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의 역사 2

20년만에 진짜 국뽕을 찾았다

by 이정

짧은 일정으로 다녀와야 했던 유럽은

아쉽지만 프랑스와 영국만 가야했다.

어떻게든 많이 돌아보려고 하다가는, 이도저도 아니게 이렇다할 구경조차 힘들듯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꼭 가보고 싶어했기에 프랑스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나에게 프랑스는 좋은 기억이 없었다.

친구의 호스트맘이었던 프랑스 아줌마는 유독이나 차갑고 도도했었다.

유럽 친구들은 그 아줌마에 대해 'tipical French'라며 비웃었지만,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어느 나라에서 왔던 나는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눈치가 보였다.

게다가 유럽여행으로 갔던 프랑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멋진 문화유산이나 고풍스러운 거리, 혹은 샹제리제 거리의 멋진 레스토랑 같은 것들보다

밤늦은 시간, 내 뒤를 따라오며 돈을 달라던 흑인 집시였다.

거절하는 나에게 "Fxxking Chinese!" 라며 무서운 얼굴로 시비를 걸었던 그에게

나는 무슨 용기었는지, 그간 쌓였던 짜증이 터뜨리듯

"No!! I'm a Korean!! I'm not Chinese!!" 라고 두 주먹 불끈 쥐고 고함을 지른 후,

걸음아 나 살려라 숙소까지 죽어라고 도망왔던 기억은 가끔 꿈에 나올만큼 무서웠고, 그보다 분했다.


프랑스에서의 첫 일정, 루브르박물관에서부터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디오도슨트 기계에는 중국어,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가 기세등등 자리잡고 있었다.

그 퀄리티도 제법 좋아서, 20여년 전 루브르에 와서 모나리자와 길 잃은 기억만 가득한 채 돌아온 나에게

신세계였다. 아이들도 귀에 이어폰을 하나씩 꽂고 열심히 작품들을 구경하는 모습에

달라진 나라의 위상이 이렇게 경험의 폭을 넓혀주는구나, 감탄을 하였다.

그로부터 놀라운 일들을 계속 되었다.

들어가는 레스토랑마다 한국사람이라는 말에 직원들은 반색을 하며 한국어를 한마디씩 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앞뒤 맞지 않는 한국어를 섞어가며 반겨주는 이들을 보며

수도없이 들었던 곤니찌와의 기억은 어느새 가물해지고 있었다.

에펠탑 경호직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본어로 인사를 했던 그 시절 그들처럼

우리를 보자마자 "추워 추워. 일로 와." 라며 반겨주었고,

물어물어 겨우 찾아낼 수 있었던 한국음식점들은

번화가 이곳 저곳에 수월찮게 눈에 띄었으며,

그 식당들은 하나같이 웨이팅을 불사해야 하는 인기식당이었다.

마트마다 한국라면부터 간장 고추장 김치까지, 없는 것 없이 한국음식들은 가득했고

심지어 크루아상의 나라 프랑스에서 만났던 가장 크고 문전성시었던 빵집은

어이없게도 파리바게뜨였다.


두번째 여행지였던 영국은 더더욱 그랬다.

숙소의 TV를 켜자 넷플릭스에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오징어게임의 광풍은 익히 들었지만, K-drama 섹션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고

나도 보지 않은 드라마까지 아시안 인기 순위를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영박물관에 자리잡은 한국관에서부터, 거리 곳곳엔 한국컨텐츠 포스터가 붙어있기도 했다.

숙소 앞에서 만난 영국청년 둘은

내년에 한국여행 계획이 있다며 나에게 서울의 명소와 가볼만한 도시들을 핸드폰에 저장해가기도 했고,

제일 놀라웠던 것은 종종 보였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

Korean BBQ wrap이 정중앙 메뉴로 소개되고 있고, Korean mayo sauce도 사이드메뉴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 또한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지막 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한국마트에 들렀을 때,

달라진 유럽분위기에 놀라는 내게 나이 지긋한 사장님은 말했다.

"정말 달라. 우리도 한결 살기가 수월해요. 우릴 대하는게 아주 달라.

나라도 나라인데, 블랙핑크한테 진짜 고마워.

얼마전에 블랙핑크가 왔다고 온나라가 들썩들썩 했잖아.

이런 날을 상상이나 했겠어."


친절한 이들은 나에게 곤니찌와라며 말을 걸고,

심술맞은 이들은 yellow monkey라며 시비를 걸었던 대륙.

아시아 어느 구석에 있던 낯설고 작은 나라의 국민이기에

그들의 조롱과 심지어 안쓰러운 시선에도

화끈거리는 얼굴을 견뎌내며 고개를 빳빳이 들었던 서글픈 자존심은

나의 아이들에게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믿어주지 않은 사람들에게 현다이나 쌈쏭이 한국 브랜드라는 것을

억울해하며 설득해야 하는 노력도,

대한민국이 역사다큐에서 나오듯 페허 속에서 연명을 하고 있는

전쟁직후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고 증명해야 하는 일도,

나의 아이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돌아오는 공항 안,

나는 견딜 수 없는 우리나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쿠팡에서 음식재료들을 주문하였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고추장찌개.

돌아가면 바글바글 끓여 나는 뼛 속 깊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만끽하고 싶었다.

고마운 나라. 기특한 모두.

우리의 아이들이

바득바득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국뽕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환영받으며 못난 자존심을 부리지 않아도 되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하는 경험이 아닌

관심과 호기심으로 반가워해주는 유럽사람들이

나의 아이들에게 첫 기억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넘어, 유럽 모두에게까지 참 고마운 마음이었다.


나의 시절보다 한없이 가까워진 세상.

나의 아이들, 우리의 아이들은

내가 살았던 그 곳의 대한민국 국민들보다

어깨를 조금 더 펴고,

여유로운 미소를 조금 더 띠며,

그네들과 어우러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나에게 또다른 국뽕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번의 국뽕은

이 악물고 고개를 쳐들었던 마음이 아닌

구겨짐 없이 해사한 자부심이었다.


쿠팡으로 이것저것 식재료들을 주문하며

그리웠던 한국음식, 한국공기, 한국땅을 떠올리는 기분은

20여년전, 사무치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 동안,

한국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모두가 나에게 알려줄 때에

미약한 경험에 의지하며 가자미눈으로 받아들였던 나의 어리석음에

우리나라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고맙다 대한민국.

진심으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우리 아이들을 더 크게 살아가게 할 나의 나라.


ps.

높아진 나라의 위상에 비례하여

더 이상 프랑스와 영국의 물가가 살인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 슬픈 일일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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