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림자가 너무 길어요 2.

그녀의 이름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지우기로 했다

by 이정

돌이켜보면, 신이의 변화는 3학년 2학기 무렵부터였다.

담임 선생님을 무서워하면서도, 늘 그렇듯 밝았던 아이라

학교 갈 시간이 되면 배가 아프다는 날들이 종종 있었으나, 학교를 다녀오면 종알종알 활발했다.

그래서 나는 신이의 변화를 세심하게 살피지를 못했다.

친구들과 학원도 즐겁게 다니고, 숙제도 알아서 척척 하던 신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숙제하는 시간은 전쟁이 되어버렸다.

숙제 채점을 하다가 틀린 문제가 나오기라도 하면,

틀린게 아니라며, 답안지가 잘못 된거라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악다구니를 쓰며 드러눕다시피 했는데도 나는

약간의 완벽주의 성향이 있던 신이의 말도 안 되는 땡깡이라고만 여겼다.

혼날꺼리도 안되는 사소한 잘못을 지적이라도 하면,

자기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하며

끝까지 우기거나,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는데도 나는

원래 예민한 구석이 있는 아이가 성질을 내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상하리만치 시간에 예민해진 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그닥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지금 학교에 가면 지각이라며

아침마다 눈물을 쏟는 통에 전쟁을 치루는 날들이 늘어갔는데도 나는

선생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피곤해서 혹은 학교에 가기 싫어서 트집을 잡는거라고 받아들였다.

'지각 안달'은 학원에까지 이어져서

걸핏하면 늦는다며 안 가겠다고 버티는 날들이 종종 있었고,

학원은 학교처럼 꼭 가야 하는 곳이 아니기에

아이의 돌연한 변화에 못 이겨 학원을 빠지는 날들이 반복됐다.

그러다 결국

잘 다니던 학원들을 그만 두어버렸을 때에도

나는 그저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만 여기고 아이를 다그쳤다.


아이가 심상찮다고는 생각했으나,

요즘엔 3학년 때부터 사춘기가 시작된다는 출처 모를 이야기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겨울방학이 지나고 신이는 4학년이 되었다.

그래도 1년동안 큰 문제 없이 지났다고만 여겼던 나는

이제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잘 지내기를 바라고 바랐다.

내 딸을 들여다보지는 못하고

유독이나 3학년 담임에게 벌을 받는다고 들었던 몇 명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방학동안 잘 추스리고 새 학기를 시작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4학년이 되어도 신이의 이상행동은 점점 심해질 뿐, 나아지지를 않았다.

사소한 지적에도 악을 쓰며 집안을 뒤집어 놓았고

겨울방학동안 자신이 원해서 다시 다니기 시작한 영어학원은

여전히 지각을 할 것 같다는 이유로 결석하기 일쑤였던지라

또다시 그만 두어야 했다.

학교 또한 아침마다 '지각 안달'을 반복하더니

급기야 아침부터 나와 전쟁을 치루다가 학교를 결석하게 되었던 날,

나는 버티는 신이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집 근처의 상담센터를 찾았다.

신이의 하루하루가 변해가면서 수소문하여 알아두었던 곳이었다.

마음이 힘들면 센터에 가서 네 마음을 다 털어놓고 오자고 몇 번 권유해보기도 했지만,

절대 가지 않겠다는 신이의 고집에 늘상 포기했던 곳이었다.


이번엔 물러서지 않겠다는 나의 눈빛을 읽은 신이가

눈물을 훔치며 끌려간 그 곳에서

신이의 기질검사와 문장완성검사등에 대한 부모상담을 받으러 들어갔을 때에

나는 검사결과지를 보고 무너져 내렸다.

내가 왜 이 원인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연결을 짓지 못했을까.

신이의 문장완성검사지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녀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가장 무서웠던 기억은? XXX선생님이 소리지른 것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은? XXX선생님과 수업한 것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XXX 선생님과 마주치는 것

-앞으로 나는? XXX 선생님같은 어른은 되지 않을 것이다


신이의 아랫학년 담임이 된 그녀.

같은 층이기에 오다가다 신이와 자주 마주쳤던 그녀.

신이는 하교를 하고 돌아오면,

"오늘도 XXX선생님을 만났는데 자꾸 말을 걸어." 라며 불만을 늘어놓는 날들이 많았고,

나는 때마다

"그래도 선생님인데, 공손하게 인사해. 그래도 먼저 말도 걸어주시고 감사하네!"

라고 대꾸하는 엄마였다.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신이 마음 속에 지옥이 열린다는 것을

무심한 엄마는 몰랐다.

선생님도 사람인데 완벽할 수는 없는거라며, 그런 선생님 또한 존경해야 한다고

고지식한 엄마는 남보다도 못했다.

나 또한 별별 선생님을 다 겪고도 별 탈 없었던 것처럼 내 아이도 그러리라며

안일한 엄마는 그리 1년 내내 아이를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이름 뒤에

'선생님' 이라고 꼭꼭 눌러 쓴 신이의 글씨에

나는 내 자신을 원망했고, 그녀를 증오했다.

신이는 도대체 어떤 1년을 보냈던걸까.

내가 신이에게 들은 바로는

그래도 신이는 안전지대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어린 신이가 두서없이 불만을 쏟아내어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앞뒤를 이어붙이며 꽤나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고 여겼었는데.

신이의 불안도가 너무 높은 수치라는 상담선생님의 이야기에

그제서야 신이의 영문모를 변화가 이해되었다.

땡깡도, 트집도, 성질도 아닌,

그저 신이는 일상의 수많은 상황들을 다루어내기 힘들만큼 불안했던 것이었다.

그녀 때문에.

선생님이란 이유만으로

자꾸 그녀의 편에 서서 변호해주었던 나 때문에

신이의 마음은 1년 넘게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


신이는 아기 때부터 감각이 예민한 아이었다.

후각, 촉각, 시각, 뭐든지 예민했지만 그 중에서도 청각의 예민함에 나는 혀를 차곤 했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깜짝 깜짝 놀라던 아기 때를 지나자,

아파트 벽 안에서 나는 배관 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나에겐 들리지도 않는 바깥 소리에 안달을 내기도 했다.

청각이 예민하니 미세한 말투 변화에도 반응하는 아이어서

내가 조금 피곤한 말투거나,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면

바로 내 눈치를 살피며 "엄마 힘들어?" 혹은 "엄마 뭐 화난거 있어?" 라고 하는 바람에

네 앞에서는 한숨도 못 쉬겠다며 나는 툴툴대곤 했다.


신이는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히스테릭한 고함소리에 하루하루 얼어붙어 있었을 것이다.

가정통신문을 받아오지 않았다고,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책을 펴놓지 않았다고,

시험을 못 봤다고, 화장실 갔다 늦었다고, 준비물을 안 챙겨왔다고,

그녀가 반 전체를 날카로운 고함소리로 가득 채울만한 이유는 넘치고도 넘쳤다.

자신의 알 수 없었던 변화가 그녀로 인한 불안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신이를 통해,

그리고 나중에 만나 다른 엄마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그녀의 정서적 학대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글씨를 못 쓴다고 어떤 아이는 오전내내 바닥에 엎드려 수업을 받고 필기를 해야 했다.

1교시는 아이들에게 늘상, 준비물, 숙제, 태도, 지각 등등의 이유로 혼이 나는 시간이었고,

많을 때에는 반 이상의 아이들이 한시간을 꽉 채워 선 채로 내내 고함을 들어야 했다.

엄마가 잘못 써서 보낸 신청서들을 아이들에게 집어던지며 '그 엄마에 그 새끼' 라며 악을 쓰기도 했고,

장난꾸러기 남자아이가 반장선거에 출마하자, '네깟게!' 라며 이마를 연거푸 쥐어박기도 했다.

곱셈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싹수가 노란 아이들이 되어 교실 뒤에 서 있어야 했고,

점심시간에는 안전사고를 이유로 운동장에도 나가지 못한 채, 내내 교실청소를 해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청소를 미흡하게 한 아이는 5교시 내내 그녀의 고함을 들어야 했다.


뒤늦게 알게 된 신이의 경우는

지각이었다.

자꾸 배가 아프다며 학교에 가는 것을 이리저리 미루던 신이는

나와의 실갱이가 길어지며 정말 아슬아슬하게 학교에 도착했던 날이 있었다.

신이가 집을 나서자마자, 선생님에게 문자를 넣었음에도

1학기 말 생활기록부에 '무단지각' 으로 표시를 해 놓은 것에 내심 속상하긴 했지만,

선생님 기준에 지각리면 지각이니,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갔던 그 날.

늦지는 않았고, 수업 시작 직전에 들어갔는데

원래 10분 전에 와서 수업준비를 해야 하는 거라며 선생님이 엄청 혼냈다는 말에

"선생님 말씀이 틀리진 않지. 원래 8시 50분까지 가야 하는거야." 라며

늘 그렇듯 신이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고, 선생님 역성을 들었던 그 날이었다.

다른 여러 아이들과 자리에 서서

1교시 내내 그녀의 히스테리를 받아낸 신이는

그 날부터 '지각 안달' 이 심해지고 결국

아침마다 전쟁은 시작되고, 학원은 모두 그만두었으며, 결국

4학년이 되어서도 학교까지 빠지게 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안그래도 청각이 예민한 아이라

그 1년이 아이에겐 버거웠을 것이라 상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지각하는 것 뿐 아니라,

틀리는 것, 잘 못하는 것, 실수하는 것에도

불안도가 너무나 치솟아 있다고 하셨다.

그나마 다행히, 그녀에게 드러나게 혼난 일은 지각이었지만

매일 아침마다 여기저기 일어나 혼나고 있는 아이들 틈에 앉아 있어야 했던 신이는

학교를 가는 것이 공포이고, 내일이 오는 것이 불안이었을 것이라 하셨다.

아이가 상담에 적극적이지는 않으나,

어쩌면 꽤 오랜시간 어루만지고 다독여줘야 하는 트라우마일 것이라고도 덧붙이셨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신이는

"다 XXX 선생님 때문이었어!!" 하며 화를 내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래! XXX 진짜 나빴어! 진짜 나쁜 어른이야!!" 라며

슬쩍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생략하며 함께 화를 내주었다.

신이는 눈치채었을지 모르겠으나,

그토록 괴로운 상황에도 꼬박꼬박

그녀의 이름 뒤에 선생님을 붙여가며 쓰고 말하는 신이의 마음에

더더욱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날들을 무너뜨리는 여자인데

선생님은 그림자조차 밟으면 안된다고 엄마가 가르치니,

신이는 괴로우면서도 죄책감을 느꼈을테다.

화가 나면서도 자책했을테다.

나쁜건 그녀였고, 어리석은건 나였다.

나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빙그레 웃는 신이를 보며

내가 배워온 세상과, 그렇지 않은 지금의 간극을

지혜롭게 건너가지 못한 나 자신을 질책했다.

그 때는 당연했을 수 있으나, 지금은 당연하지 않은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집스레 지켜왔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러나,

여전히 앞으로도 나는

그 간극을 유연히 건너지 못하고

위태롭게 한 발씩 걸쳐두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아이에게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신이에게 꼬치꼬치 묻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나의 그 태도는 또다시

문제의 변두리만 맴돌다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또한, 그 와중에도 나는

신이가 모든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을 품게 될 것을 걱정하고,

좋은 선생님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게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1,2학년 생활을 제대로 못했던 신이에게는

어쩌면 그녀가 1년을 꼬박 함께 한 첫 담임선생님이었는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선생님,' 이라는 공식을 아이가 거부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들고 일었기 때문이었다.


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결연히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막막함과 갑갑함이 교차되었다.


-


신이는 두어번의 상담에도

속시원히 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상담을 하러 가서 '그녀를 털어놓는 것' 이 괴롭다고 했다.

내가 왜 그런 선생님 때문에 상담까지 다녀야 하는지 화가 난다고 했다.

신이의 소극적인 상담태도에

이렇다 할 효과는 커녕,

상담을 가느라, 다녀와서, 신이의 기분이 되려 나빠지던 몇 주가 지났다.

그리고,

더 이상 아이를 힘들게 하는 대신

나 혼자 가서 아이의 상태에 대한 상담을 이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생각치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오며가며 인사만 하던 아이 친구 엄마가

"소식 들었어요?" 하며 전화가 왔던

4학년이 시작되고 두달도 채 되지 않은 아침이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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