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산 넘어 산, 소련 방문과 내각제 각서 파문

by 변우현의 인물당

#1 박철언

3당이 합당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한 지붕 세 가족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민주계와 민정계의 물밑 갈등이 더해갔다.

소련 방문에서 김영삼과 박철언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김영삼은 대선 후보로 추대받고 싶었다.

가시적 성과가 필요했다.


김영삼은 소련에서 고르바초프 단독 회동 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6공 황태자' 박철언은 공식 회동 아닌 '복도 인사' 였다며 면박을 줬다.


김영삼의 자존심은 남달랐다.

김영삼은 분노했다.


탈당으로 노태우를 위협했다.

박철언의 경질을 요구했고 노태우는 수락했다.


박철언은 경북고와 서울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소년등과 한 검사 출신이다.

화씨지벽과 같은 잔기스를 애써 찾아보자면, 그 시절 논법으로 경기고 빼곤 공부로 모든 걸 해낸 사람이다.

영부인 김옥숙의 사촌 동생으로, 어릴 땐 김옥숙과 함께 노태우에게 영어 회화도 배웠다.


노태우 당선의 1등 공신으로 월계수회를 조직했다.

월계수회로 시작된 대선 외곽조직은 김영삼 민주산악회, 김대중 연청, 노무현 노사모, 이명박 선진연대로 이어진다.


두뇌가 뛰어난 박철언은 친화력이 약했고 대중정치에 결이 맞지 않았다.

김영삼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지적 수준을 종종 의심받았다.

김대중은 김영삼을 아주 어려운 문제를 아주 쉽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김영삼과 박철언은 상성이 맞지 않았다.


#2 내각제 각서 파문

소련 방문이 탐색전이었다면 내각제 각서 파문은 리턴 매치였다.


노태우는 합당 과정에서 내각제를 제안했다.

김영삼은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을 경남중 때부터 책상에 써왔다.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내각제의 제도적 정합성 같은 건 골치 아픈 얘기다.

그저 사람은 경험이 인식을 만든다.


큰 일일수록 이성이 앞서야 한다는 건 옆사람이 해주는 얘기고 당사자는 감정이 앞선다.


과거 민주당 구파였던 윤보선 대통령이 민주당 신파인 장면 총리에게 치였던 상황을 목격했던 김영삼에게 '식물 대통령'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노태우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내각제 문서화를 밀어붙인다.

노태우는 노재봉 비서실장을 통해 각서를 절대 외부에 발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김영삼은 야당 경험이 산전수전이다.


배고픈 조직일수록 내부 권력투쟁은 더한 법이다.

절대 발표하지 않겠단 소리는 절대 발표하겠단 소리로 김영삼 귀엔 들렸을 테다.


박준병 사무총장이 사인받으러 방문하자,

김영삼은 "내각제는 반대하지만 융합을 위해 서명은 하겠다"며 '한글'로 사인한다.


김영삼은 한자 없는 신문은 안 봤다.

한자 사랑이 남달랐다.


김영삼은 공식 사인도 한자만 해왔다.


박준규 전 국회의장은 "YS처럼 후각이 발달해 상황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고 평했다.

한글 사인은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는 김영삼만의 감각적 대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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