이터만 필요할 뿐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이제 업무 처리에 관한 한 인간의 기술적 능력은 AI의 도움없이 처리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더 이상 기획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조차 구차하다. 다른 사람들과 의견 조율하느라 실랑이할 일도 없다. 당장 신입사원을 뽑아야 될 필요성도 사라졌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1년 남짓사이에 벌어졌다.
알아서 내일을 대신해주는 AI 에이전트도 곧 사용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안되고 AI 에이전트만 가입할 수 있는 플랫폼도 나왔다는 기가 막힌 뉴스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내 눈앞에 벌어진 일 하나만 해도 충분히 놀랍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