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잘못은 그녀. 두번째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영이가 5학년 마지막날, 사색이 되어 나에게 말했다.
"엄마! 영어선생님이 6학년 담임 맡을 수도 있대! 우리반 담임 되면 학교 안 다닐거야!!"
교과전담선생님이었던 분. 그 분의 악명은 영이뿐 아니라 사방에서 들려왔었다.
다만, 엄마들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정보는
아이들의 두서없는 내용들이라 우왕좌왕이었고,
영이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봐도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아
이것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선생님을 그닥 크게 가리지 않았던 영이가 이토록 질색을 하는 것을 보니
분명 문제가 있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일주일 몇 시간만 견디면 되는 교과전담 선생님이었기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애써 침착하게 대응하며
"아닐수도 있어. 그리고 혹시 그리 된다 하더라도 너는 잘 견뎌낼거야.
너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생각해봐. 그 분도 잘 지나갔었잖아."
영이의 3학년 담임선생님 또한, 악명이 높았다.
그 때에는 아이들이 더 어렸기에 더군다나 내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던 날들이었다.
엄마들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그래도 와중에 영이는 제법 예뻐하신다고도 했고
영이의 이야기로도 그러한듯 했다. 그래서 맡기는 역할이 많았고
아이는 그것이 힘들었다. 자칫 실수를 하면 또다시 히스테리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영이나 주변의 이야기에 따르면,
과연 그 아이의 엄마는 이걸 알고는 있을까 싶을만큼의 독한 대우를 받는 아이들도 있었기에
나는 그저 조용히 지나갔다.
그나마 그 선생님의 레이더를 피하고 있는 영이었기에
내가 나서서 문제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한 해를 살얼음판 위에서 조마조마 견뎌냈던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
내가 관여를 해야하는 영역과 정도의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내가 나서야 하는건지,
이 문제는 내가 관여를 해야 하는건지.
그리고
내가 나서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그녀의 레이더 안으로 내가 영이를 밀어넣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 선생님이 본인의 결혼반지를 빼놓은 곳이 학교 세면대였다는 것을 착각하고
누군가 책상 위 자신의 반지를 훔쳐갔다며
아이들을 쥐잡듯 잡다가, 영이에게 교실 휴지통을 맨 손으로 하나하나 뒤지라고 시켰다는 이야기에도
속으로는 한없이 부아가 났지만
같은 고민을 도돌이표 해대며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한 해가 지나 있었다.
그녀가 다음 해,
같은 학년을 맡고, 맡은지 두 달만에
엄마들의 강한 원성과 여러가지 증거로 인해 결국
학교를 나가게 되었을 때에
나는 그제서야
충분히 나서서 학교에 항의를 넣어도 되었던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아마 같은 이유로 나는
나서서 문제삼지 못했을거야.' 라고 인정하는 마음이 더 크기도 했다.
-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반반마다 편애는 넘쳐났었다.
이유는 많았다.
공부를 잘해서, 리더쉽이 있어서, 싹싹하고 야무져서. 등의 이유는 그나마 나았다.
돈이 많아서, 엄마가 자주 학교에 와서 등등.
아이 외의 문제로도 편애의 이유는 충분했다.
시절이 달랐고 문화가 달랐다고는 하나,
나의 국민학교 시절엔
담임선생님의 편애, 혹은 미움은 아주 노골적이었다.
다같이 잘못했어도 온갖 이유를 대며 예뻐하는 아이는 벌 주는 것에 예외를 둔다거나
굳이 아이들 앞에서 "목 때 좀 밀고다녀라." 며 특정 아이를 모두의 놀림꺼리로 만들기도 하는등,
학생인권 이슈가 치솟아 있는 지금의 시각으로 되돌아 봤을 때에
입이 떡 벌이지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나는 그래도 선생님들의 예쁨을 꽤 받는 아이었는데,
유독 4학년 선생님이 나를 예뻐하지 않으셨다.
과하게 드러내진 않아도, 뭔지 모르게 나를 무시하는 듯한 선생님의 태도는
처음이기에 당황스러웠고, 당연하게 서러운 일이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 선생님(여전히 이름도 또렷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부모님께 그 시기의 이야기를 했더니
아빠는 드러내놓고 욕을 하시며
"그 놈 미친놈이지. 회사로 전화해서 룸싸롱서 술 한 잔 사라고 하더라 미친놈!"
이라고 분을 내셨고
엄마는 이제 와서 뭐하러 그런 얘기를 하냐는듯 아빠 팔을 꼬집으셨다.
그제서야 나는 그 선생님의 투명인간 취급을 좀 이해가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피하는 아빠와 나를
그는 오버랩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학급의 모든 역할이나 대표는
집만 200평이라던 그 아이의 자리가 되었었구나.
중고등학교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편애는 좀 사그러드는 듯 했지만,
별별 선생님을 다 만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여학생들 입장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선생님은
학교마다 한 두명씩은 있다는 '변태 선생님' 이었다.
별 것도 아닌 것으로 때마다
팔꿈치 안쪽으로 손을 넣어 꼬집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명찰을 똑바로 달라며
막대기로 가슴을 푹푹 찌르는 등,
희한하게도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런 짓을 서슴치 않는 선생님들이 꼭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머리에 새겨졌던 말은
'선생님 그림자는 밟지도 마라.' 였다.
그것은 내가 앞 전에 쓴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존재.' 라는 말과 함께
그 나이 또래들에게는 판단기준의 양대산맥이었다.
순종해야 하나, 때로는 부모님에게 대들기도 하는 것처럼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하나, 때로는 반항하기도 욕을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그저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였다.
지금이라면 있을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들을 겪으며 자라난 나는
넘어가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기준점이 모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이라고 여겨왔던 고지식함은
나의 판단기준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더한 선생님들을 겪으며 자라왔지만,
그것으로 크게 무너진 적 없었고
지금 와서는 동창들끼리 만나서 떠드는 우스개 정도가 된 것처럼
나의 아이들도 그렇게 넘어가주길 바랐다.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
다행스럽게도 영이는 그 선생님을 피했다.
그리고 뒤이어 따라온 소식.
신이가,
하필 이제 막 3학년에 올라가는 꼬꼬마 신이의 담임 선생님이
그녀였다.
괜찮을거야. 괜찮을거야.
신이에게도 내 스스로에게도 위로하고 응원하는 겨울방학을 보내고
신이의 3학년 첫 날.
그 어느때보다 긴장한 마음으로 신이의 하교를 기다렸다.
수시로 시계를 보고, 불안한 맘에 갈피를 못 잡는 시간을 지나니
신이는 팔랑팔랑 뛰어 들어오며
"엄마! 아주 나쁘지는 않아!" 라고 외쳤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부디 앞으로의 1년도 오늘처럼
아주 나쁘지는 않아주기를.
아이를 다독이기 위해, 나 자신을 불안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작년에 그녀가 힘든 일들을 겪었을 수도 있다고.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담임선생님으로서의 그녀는 다를 수도 있다고.
그렇게 매일매일 마음을 다독였다.
덜컹 덜컹하는 아이의 이야기에도
이 정도는 넘어갈만 하다고 애써 생각했고
엄마들의 이야기를 종종 전해 들으면서도
그래도 신이는 선생님이 꽤 애정하고 있으니 안전할거라고 생각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나 또한 말도 안되는 선생님 몇몇을 겪는 과정 중에
상처도 괴로움도 있었지만,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그 또한 성장하는 힘이 되어주었다고.
영이가 3학년을 버겁게 지났지만, 그 덕에 왠만한 선생님은 다 좋다며 환하게 웃었듯이
신이도 그럴거라고 열심히 내 자신에게 되뇌어 주었다.
내가 그랬듯, 영이가 그랬듯,
어떤 선생님을 만나더라도 그 안에서 또 배우는 것이 있으리라.
언제나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는 없으니
안 좋은 운을 얼른 써버리는 것이라면 차라리 좋은 것이리라.
그리고 나처럼 어른이 되면
감사했던 선생님들의 소중함을 더 깊이 남게 해주는 1년이 되리라.
나는 여전히
내가 자라온 세상과 지금의 세상의 간극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넘겼다.
"신아. 엄마도 그런 선생님들 겪어봤는데,
선생님도 사람이라 사실 별별 분이 다 있어.
그래도 선생님이니까 늘 공손하고 반듯하게 대해야 해.
그러다 보면 1년은 훌쩍 넘어갈거야.
그리고 1년 후에는 너가 정말 많이 쑥 커져 있을걸?"
학교에서 돌아오면 잔뜩 불퉁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 이야기를 하는 아이에게
매일 이렇게 이야기하며 다독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그림자는 밟아서는 안 된다며 잔소리를 덧붙였다.
그 매일이 나에게는 힘든 날들이었지만,
신이에게는 지옥이었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나의 무지함과 안일함과
내가 자라온 곳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던 고지식함으로 인해
신이의 지옥은 나에게도 찾아왔다.
나는 왜
내가 아는 세상에만 갇혀서
신이의 말에, 들려오는 이야기들에
더 귀를 기울이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