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의 진실(1)

최면의 역사는 왜곡되었어

by 필립

- 근대 최면의 비조 매스머를 미화

매스머는 동물 자기 이론을 창안하고 실제로 치료 활동을 벌여서 실적을 입증했다고 소개되지. 동물 자기 이론이란 살아 있는 존재의 신체에서는 보이지 않는 자석의 힘이 순환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기력이 방해를 받는 경우에 관련 질환이 발병한다는 것이지. 환자의 몸에 자기력이 충전된 자신의 손을 대거나 흔들면 환자의 자기력이 반응하면서 건강한 순환이 회복되면서 질병이 치료된다는 거야. 비과학적인 치료법이지만 어쨌든 몇번의 성공을 거두면서 매스머는 명성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에도 치료법의 효과에 의문을 품는 회의론자도 있었을거야. 그러다가 사회적으로도 화제가 되면서 저명 인사들에 의해서 공식적인 검증을 하게 되었는데 기대하던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동물 자기의 존재는 부정되었고 그 동안의 치료 효과는 암시에 의한 것으로 현재의 플라시보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결론 지어졌지. 현대에 최면을 생계의 도구로 삼는 직업인들은 동물 자기의 실체는 암시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암시와 최면의 효과가 평가 절하되었다며 메스머를 옹호하더라구. 하지만 이 시대에도 사이비 치료를 일삼는 자들이 논란을 일으키는 사례를 고려한다면 메스머의 시대에서도 치료 효과가 의심스럽지만 사회적 현상으로 발전하는 동물 자기 치료법에 대해서도 큰 소동이 발생하기 전에 꼼꼼하게 검증할 필요는 분명했고 그 것을 실행한 것은 의미있는 발전이라고 생각해. 만약 메스머가 부당하게 사회에서 매장당했다고 분개하는 최면 애호가가 있다면 스스로 직접 메스머의 치료법으로 각종 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을 공개하고 검증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해. 공식적으로는 메스머의 치료 방식은 사이비와 다르지 않다고 공인되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단념하지 않고 부단히 최면 기법을 연구했고 일부 발전도 있음은 확실해. 하지만 신뢰할 만한 치료 효과를 증명하지 못하는 한계는 아직 극복하지 못했어.


- 프로이트가 최면 기법을 포기한 진실은 왜곡되었어

정신의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프로이트는 한때 최면을 적극적으로 치료에 활용하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최면을 버리고 자유 연상 기법을 고안해서 사용했지. 최면사들은 한 목소리로 프로이트의 최면 유도 기술이 어설퍼서 시행착오만 반복하다가 결국 최면을 포기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어.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라. 최면 치료가 진행되면서 피최면자는 최면술사에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종속되어서 궁극적으로 자기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게 되어서 오히려 치료에 역효과가 발생한다고 판단했거든. 의존성이 강한 사람이 최면의 형식으로서 의도적으로 최면술사의 지배안으로 편입되어 불안전한 안정감을 찾으려고 한 것이지. 당시 최면 치료의 실상은 의지할 사람 없는 외로운 이가 의존 가능한 대상을 찾아서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어. 내가 십여년전에 최면을 배우겠다고 사설 교육 기관에 드나들었는데 이성을 꾀는 기술을 바라면서 학습하는 사람들이 드글드글했어. 이렇게 당시 최면 자체의 바람직하지 못한 풍조를 인식하게 된 프로이트는 결국 최면을 손에서 놓고 다른 방식의 치료법에 몰두하게 된 거야. 최면술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색한 최면 기술이 아니라 타인 최면의 역효과를 경계해서 최면을 포기한 것이 진실이야.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할게. 프로이트가 내담을 신청한 여성에게 최면을 걸고 있던 도중에, 갑자기 그 여성이 일어나서 프로이트를 껴안아서 아주 당황했다는 이야기가 최면 책에 소개되어 있어. 그 책을 저술한 최면가는 프로이트의 어리숙한 최면 실력을 비웃기 위해서 일부 권위자에 의해서 최면이 저평가 되었다는 속내를 드러낸거야.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프로이트가 아니라 다른 전문가가 최면 유도를 진행했어도 동일한 여성이라면 같은 반응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그러한 돌발 상황에 처했다면 에릭슨 수준으로 도통한 치료의 달인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당황하지 않겠어? 오히려 이 사례는 최면 치료의 한계를 드러내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 최면의 효과를 과장

영국인 의사로 식민지 인도에서 형무소에 수감된 수인들의 수술을 최면 유도를 통해서 무통 수술을 집도했다는 에스데일의 사례도 빠짐 없이 최면책에 등장해. 최면에 든 상태에서는 팔다리를 절단해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기적과 같은 기능을 선전하려는 의도가 엿보여. 영문 위키에서 조사해보면 에스데일은 당시에 깊은 최면 상태를 유도하기 위해서 환자에게 장시간 암시를 주는 의식을 실시했으며 실제 성공률은 40퍼센트 정도로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기술을 발견했어. 항상 성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락해놓고는 당시의 최면 마취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도 없으니 믿기 어려운 사실일거야.


- 에릭슨의 최면 활용에 너무나도 큰 의미 부여

에릭슨은 최면사이기 전에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매우 깊은 심리학자였어. 내담자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치료의 준비 단계로 최면을 활용했었지만 치료의 주된 기법은 환자의 고민 거리에 대한 갈등을 해결해주는 조언에 있어. 최면은 그저 거들어주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며 에릭슨 개인의 지혜로운 해결책 제시가 최료의 핵심이었어. 하지만 최면술사는 최면을 치료법의 중심이라는 왜곡을 범해버렸지. 에릭슨의 대화 치료 기법은 에릭슨만 가능하며 일반 최면술사는 모방할 수는 없어. 에릭슨의 명성만 이용하고 그의 치료 기법은 쓰지 않는 현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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