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이 다니던 서문여고는 8학군이었다.
전교 15등까지 성적이 올랐다.
여학생 모친은 목포여고 9회 졸업생이었다.
동창들에게 손주은을 소개시켰다.
손주은은 사법고시를 볼까 했지만 신림동에서 당구만 치다 관뒀다.
과외가 천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여학생 모친은 손주은에게 유학자금 마련하라며 그룹과외를 제안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지방대 다니던 여학생 오빠도 손주은에게 맡겨졌다.
1988년 1월 여학생과 여학생 오빠, 그리고 3명이 더해진 5명의 그룹과외가 시작됐다.
손주은은 그룹과외를 시작할 때 전 과목 과외수업비로 1인당 25만원을 받았다.
손주은의 전력투구 과외는 소문이 났다.
곧 10명으로 불어났다.
손주은은 전원 대학 합격시켜 다음해엔 1인당 100만원을 목표로 세웠다.
방학엔 학생 집을 빌려 9박10일 지옥훈련을 해냈다.
날마다 암기과목 하나씩 끝냈다.
결국 9명을 합격시켰다.
1988년 손주은은 음악교사였던 아내에게 피아노 학원을 열자고 제의했다.
전셋집을 정리해 2500만 원을 들여 방이 딸린 학원을 인수했다.
피아노 학원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들이 가정부에게 맞는 모습을 봤다.
돈보다 자식 돌보는 일이 우선이었다.
월셋집 얻고 남은 1750만 원으로 삼성동에 150석 독서실을 인수했다.
한 달 순수익은 150만 원이었다.
이 돈에 여윳돈을 더해 역삼동에 있는 80석 독서실을 또 인수했다.
2년 뒤 삼성동 독서실 운영권을 3100만 원에 팔며 수익을 남겼다.
손주은은 학부모 문의전화가 오면 테스트 용지를 들고 집으로 찾아갔다.
테스트 중에 학부모와 상담하고 채점 마치면 학습 컨설팅을 해줬다.
그 정성에 감복해 대부분 학부모는 수강 등록을 했다.
서초동에 ‘진리와 자유’ 학원을 열었을 때였다.
고3 학생이 대학에 떨어지면 다음 해엔 수업료 50%를 할인해줬다.
학부모 대상 프로그램을 수강하면 자녀 수업료 10%를 할인해줬다.
학원 공간의 1/4을 음악감상실로 만들어 학부모 교양 강의를 열었다.
학부모들에게 순번을 정해 범 11시에 학생 간식을 싸오게 했다.
학부모들과 자주 만날 수 있었고 동생들까지 등록시킬 수 있었다.
손주은의 학원은 시설도 열악했고 운행 차량도 없었다.
손주은은 부모들에게 직접 데리러 오라고 했다.
쉬는 날도 없었다.
평일에는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30분까지 수업을 계속했다.
주말에는 오후 1시에서 새벽 1시까지 수업을 했다.
새벽 2시30분에 수업이 끝나도 새벽 4,5시까지 혼내고 귀가시키기도 했다.
부모들은 차 안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손주은은 주일엔 교회에 가야 하니,
학부모들은 2인1조로 09시부터 17시까지 자습 감독을 해달라 했다.
‘당번’에 걸린 학부모는 일찍 나와 청소부터 시작했다.
1994년은 수능 첫 해였다.
12월 24일은 원서 마감 첫날이라 미달 사태가 예상됐다.
당시 손주은의 학생들 중 10명은 눈치작전이 필요했다.
유웨이도 진학사도 없던 때라 눈치작전이란 말도 존재했다.
12월 24일 강원대가 빈틈이었다.
강원대 원서를 준비하니 3시 45분, 워커힐 앞을 지나는데 4시 15분이었다.
손주은은 170킬로로 질주하고 학생은 차창 밖으로 원서를 흔들자 경찰차들도 비켜줬다.
강원대에 도착하니 4시 45분, 경쟁률은 1.1대1을 넘어섰다.
원서 마감 5시, 고민 끝에 원서를 넣지 않았다.
어떤 학부모는 원서 안 넣은 걸로 전화로 화를 내며 쌍욕을 해댔다.
하지만 12월 29일 이화여대 모든 학과와 한양대 일부 학과에서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강원대 원서를 넣지 않은 10명 전원은 이화여대와 한양대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