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6월,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지방자치는 김대중의 오랜 소신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지방선거 승리는 정계 복귀의 치트키였다.
야당이 이겨야만 명분이 살았다.
선거 기간 내 김대중은 스스로를 평당원이라 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김대중은 서울시장 후보로 조순 영입에 공들였다.
민주당 내 다수가 이회창을 점찍던 상황이었다.
정치 9단의 남다른 혜안이었다.
이회창은 총리직을 관두고 광화문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회장은 여당 야당 재야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물밀 듯 찾아왔었다 회고한다.
김대중은 이회창보다 이회창의 마음을 더 잘 알았던 것이다.
조순은 확신이 없었다.
조순이 일본 제국호텔에 묵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대중은 권노갑을 보낸다.
권노갑을 만난 조순은 조직도 돈도 없다며 경선을 걱정했다.
‘아’ 라고 말해도 ‘어’ 라고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한다.
하기 싫은 건 아니란 얘기였다.
권노갑은 교통정리는 동교동계가 알아서 한다며 안심시켰다.
김대중은 패셔니스타였다.
젊을 적, 잘 생겼고 수트에 행커치프도 꼭 챙겼다.
그 모습에 이희호는 반했다.
넥타이에 조예가 깊었다.
소장한 넥타이가 수 백 개였고, 똑같은 네타이를 이틀 연이어 매는 경우는 없었다.
옷 못 입는 참모에겐 넥타이를 주기도 했다.
김대중이 미 대통령 바이든에게 넥타이 선물을 해준 건 아랫 사람 취향이 반영된 의전 치레가 아니었던 셈이다.
김대중은 조순에게 패션까지 조언한다.
캐주얼하게 모자를 써라, 셔츠 소매 좀 걷어라 꼼꼼하게 챙겼다.
김대중이 구상한 지방선거 원투펀치는 서울시장 조순, 경기도지사 이종찬이었다.
하지만 이기택과의 갈등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는 이기택이 선택한 장경우가 나섰다.
패배를 확신한 김대중은 낙담했다.
예상대로 장경우는 졌다.
반전이 있다.
중요한 건 그 승리자가 이인제였단 사실이다.
경기도지사 당선을 동력 삼아 이인제는 1997년 대선에 등판한다.
많은 이들의 기억처럼 이회창 표를 잠식했다.
그리고 김대중 당선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스스로 자기 목을 칠 뻔 했던 것이다.
지방선거는 승리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여론조사에서 김대중의 정계 복귀 반대는 70%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