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농 김상현: 고아 의식와 생존력

by 변우현의 인물당

#1 가족

김상현은 1935년 전남 장성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우량아였다.

훗날 대한민국 3대 마당발로 불렸던 덴 타고난 체력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언변도 타고났다.

동네 어르신들은 우스개소리로 김상현은 혓바닥에 점이 있어 말로 크게 될 놈이라 했다.


부친은 내성적이고 병약했다.

42살에 작고했다.


장남이었던 형은 서울 양정중으로 유학을 떠났다.


집안일은 김상현에게 쏠렸다.


김상현은 국민학교 졸업하고 1년 정도 시간을 축냈다.

서울로 떠났다.


시골에 처박혀 생을 마감할 순 없었다.


국립 교통중학교(철도고 전신) 시험을 쳤지만 떨어졌다.

균명중학교(현 환일중,고) 야간부에 입학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형은 몸을 숨겼다.

인민군 의용군에 끌려가는 건 개죽음을 뜻했다.


형은 어느 날 김상현 앞에 나타났다.

냉면 한 그릇 사주곤 떠났다.

이후 소식은 영영이었다.


김상현마저 의용군으로 끌려갈 순 없었다.

일주일 피난길의 행선지는 고향이었다.


돌아온 고향은 인민군 치하였다.


김상현 모친은 당골이라 불렸다.

쉽게 말해 무속인이었다.


평양 출신이었다.

강인하고 활동적이었다.

정이 많고 배짱과 언변이 남달랐다.


마을 전체가 부역 혐의를 받았다.


모친은 홀로 모든 걸 뒤집어썼다.

총살됐다.


김상현은 모친의 기질을 물려받았다.


친화력이 좋았고 남에게 베풀기 좋아했다.

창 재주가 탁월해 예인들과도 잘 어울렸다.

직관과 판단이 남달랐다.


#2 고아의식

전쟁은 김상현을 고아로 만들었다.


부모와 형제를 잃었다.

고향을 마음에서 지워야 했다.


부산을 거쳐 서울 올라왔다.


일정한 거처가 없어 남산에 올랐다.

추위를 피하려면 닭똥 냄새가 나도록 손을 비벼대야 했다.


자력갱생은 삶의 신조가 되었다.


1954년 한영고 야간부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고시위원회 전달부에 취직이 됐다.

사환으로 일하며 법률 서적도 들춰봤다.


김용달 변호사는 고학생들을 아꼈다.


김상현을 눈 여겨 봤다.

법률가보다는 정치가가 어울릴 거란 조언을 해줬다.


김상현은 말솜씨부터 갖춰 볼 요량으로 정치인 연설을 열심히 따라다녔다.


김상현은 대학생은 아니었지만 단국대에서 청강을 했다.

고려대 ‘아남민국 모의국회’ 소식을 듣곤 대회 참가를 결심했다.


단국대 이사장을 찾아갔다.

단국대생 명의로 대회에 참가할테니 대회 1등을 하면 편입을 시켜달라 했다.

보통 배짱이 아니었다.


아쉽지만 2등이었다.

편입은 실패했어도 단국대와의 인연은 깊었다.


2등은 부통령상이었다.


김상현은 상장을 받고나선 부통령 공관을 찾아가 장면을 만났다.

수상자가 수여자를 만나러 간단 얘길 들어봤나 모르겠다.


장면은 민주당 신파의 리더였다.

훗날 김상현이 민주당 신파와 이어질 인연을 생각하면 기막힌 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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