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 박진영: 덕업일치와 오디션

by 변우현의 인물당

#1 학생회장

배명고는 첫 직선제 학생회장 선거를 치른다.


출마 자격이 간당했다.

전교 25등 이내만 입후보 가능했는데 박진영은 전교 24등이었다.


공약은 파격적이었다.

학교 축제 유명가수 초청을 약속했다.


유세도 상식밖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다니며 바비 브라운 음악에 맞춰 친구 조해성과 춤을 췄다.


이 시절 바비 브라운 댄스는 현진영과 와와가 ‘야한 여자’를 부르며 토끼춤이 되었고,

박진영과 춤추던 조해성은 JYP 부사장으로 ‘트와이스의 아빠’로 불리게 된다.


박진영은 과반수 이상 득표로 당선됐다.

공약 이행의 시간이 왔다.


가수 섭외에 급한 돈은 부친께 빌렸다.


박진영은 당시 제일 잘 나가던 동아기획 김영 사장에게 무작정 찾아갔다.

윤종신도 동아기획 음반은 믿고 사본다던 때였다.


김영은 당돌한 박진영을 귀엽게 봤다.


‘춘천 가는 기차’의 김현철, ‘겨울바다’의 푸른하늘, 이제는 ‘비타민’으로 더 알려진 박학기의 출연을 약속해줬다.

어지간한 대학 축제 이상의 성과였다.


박진영은 섭외 가수 리스트를 들고선 송파구 일대 학원들을 돈다.

축제포스터에 학원 광고를 실어주겠다며 광고비를 받았다.


축제는 성공적이었다.

부친께 빌린 돈도 갚았다.


박진영은 학력고사 100일을 앞두고 제대로 공부를 하겠단 계획을 세웠다.

수능에선 꿈꿀 수 없는 낭만의 숫자 100일이었다.


머리가 빠른 박진영은 원리적인 과목에 능했다.

수학 물리를 좋아했고 국어도 잘했다.


수능이면 좋았겠지만 하필이면 학력고사였다.


본격적인 시험 대비를 하며 암기과목의 벽 앞에 놓이게 된다.

암기량은 너무 많았다.


선지원 후시험이었다.

평소 점수가 안정적으로 확보 안 되면 소신 지원은 언감생심이었다.


박진영은 태어나 처음 후회란 걸 하게 된다.


그래도 부친은 SKY 중 한 곳만 가면 원하는 차를 사주겠다 약속했다.

이 또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1990년 연세대 지질학과에 입학하며 유일한 국산 오픈카였던 흰색 코란도를 구입했다.

한국판 <탑건>인 드라마 <창공>에서 공사 생도 김원준이 타면서 화제가 됐던 차다.


박진영은 그 차에 여자들을 태우고 클럽을 다녔다.


#2 라인기획

박진영은 클럽에서 눈에 띄도록 열심히 놀았다.


박진영이 1학년 마칠 때쯤이었다.

클럽 DJ였던 김창환은 스테이지에서 흥이 남달랐던 박진영을 주목했다.


박진영에게 가수를 해보면 어떠냐 제안했다.


이 때 김창환은 신승훈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창환은 이승환의 성공을 눈여겨보고 발라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직접 대전까지 내려가 신승훈을 데려오고 신혼집 옆방에 재우며 준비시켰다.


신승훈은 변진섭의 뒤를 이으며 발라드 황제가 됐다.

김창환도 바빠지며 박진영에게 했던 제안은 흐지부지된다.


짧은 시간 안에 김창환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획자가 되었다.


스티비 원더 노래를 끝내주게 잘한다며 박미경에게 소개 받았던 김건모를 키워냈고,

같이 일하던 작곡가 천성일에 멤버 3명을 더해 노이즈를 만들어 성공시켰다.


박진영은 김창환의 제안을 계기로 부푼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여러 기획사에 문을 두드렸다.

2년간 동분서주했지만 허탕이었다.


김창환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김창환은 박진영에게 현진영과 와와 출신 강원래와 강변가요제로 이름을 알린 박미경과 함께 3인조 댄스그룹을 제안했다.


박진영은 강원래 구준엽 김송과 함께 김건모 콘서트에 댄서로 투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 계획했던 3인조 댄스그룹은 무산됐다.


박진영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가수 준비에 학점도 엉망이라 취업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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