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의 한계
- 효과가 제각각이다
물에 빠졌을때의 공포를 최면 상태에서의 상상 요법으로 극복했었지만, 항상 가능한 방법은 아니야. 당시는 젊고 장기 출장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다보니 자기 최면도 아주 잘되었던 시기였어. 이후에 복귀하고 회사에서 여러가지 갈등에 시달리다 보니 깊은 최면 상태에 진입해서 바람직한 상상을 시각화하는 고차원의 응용이 안되더라구. 때에 따라서 최면 요법의 효과가 달라지기에 항상 믿음직한 치료법은 절대 아니야. 한 연구에 의하면 최면으로 효과볼 확률이 불과 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적은 성공률도 한시적인 효과까지 계산한 결과라고 하더라구. 힘들때 기대기에는 턱 없이 모자란 치료법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 만약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최면 감수성이 뛰어나서 다소 신비해 보이는 현상을 일으킬 수 있고 이러한 사실을 주변의 최면가가 알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독자를 데리고 자신의 최면 실력을 선전하면서 악용할 궁리를 할거야. 사람이 귀신보다 악독하고 무서워.
- 자칭 최면 전문가의 자질이 부족해
십년전에 심각한 스트레스에 기인한 피부병을 고치려고 수도권에 있는 여러 최면 전문가와 상의했었는데 별 효과를 보지 못했어. 한명의 최면사는 점치는 역술가와 같이 한 팀으로 활동하는데 그저 최면 유도문을 읽어주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아마추어에 불과했어. 유도된 최면의 깊이도 평소에 혼자 자기 최면 수준에 못미치는 것 같았지. 한시간에 삼십 만원을 현찰로 요금을 수차례 지불했는데도 별 효과도 없는데 계속 치료하려고 욕심을 부리더라구. 간판에 내건 전생 체험이나 빙의 치료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없는 모양새로 보아서는 본인도 이제 막 사이비 최면 사기에 나선 것 같았어. 더욱이 내 이름도 틀리게 부르면서 최면을 유도하려니 내 입장에서는 몰입도 안되고 참다 못해 울화가 치밀더라구. 그래서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집워치우라고 했더니 나에게 “당신은 자기 주관이 뚜렸해서 더 이상의 최면 치료는 필요없다”라고 선언하고 각자 제 갈길을 떠났지. 그 인간의 마지막 말을 되새겨보면 내가 자기 주관 없이 타인에게 의존하는 사람이라면 최면이랍시고 조종해서 돈을 뜯으려고 했을 것 같아. 몇년 후 광교 호수 공원 주변에서 그 인간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아줌마 한명과 동행하고 있던데 먹이감을 붙잡은 것인지 실제 배우자인지는 알 길 없지. 비록 한 번 당했지만 제대로 치료하는 최면사가 있을 수 있다는 마음 가짐으로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보고 치료를 받았어. 그 최면사는 TV에도 출연한 저명한 전문가라서 그런지 빙의니 전생이니 주워섬기면서 신비 현상을 강조하지 않아서 좋았어. 나에게 최면이나 민간 요법에 의존하기를 그치고 현대 의학의 산물인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으면서 최면으로는 심신을 이완해서 안정을 되찾으라는 소박한 조언을 해주었어. 그래서 몇 번 점진적 이완법 비슷한 최면 방식으로 이완 연습을 하고, 이제는 많이 회복되었으니 다시 올 필요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 그리고나서 최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아주머니(최면사의 아내로 추측됨)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선생님께 다시는 올 필요 없다고 말씀을 들었다고 이야기 했더니만, 아주머니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하면서 다시는 안 오겠다고? 하는 태도로 몸을 부르르 떨었어. 최면사가 능력은 있을지 모르지언정 무서운 아내를 제대로 다루기나 할지 의문이 들었어. 혹시나 최면사는 겉으로는 따뜻하고 합리적으로 치료를 전담하고 아내에게는 수금하는 역할을 분담시켰는지도 모를 일이야. 마지막으로 이전에 최면 배우려고 참석했던 교육 과정을 담당한 최면사를 찾아가서 부탁했지. 정성을 다해서 2시간 반의 긴긴 시간을 들여서 내 기억속의 상처를 찾아서 치료하려고 노력했어. 솔직한 내 감상은 그다지 효과는 없다는 것이야. 최면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언제 끝날지만 생각하게 되고 최면사와의 대화에는 집중하지 못했어. 솔직히 2시간 넘게 최면을 했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었지만 지겨워 죽는줄 알았으니 모르는새에 긴 시간이 후딱 지나간 느낌은 절대 아니었어. 하지만 최면사는 본인의 최면 유도 테크닉이 워낙 귀신같아서 내가 놀랐을것이라고 너무나도 긍정적으로 자랑하더라구. 그리고 내 가슴을 짓누르는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하라고 해서 솔직하게 고백했더니, 최면사가 갑자기 진중한 태도에서 무당 아주머니가 되어서 “그랬구나! 이젠 다 털어 버려라.”식으로 떠들어서 갑작스레 어안이 벙벙했어. 그러고서는 이제 최면으로 내 마음의 병이 나았다고 선언했지. 솔직히 내가 이때부터 최면에 실망하고 기대를 접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내 마음속의 고민을 털어놓게 하고 공감해 주었다고 해서 현실적인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리가 없잖아. 회사 동료와의 갈등이 문제라면 당사자와 대화를 해서 오해를 풀고 잘 지내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지. 그저 앞으로 그 동료와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믿는 다고 상황이 나이질 수는 없잖아. 실제로 그 최면사에게 배웠던 사람중에서도 상사와의 갈등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최면 상담실을 차렸는데 나에게는 인간 관계 개선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실토했었어. 하지만 그 최면사는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실력으로 좋은 일을 한다는 자기 세뇌에 빠져 사는 것 같아. 만약 도움을 바라고 찾아온 내담자는 누구던지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최면사의 자기 확신에 맞장구를 쳐 주었을 뿐인데 최면사 혼자 전지전능하다는 자기 도취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어. 대부분의 내담자는 자기가 무엇때문에 괴로워 하는지 이미 알고있는데, 최면으로 유도하면 자신도 잊어버린 기억도 완벽히 복구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 내가 지금껏 만나본 최면술사는 조금 이상한 구석을 가진 사람들이었어. 실제로 치료를 해줄 수 있는 최면사는 찾기 어렵고 믿을 만한 효과도 기대할 수 없어.
- 정신 의학으로서 과학적인 탐구가 부족해
프랑스인 안톤 메스머가 최면의 시대를 연지도 수백년이 지났어도 최면 현상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아. 그래서 각종 사이비가 설치는 마계로 전락하고 말았어. 대중이 최면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와 선입견을 타파한다고 여러 가지를 설파하더라도, 최면이 유도되면 어떠한 호르몬이 활성화되어서 이러이러한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논리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해. 그저 몇가지 실험 결과만을 최면에 유리하게 해석해놓고서는 무작정 믿어야 한다니 사이비랑 뭐가 다를까? 최면 상담에 응하더라도 최면의 신비함에 권위를 기대고 있기에 최면 유도 후 내담자의 상처와 마음 가짐에 대한 접근법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정식 자격을 취득한 상담사에 비해서 크게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지.
- 자기계발로서의 최면으로 팔리기 시작했어
미디어를 통해서 최면의 신비스러움이 부각되다 보니, 자기계발의 영역에서도 최면의 요소를 적극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병폐가 생겨났어. 30여년전에 발행된 [기적의 최면 학습법] 3권짜리 책을 읽어보고 실행해 보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실제 얻은 것 보다는 기대가 너무나 컸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어. 실제로 이책은 최면을 소개하는 입문 서적으로서도 함량 미달이며 간절히 바라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자기 계발에서 오랫동안 우려먹은 캐치 프레이즈와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도 가능하다는 허망한 소재들을 버무린 망상 모음집 같기도 하더군. 최면으로 심신을 이완시키는 효과가 현실적으로 바랄수 있는 수준인데, 비현실적인 희망까지 이루어주는 요술로 승화시키는 작태는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
- 오컬트와 최면의 만남
이전에 인터넷에서 최면을 연구한다는 사람이 요가에서 최종 진화 단계로 일컬어지는 쿤달리니 현상을 최면으로 쉽게 발현시킬 수 있다는 이론을 유통시켰던 적이 있지. 자율 훈련법으로 전신을 이완한 후에 경직하는 단계에 이르면 약간의 훈련을 더하면 쿤달리니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는데, 방법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해서 한 사람의 머리에서 상상한 걸 무작위로 적어놓을 것 같더라구. 쿤달리니를 깨우지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걸까? 깨달으면 사업도 잘하고 항상 즐겁고 원하는 것을 모두 얻는 다는 것이라면 차라리 열심히 운동하고 공부하는 것이 더 확실한 지름길일거야. 옛 사람들의 상상의 산물을 실존하는 것으로 믿고 추구하려니 될 턱이 있나? 한국의 명상가들이 깨닫는 순간의 체험을 기록한 책을 읽었는데 쿤달리니 현상을 경험했다는 사람도 두명 있더라구. 명상을 하던 중에 예기치 않게 아랫배에서 발생한 기운이 전신을 돌아다니면서 뭉친 곳을 풀고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는 이야기였어. 그러한 현상을 쿤달리니라고 나름대로 자의적으로 정의한 것이지.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을 무엇을 근거로 쿤달리니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나도 몇년전 멕시코 출장가서 첫번째 밤에 긴장된 상태에서 자기최면을 연습하다가 몸 전체가 들썩이는 강한 체험을 했었는데 이 것도 쿤달리니라고 불러도 되겠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딱히 몸에 활력이 넘쳐 흐른다거나 자신감이 생겨서 손댄 일이 술술 풀리는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구. 이전과 다르지 않게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하루 하루를 걱정과 피로에 시달리면서 보냈었다구. 지금 생각해보면 정신적인 긴장으로 인해서 심장이 강하게 박동한 것을 경험한 것에 불과해. 하지만 그 책에 소개된 쿤달리니 체험자는 암이 완치되고 기치료 능력까지 얻었다고 신의 은총에 감사한다는 후문을 덧붙였어. 흔치 않은 이상 현상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믿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을지도? 그렇지만 이후에도 최면을 혼자 공부하면서 최면과 쿤달리니의 관계를 규명했다는 책을 12만원이나 지불하고 구매했는데 저자를 죽여버리고 싶었어. 자율 훈련법등 몇가지 신비주의 훈련법을 대충 수박 겉핡기로 몇가지 적어 놓은것이 전부였어. 구체적인 요령이나 노하우는 전혀 없었지. 지은이도 잘 모르는 것들을 끄적이기만 했다는 증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