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 얼터너티브 DJP연합

by 변우현의 인물당

#1 DJP 연합

김대중과 김종필이 손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139석의 신한국당은 과반을 채우지 못해 무소속 의원 영입을 강행했다.


김대중과 김종필은 맞대응했다.


15대 국회가 개회했지만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등원을 거부했다.

두 당은 보라매공원에서 합동 집회도 열었고 의원총회도 함께 했다.


김대중과 김종필이 공조하자 두 당 사이에 접촉 채널들도 여러 개 생겨났다.


반발도 있었다.

정대철은 “자민련과 연대해도 자민련 지지층은 김대중한테 오지 않는다” 주장했다.

김상현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손을 잡으면 국민회의 의원 절반이 탈당할 것”이라 경고했다.


모두가 김대중이 친동생처럼 여겼던 사람들이었다.


정일형 이태영 부부는 김대중의 정치적 최대 후원자였다.


김대중과 김상현은 골초였는데

정일형 앞에선 담배를 피울 수 없어 정대철 방에서 해결하곤 했다.


김대중은 정대철에게 인간적인 조언을 많이 해줬다.

정대철도 김대중이 해준 조언들 중에 술 먹지 말란 거 빼곤 다 지켰다.


김대중과 김상현은 웅변학원 부원장과 수강생으로 만난 사이였다.

죽이 잘 맞았다.


김대중의 호인 후광을 따라 자신의 호를 후농이라 했다.

71년 대선 경선에서 김상현은 김대중을 지지한 유일한 원내 의원이었다.


정대철 김상현 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주어진 양자택일은 기껏해야 51:49의 설득력을 갖추기 마련이다.


이들 얘기대로라면 김대중한텐 대권 포기하라는 거랑 다름없는 거였다.

들어볼 가치는 있어도 선택할 가치는 없는 셈이었다.


9월 5일 국민회의 창당 1주년 행사였다.

김대중과 김종필이 단상에 나란히 앉았다.


이 자리에서 김종필은 유의미한 멘트를 남긴다.


“절실한 순간은 그 순간을 장악하지 못할 때 모질게 복수한다. 시작이 있는 이상 유종의 미를 국민과 역사 앞에 보답해 후회를 남기는 일이 없게 하자”


그는 타고난 예인이었다.


#2 지역등권론

닻도 올랐고 배도 출항했다.


문제는 키를 쥔 김대중 스스로에게 있었다.


김대중은 행동을 논리에 맞춰야만 했다.

DJP 연합이 집권욕이라는 세간의 비난에 논리적으로 맞설 수 없다는 괴로움이 컸다.


김대중은 3당 합당을 야합이라고 비난해왔다.

하지만 야합이라 욕먹었어도 김영삼은 집권을 해냈다.


김종필과 연합했는데도 실패한다면?


결과는 처참하다.

김대중이 평생 쌓아온 정치적 자산이 송두리째 날아갈 수도 있다.


이해찬 보좌관 출신 유시민마저 <97 대선 게임의 법칙>에서 DJP 연합은 김종필 지지층은 김대중 지지층으로 오지 않고 신한국당 후보로 쏠려서 패배할 수 있으리라 우려했다.


때마침 정치학자 황태연이 이탈리아 남부 사례를 이론화 해 ‘지역연합론’을 제기했다.

가문 논에 물을 대준 셈이었다.


김대중은 이것을 발전시켜 ‘지역등권론’을 만들어냈다.


영남 패권에 대항하자는 저항의 논리였다.

도덕적 명분도 갖춘 승리의 공식이었다.


# 단일화

애타는 김대중과 달리 김종필은 여유로웠다.


DJP 연합은 김종필에게 꽃놀이패였다.


김종필은 신한국당과도 대화 채널을 열어뒀다.

이회창 측근이었던 서상목 의원은 “나는 김종필을 껴안고 가자고 했으나, 이회창 후보가 거절했다” 자서전에서 밝혔다.


하지만 이인제 경기지사의 대권 출마로 DJP 연합은 가속도가 붙는다.


이인제는 출마 선언 석 달 만에 지지율 20%를 넘겼다.

이인제 돌풍을 잠자코 볼 수 없던 김대중은 DJP 연합이 다급했다.


이인제는 충남 논산 출신이었다.

이인제 지지도가 높아질수록 충청권에서 김종필의 입지도 애매해졌다.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와 달리 김종필은 계파를 키우지 않았다.

청구동계라는 건 존재는 해도 존재감은 없었다.


자민련 안에는 친김대중적인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김대중이 더 좋다기 보단 김영삼이 더 싫었단 표현이 정확할 수도 있다.


박준규는 김종필에게 김대중과 연대하지 않으면 탈당할 거라 공언했다.

박철언도 노태우 김대중의 연합 실패를 복기하듯 김종필 김대중을 연합시키려 노력했다.


10월 26일 김대중은 김종필 청구동 자택에 방문했다.

노정객은 서로 껴안았다.


단일화 후보 김대중은 선언했다.

“후보를 양보해줘 감사하다. 정권교체를 이뤄내자”

작가의 이전글김대중: 살아남아야 강자로 인정받는 정계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