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언니 2

어제의 첫째가 오늘의 첫째에게

by 이정

그 날, TV속에는 나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엄마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어찌할 바 모르는 새끼라마같은 그 엄마에게 육아전문가는

입가의 미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과 단호한 말투로 물었다.

"저 아이의 마음은 부당한 것입니까?"


그 엄마에게는 나의 예전과 같이 어린 두 딸이 있었다.

하루종일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그녀의 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큰 아이는 과도하게 예민했고, 작은 아이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기였다.

동생이 언니의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저지레를 해 놓을 때마다

악을 쓰며 울어대는 큰 아이와 아랑곳 하지 않고 난리를 이어가는 작은 아이 사이에서

그 어린 엄마는 고군분투 하며 넋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둘 사이를 오가며 달래도 보고, 수습을 해보다가 결국 울어대는 첫째에게

"동생이 좀 그럴 수도 있지, 언니가 되서 그것도 이해를 못하고 우니!"

라고 짜증을 내었던 어린 엄마. 그것이 문제였다.


"저 아이의 마음은 부당한 것입니까?"

부당하다고 생각하냐니...

그 상황에 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도움을 청할 곳이라고는 겨우 말귀를 알아듣는 첫째밖에 없어서

너라도 좀 이해하고 도와달라며 눈물을 삼켰을 뿐인데

그 엄마의 처지는 결국, 부당한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누가 뭐라지 않아도 밤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자책하고 미안해하며 마음을 졸였을 그 엄마는

고개를 쳐 든 육아전문가와, "맞아맞아." 열심히 동의를 하는 패널들 사이에서

어린 아이보다도 부당한 엄마가 되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왜 아무도 그 엄마의 헝클어진 머리와 푸석한 얼굴을 어루만지지 않는걸까.

나는 그녀의 모습이 예전의 나와 자꾸 겹쳐져서 왠지 모를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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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나의 방에는 큰 책장이 있었다. 가족 중에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이가 나였으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의 책 뿐 아니라 누렇게 변색된 아빠의 오랜 책부터 알록달록한 동생의 동화책들까지 죄다 꽂혀있는 것은 나에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한참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이에 가족들은 책을 고른다며 불쑥불쑥 들어왔고, 그 중에서도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동생이 책 핑계를 대며 들어와서 귀찮게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동생이 나갈 때에는 어김없이 책장 주변은 엉망진창 어질러져 있었다.


책을 고르러 들어갔던 아빠의 불효령이 내 방에서 들려오던 그 날, 나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도대체 방 꼴이 이게 뭐냐!"

내가 정리정돈을 잘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화를 낼 만큼 엉망일리 없었다. 서둘러 들어가본 방은 온갖 책으로 어지럽혀 있었고, 그것은 명백히 동생의 짓이었다.

"내가 그런거 아니거든???!!!!"


나는 그 날, 아빠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그간 동생에게 쌓인 짜증에 억울한 마음이 더해지며 아빠의 호통에 나는 한 마디도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가 되어본 나는 이제 안다. 그 날 아빠가 혼을 낸 가장 큰 이유는 책장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눈을 치켜뜨고 대드는 나의 태도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러나 잘잘못을 따지겠다며 달겨드는 나에게 "언니가 되어가지고 동생이 어지른 것을 좀 치워줄 수도 있지!" 라던 아빠의 호통은 아주 오랜시간동안 나에게 억울함으로 자리 잡았다. 어릴 적부터 "언니가 되어가지고." 라며 핀잔을 듣던 앙금들은 그 억울함의 훌륭한 비료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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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이 없는 집의 장녀로, 게다가 아픈 동생과 자매였던 나에게 얹어졌던

장남노릇, 기둥역할은 내 인생의 크고 작은 결정 앞에서 피해갈 수 없는 잣대가 되었지만,

그보다 나를 수시로 서럽게 했던 것은 "언니가 되어가지고." 라는 어른들의 꾸짖음이었다.

왜 언니는 동생의 잘못까지 대신 혼나야 하는지, 왜 동생은 불쌍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지,

한 번도 원했던 적 없는 언니라는 노릇은 나에게 굴레 같았다.

"언니가 되어가지고." 라는 어른들의 논리는 어떤 상황도 이겨내는 무적의 단어였으므로

나에게 언니란, 항변조차 불가능한 억울함이었고, 이해조차 받지 못하는 서러움이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영이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했던 것은 장녀로서의 책임감만이 아니라, 바로

"언니가 되어가지고." 였다.

하지만 하루종일 아이 둘과 씨름을 하다 보면, 나의 노력은 어느새 물거품이 되곤 했다.

한 두번은 영이를 어루만져 주고, 달래주는데 힘을 쏟다가도

하루에도 열두번 반복되는 난감한 상황 속에 지쳐버리면

"영아. 영이가 언니니까 이해 해주자." 며 네살짜리 아이의 속상한 마음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하는 나도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그토록 하고 싶지 않던 말을 영이에게 하는 것에 무력함을 느꼈고,

아무의 도움도 기댈 수 없는 상황에 내가 의지할 것이라고는 네 살짜리 어린 아이라는 처지가 슬펐고,

혹여라도 나의 이 말이 아이에게 오래 남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영이는 조금씩 동생의 존재를 배워가며

나의 사정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앞으로 그러지마-" 하고는 동생을 다시 끌어 안아주기도 했고,

내가 일부러 신이를 보며 "이 놈!" 하며 눈을 크게 뜨면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 그러지 마요. 아기여서 몰라서 그러는거에요." 하며 달려와

동생 역성을 들어주기도 했다.

영이는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크면서 제법 속 깊은 생각을 하고 주변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양보하기도 하고, 어려운 친구에게 든든한 의지가 되어줄 때마다,

나는 그제서야

그 시절, 영이를 재워놓고 하염없이 요동치던 마음이 잠재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억울했던 어린 마음도 위로가 되어갔다.

철이 없었던 시절에는 동생 편만 드는 부모님에게 서러워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이 든 밤들이 많았다.

나는 어딘가에서 주워온 것이 분명하다며 나의 슬픈 운명을 상상하다 잠드는 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나에게 있는 장점들은 많은 부분, 그 시간들을 통해 만들어진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회사생활을 하며 꽤나 인정받았던 리더쉽이나,

엄마가 되어서 더더욱 실감하는 꽤 단단한 책임감 등은

내가 그리 싫어하던 '언니가 되어가지고.' 라는 핀잔과 함께 성장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많이 지나며, 첫째의 자리여서 누릴 수 있었던

부모님의 지지와 정성, 그리고 한없던 믿음들을 새삼 감사히 여기는 여유까지 자리 잡았다.


둘째가 자라고 더이상 아기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무조건적인 배려가 멈추자,

나는 겪어본 적 없으나, 둘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둘째만의 고충이 있음을 느끼며

나는 더욱 더 그 시기에 나를 괴롭혔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모든 위치에는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고,

그 위치를 받아들이는 동안 아픔도 설움도 있겠으나

결국에는 어떤 방향으로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단단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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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첫째에 대한 나름의 원칙들을 조금씩 다듬어갔다.

첫째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강요하지 않는 것.

그러나 더 큰 사람으로서의 그릇은 키워주는 것.

다만, 그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첫째이기에 감당하고 있는 노력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

나는 달리 자라왔으니, 이것이 옳은 길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나의 어린시절과, 그 후의 경험들을 하나하나 들춰가며

영이에게 이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임을 믿고 지켜가던 중에 그 어린 엄마를 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어린 엄마에게, 어쩌면 예전의 나에게

원론적인 잘잘못만 들이대는 전문가와 패널들에게 무척 화가 났다.

그 엄마와 같았던 시절, 나의 고군분투를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에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애써 세운 원칙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화가 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만, 나는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애씀을 나는 알고 있노라고.

당신의 사랑이 진심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서럽게 울던 첫째도

그것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고 도약하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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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K장녀의 삶을 첫째에게 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아이가 훌쩍 자라고 나니, 나의 긴장도 느슨해졌는지

아니면 이제 꽤나 큰 아이가 되었으니, 이 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이 드는건지

종종 첫째의 시기에 내가 들었던 말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황급히 수습하거나 목구멍으로 삼겨넣는 일들을 겪곤 한다.

첫째답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거나,

엄마가 없으면 네가 동생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나중에는 이 집안에 네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등의 생각은

속으로라도 하지 않기 위해

그런 마음이 고개를 들 때마다 얼른 다시 예전의 기억과 함께 묻어버리곤 한다.


내가 살았던 곳, 내가 받아온 세상.

그 곳에서 나빴던 것은 제하고, 좋은 것만 골라서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나름 위안해본다.

지금의 세상은 나에게도 처음 살아보는 곳이라

때로는 휘청휘청하고, 때로는 갈팡질팡 하더라도

지금껏 해왔듯 앞으로도

고치고 다듬고 일궈가며

예전의 첫째가 지금의 첫째에게 전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며 지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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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던 얼마 전,

나의 첫째와 둘째는 사소한 일로 틀어져 며칠을 냉랭히 보냈다.

둘째의 장난이 첫째에게는 기분 나빴을 것이고

악의는 없었기에 첫째의 날선 반응에 둘째는 민망하고 서운했을 것이다.

둘째를 불러 유쾌하지 않은 장난과, 언니에게 끝까지 달려든 행동에 대해서 따끔하게 혼을 낸 후,

첫째를 불러 사과를 하는 동생에게 여전히 냉랭한 태도에 대해 지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예전보다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말했다.

"너보다 어리고 미숙한 사람에게 너와 같은 수준을 바라는 건 정당한게 아니야.

그게 더 큰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할 너그러움이야."


영이는 입술을 삐죽대며 마뜩찮은 표정이었으나

영이도 어른이 되면 알게 될 테다.

엄마가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은

장녀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의무라기 보다는

그저, 더 큰 사람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통해

더 많이 깊어지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음을

나처럼 영이도 깨닫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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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내가 그렇듯, 그 어린 엄마가 조금 편안해졌기를 바라본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와서, 지금의 세상에 적응하느라 힘든 것도 모자라

어떻게든 더 좋은 엄마가 되어보려고 애를 썼던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일일히 숨막히는 잣대를 들이대며

혼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모든 관계가 그렇듯, 엄마와 장녀 사이에도

애틋한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응원해주고 싶다.

그 엄마에게도,

그리고 예전의 나에게도,

또한 지금의 나에게도.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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