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상도동계는 동교동계는 무엇이 달랐나

by 변우현의 인물당

#1 상도동계

불만의 시작은 김영삼 특유의 비밀주의에서 비롯됐다.


도청이 일상이던 시절이다.

비밀주의는 야권에선 비일비재했다.


감시가 더했던 김대중은 '벙커'라 불리던 지하 서재에서 필담을 나누고 흔적을 없앴다.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에서 명사들과 나눴던 필담의 고즈넉함이 아니다.


김영삼은 당내 의사를 묻지 않고 합당을 결정했다.


상도동계는 동교동계에 비해 구성원들 개성도 강하고 리버럴 했다.


김동영 최형우는 김영삼의 좌동영 우형우였고 권노갑 한화갑은 김대중의 투갑스였다.

비슷한 구도지만 할 말은 하고 보는 분위기랑 할 말은 참고 보는 분위기는 달랐다.


이인제는 판사 관두고 고민 끝에 상도동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라 회고했다.


#2 불편한 질문

결국 김영삼의 독단적 행동에 상도동계도 당직자들도 반발했다.

내부 단속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다.


김영삼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 않겠나"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제1야당은 평화민주당이었다.

제2야당 통일민주당의 집권은 3당 합당 같은 현상 파괴적 방식이 불가피했다.


통일민주당 사람들이라면 대놓고 말은 못 해도 속으론 앓던 공통된 고민이었다.


삼국지 천하삼분지계도 제갈공명 혼자만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후한 말 식자층이라면 어느 정도 공유된 문제의식이었다.


결국 불편한 질문이 누구 입에서 튀어나오느냐가 트리거인 셈이다.


끝까지 합당을 반대한 이기택과 노무현은 김영삼과 갈라서며 '꼬마 민주당'으로 향한다.

이기택은 노래 <나그네 설움>을 부르며 김대중과도 헤어지지만 노무현은 김대중 다음 대통령이 된다.


그렇다면 김영삼이 단기간에 민주계를 재결속 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도동계 특유의 의리론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김영삼의 강력한 집권 의지가 핵심이었다.


초선 의원이던 이인제마저 합당에 반대하던 최형우에게 "총재가 호랑이 굴에 들어가 죽게 생겼는데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고 일갈한다.

훗날 이인제가 노동부 장관, 경기도지사, 대선 후보로 승승장구해나가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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