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기획에서 헛방만 있던 건 아니었다.
박진영은 작곡가 김형석을 만났다.
지금까지 음악을 듣기만 했다면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박진영은 김형석을 2년 넘게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잔심부름을 마다 않고,
대작 상대도 해내며,
운전기사 역할도 자처했다.
박진영은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지만 코드 개념을 몰랐다.
김형석은 돈도 안 받고 기초 화성학부터 작곡과 프로듀싱의 모든 걸 알려준다.
훗날 김형석은 대개 곡 써오라 시키면 작곡만 해오는 경우가 많았은데,
박진영은 시키지도 않아도 작사까지 꾸준히 해와 기특히 여겼다 말했다.
박진영은 김형석에게 배운 걸 꼼꼼히 기록해둔다.
정리해둔 노트만 100권 정도다.
이 시기 박진영은 ‘날 떠나지마’를 비롯한 여러 곡들을 만든다.
이 곡들을 들고선 소속사들을 찾아다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구준엽은 박진영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SM 이수만과의 오디션을 주선해줬다.
SM과 이수만이 오늘날의 지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찬반 더운밥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박진영은 ‘날 떠나지마’로 이수만 앞에 섰다.
다 듣고 난 이수만은 좀 아닌 거 같다 하면서도, 노래만 따로 팔면 어떨까 물어봤다.
박진영은 화가 났다.
안 팔겠다며 오디션장을 나왔다.
박진영은 그 오디션을 탈락한 날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이었다고 회상한다.
얼마 후 박진영은 김형석의 소개로 가수 제작을 원하던 영화사와 만나게 된다.
뜻밖에도 쉽게 계약을 맺고 데뷔 준비를 하게 된다.
박진영은 정규 앨범 1집이란 현실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단 생각에 들뜨게 된다.
하지만 소속사는 가수 제작 경험이 없던 터라
앨범 발매 1년이 지나도록 박진영은 방송 출연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이제 모든 걸 다 포기하려는 마음이었다.
박진영은 그저 어떤 회사든 빨리 취업을 해야겠다 결심한다.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광고에 박진영 노래가 배경 음악으로 삽입됐다.
박진영 1집의 유통은 삼성영상사업단이 담당했다.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이 제작한 광고라,
배경 음악도 삼성영상사업단이 담당한 ‘날 떠나지마’가 선정됐다.
센스민트라는 껌 광고였다.
때마침 광고 모델 정우성도 무명 신인이었다.
사람들은 정우성이 박진영인 줄 알고 초특급 미남 가수의 탄생을 기대했다.
어쨌든 그의 외모와 춤과 노래는 종합적인(?)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을 몰고 왔다.
신동엽마저도 "박진영이 데뷔했던 그 당시에는 싸이 데뷔 무대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라고 회상했다.
TV 프로였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다.
담당 PD는 연대생이라는 점을 부각시키자며, 박진영의 첫 방송을 연세대에서 찍자고 했다.
때마침 영화 홍보로 톰 크루즈도 내한했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톰 크루즈 인터뷰를 박진영에게 맡겼다.
영어 잘하는 연예인들이 많지 않던 때였다.
일타쌍피였다.
잘 노는 이미지와 공부 잘 하는 이미지를 동시에 갖게 됐다.
연예계에서 대체 불가한 포지션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만에 ‘날 떠나지마’는 모든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